▲ PET-CT 검사를 이용하면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조기진단이 가능하다. 사진제공=을지대학병원 | ||
그러나 치매로 생기는 기억력장애는 금방 한 일도 깨끗이 잊거나, 힌트를 줘도 잘 기억을 되살리지 못하고, 시간이갈수록 (몇 년에 걸쳐) 점점 더 나빠진다는 점에서 다르다. 치매 하면 노인병으로만 알기 쉽지만 40~50대라도 심한 건망증이 있을 때는 치매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이때는 뇌 건강의 적신호로 알고 뇌를 자극하는 취미를 갖는 등 치매를 예방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노인이라면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단순한 건망증이려니 넘기지 말고 치매가 아닌지 체크해 보는 것이 좋다.
자영업자인 Y씨(51)는 얼마 전 아내와 같이 병원을 찾았다 치매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원래 계산이나 행동이 빠르고 대인관계도 적극적인 Y씨였지만 1년 전부터 기억력이 눈에 띄게 나빠지더니, 이제는 가게에서 파는 물건의 가격조차 기억을 못하고, 계산도 잘 못하고 있다. 또 의욕이 없어져 자꾸 누우려고만 하고, 작은 일도 결정이 어려워서 부인에게 미룬다. 말을 할 때도 생각은 하는데 단어를 못 찾아 말을 더듬고,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46세의 주부 S씨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치매 증상이 나타난 경우. 내성적이고 소극적 성격이던 그는 2년 전부터 잠을 자지 못하고 우울하고 불안해 안정제를 사다 먹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어보는 말에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간단한 말을 반복해서 말하는 증상이 생겼다. 급기야는 가족들에게 상황에 맞지 않게 화를 내거나 욕을 하고 고집을 부리는 등 주변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안겨주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나서 또 달라고 한 적도 여러 번이다.
이처럼 노인에게나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는 치매가 아직 노년이라 할 수 없는 40~50대에 일찌감치 찾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의학적으로는 ‘일단 정상 수준으로 발달한 지적 기능이 뇌의 기질적 병 때문에 일상 생활이나 대인 관계에 지장을 초래할 만큼 지적 기능이 저하된 상태’가 치매다.
2004년 현재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약 4백만 명. 이중 8.3% 정도인 약 33만 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
가장 흔한 것은 뇌혈관성 치매와 알츠하이머성(노인성) 치매로 전체의 80∼90%를 차지한다.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도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가 자신의 치매를 세상에 공개한 것은 이미 10년 전의 일이다.
뇌혈관성 치매는 평소 뇌혈관계 질환과 관련이 뚜렷하다. 을지대학병원 신경과 김정은 교수는 “뇌혈관성 치매는 심장병이나 고혈압, 동맥 경화 등이 원인으로 뇌경색이 재발 또는 나빠지면서 갑자기 생기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런 원인 질환을 치료하면 예방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이에 비해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원인이 정확하지 않아 치료가 어렵다. 그러나 증상을 조기에 발견하면 더 이상 증상이 진행되는 것을 막고 때로는 호전시킬 수도 있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뇌에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축적되고, 기억력과 관계 있는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감소해 생기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혈관성 치매와 달리 아주 서서히 나빠지기 때문에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이 알아채기 어렵다”고 일산백병원 신경정신과 정영조 교수는 설명한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65세 이상 나이에 많이 나타나는데, 85세 이상이 되면 적어도 절반은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증상을 갖고 있다.
주의할 것은 환자의 10% 정도는 비교적 이른 나이인 40~50대에 치매가 찾아왔다는 점이다. 치매가 빨리 오는 경우는 대부분 직계가족 중 환자가 있는 경우라고 한다. 젊은 나이에 치매가 생기면 노인처럼 치매 자체보다는 가정이나 직장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로 더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아직 젊은 사람이 정도 이상으로 심한 건망증을 나타낼 때도 요주의 대상이다.
‘최소 인지장애’라고 해서 심한 건망증이 있는 사람의 10∼15%가 매년 알츠하이머성 치매로 진단을 받고, 3년 안에 약 50%까지 발병이 늘어난다.
성별로는 여자가 남자보다 1.2~1.5배 잘 걸린다. 폐경이 되면서 뇌세포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외에 알코올중독, 잦은 뇌의 부상, 우울증 등도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위험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고혈압 당뇨 심장병 흡연 등의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요인도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만든다는 보고가 늘고 있다.
