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밭 정치일정… 한나라가 더 위험
▲ 3월 대권레이스가 본격화되면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한 공격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 ||
정치권의 ‘달력’을 보면 3월에 유독 메가톤급 일정이 많이 잡혀 있어 빅뱅설이 그저 떠도는 얘깃거리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먼저 개헌안 발의 문제로 3월 정국은 첫 번째 요동을 칠 전망이다. 정부는 2월 말까지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한 원포인트 개헌안을 마련해 3월 6일경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뒤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무대응,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잇단 탈당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개헌 로드맵을 진행시키고 있다. 정치권은 좋든 싫든 앞으로 개헌안이 국회에서 논의될 3개월 동안 개헌 정국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개헌안 발의의 ‘비수’가 담겨져 있다.
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바깥에서 정당이 (개헌에 대해) 반대하다가도 국회 의안이 발의되면 그때부터 의무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중략) 국회에서 이 토론을 표결해서 설사 이긴다 할지라도 그 정당과 그 당의 후보들 모두 두고두고 이 부담을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재선의원은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대선을 지나 내년 총선까지 내다보면서 끊임없이 정치적인 명분을 축적하고 있다. 4년 중임제 개헌은 한나라당에서도 계속 주장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한나라당도 정략적 판단에 따라 그것을 뒤집었다. 여기에 노 대통령이 개헌안을 제안한 트랩(덫)이 있다. 한나라당이 받아들이면 개헌 정국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고 반대하게 되면 자신들의 주장을 스스로 거둬들이는 모순을 범하게 된다.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자기모순을 대선을 거쳐 총선까지 계속 제기할 것이다. 명분이 없는 쪽은 한나라당이다. 이런 점에서 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몇 개월, 몇 년을 내다본 몇십수 앞선 외통수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개헌 카드가 예상외로 뜨지 않자 속앓이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한 기자는 이에 대해 “청와대는 현 정권에서의 개헌안 추진 반대 여론 등으로 ‘나홀로 개헌안 발의’를 외치는 형국이 돼 버린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제 1당으로 올라선 한나라당이 정국 주도권을 쥐고 있어 타협도 쉽지 않다. 특히 열린우리당 집단탈당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개헌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에 노 대통령이 충격을 받았다는 반응도 나온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청와대로서는 “반대 여론을 무시한 일방적 밀어붙이기에 따른 국력낭비”라는 비난을 반박할 만한 명분이 없어 고민 중이라는 후문이다.
개헌론 발의와 함께 주목해야 할 3월 정국 핵심 변수는 노 대통령의 탈당 문제다. 이것은 개헌과 여권발 정계개편의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당적문제는 야당들이 개헌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다면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개헌 추진에 철저한 무시전략으로 임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입장에 변화가 없는 한 개헌을 이유로 당장 탈당이 가시화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의 탈당 문제는 여권의 새판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2월 초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집단 탈당 이후 당 지도부 내에서 노 대통령의 당적정리(탈당)가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장영달 신임 원내대표도 “3~4월이 되면 본격적인 대통합 노력이 진행될 텐데 그 정도 시점이 (노 대통령의 당적정리 시기로) 적당할 것 같다”며 노 대통령 탈당 시기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청와대 측은 “대통령은 당에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여러 차례 피력한 만큼 당이 (탈당을) 요청하면 응할 것”이라는 뜻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노 대통령의 탈당은 대통합 신당론에 힘을 보태는 동시에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엑소더스’(대탈출)를 막는 역할도 할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계속해서 탈당 움직임을 보일 경우 당 지도부가 그들의 탈당 명분을 약화시키고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청와대에 대통령의 탈당을 전격 건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럴 경우 노 대통령은 당을 살리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외압에 의한’ 탈당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개헌과 정치개혁의 명분을 걸고 노 대통령이 또 다시 하야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전략관계자 A 씨는 이에 대해 “청와대는 개헌에 대한 여론이 좀처럼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적잖이 당황해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노 대통령 탈당만으로는 60%에 달하는 현 정권에서의 개헌 반대 여론을 뒤집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여권 일각에서 ‘노 대통령이 내 놓을 수 있는 최후의 히든카드는 역시 임기단축밖에 없는 것 