요즘은 PET-CT라는 검사로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조기 진단이 크게 쉬워졌다. 비용은 다소 비싸지만, 기기를 이용해 뇌의 혈류·산소 소비량·포도당 대사를 알아보는 방법이다.
대부분 한번 치매에 걸리면 낫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꼭 맞는 말이 아니다. 의학적으로 치료 가능한 치매도 많다는 것. 특히 한국 사람에게 많은 혈관성 치매는 조기에 발견하면 더 이상의 진행을 막거나 예방하는 것이 가능하다. 치매 원인의 15%를 차지하는 뇌수두증, 뇌 양성종양, 갑상선 질환, 신경계 감염, 비타민 부족 등도 완치가 가능한 질환들이다.
그러나 초기 치매는 우울증, 정신분열, 인격장애 등의 질환으로 잘못 진단돼 엉뚱한 치료를 받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의사와의 자세한 상담 후 정밀검사를 통해 진단을 받으면 항우울제, 인지기능 개선제, 비타민E 등을 사용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치매 환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웃음이 빠르게 사라진다. 그만큼 돌보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전문 요양시설들이 많이 생겨 집에서 환자를 돌보기 어려운 가족들의 문제에 도움을 주고 있다.
치매 환자를 돌보기 위해서는 우선 부상을 예방하면서 인지기능을 자극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소음이 적고, 너무 강하거나 어둡지 않은 조명을 쓰며 적당한 실내온도를 유지하도록 한다. 계단 오르내릴 때 사고가 많으므로 손잡이를 안전하게 설치하거나, 목욕탕 바닥이 미끄럽지 않도록 물기가 없도록 하고 조각카펫, 깔개는 고정시킨다. 위험물질은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운다. 시계 달력 게시판 등은 모두 글씨가 큰 것으로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둔다.
간병하는 가족이나 간병인들의 태도도 중요하다. 환자와 같은 수준에서 생각하고 작은 일이라도 환자가 혼자서 해냈을 때는 격려해 주어야 한다. 환자에게 현실에 대해 반복적으로 주지시키고 틀린 것을 지적하기보다는 일단 인정해주는 태도가 더 바람직하다. 환자가 “아버지가 나를 데리러 오신다”고 할 때는 현실적으로 “아니에요”라고 말하기보다는 “아버지 생각이 나세요?” 등으로 그때를 회상하게 하는 등 환자의 표현을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치매환자는 인지기능이 나빠진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에 닥치면 흥분을 잘 한다. 이때는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 해결해 주는 것이 좋다. 또한 대변이나 식사 등을 일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하도록 도와야 한다.
치매는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어버리게 될 수 있는 병이다. 초기에는 기억장애만 있어 생활하는 데 큰 문제가 없지만 서서히 진행하면서 고집이 세지고, 성격이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결국 신체적 장애가 일어나면 대소변까지 받아내야 되는 상황에 이른다. 따라서 기억장애가 시작될 때 일찍 검사를 받고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치매를 예방·개선하려면 우선 고혈압, 당뇨, 고콜레스테롤증, 심장병 같은 성인병을 치료해야 하고 비만도 없애야 한다. 과음이나 습관적인 음주는 뇌의 노화를 촉진시키고, 담배의 니코틴 성분은 뇌 혈관을 수축시켜 뇌의 혈액순환을 나쁘게 만드는 만큼 삼가야 한다. 머리에 충격이 가해지는 것도 주의한다.
식습관도 중요하다. 식사의 양은 평소의 80% 정도로 줄이고, 매 끼니마다 각종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도록 한다. 야채는 적극적으로 많이 섭취하는 것이 좋다. 물을 자주 마셔 영양소의 운반과 노폐물 대사가 원활해지도록 한다.
책과 신문을 자주 읽고 글자 맞추기 퀴즈 등 두뇌를 자극하는 활동을 하면 뇌 기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뇌세포는 한번 파괴되면 재생되지 않는다. 되도록 머리를 많이 쓰고 적극적인 사고와 생활방식으로 지내도록 한다. 밝게 생활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별 생각없이 TV만 오래 보면 오히려 뇌 기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은 교수는 “일기 쓰기를 꾸준히 해도 뇌를 고르게 활성화시킬 수 있고, 2차적으로 뇌에 공급되는 혈액과 산소의 양을 늘릴 수 있으므로 권할 만한 예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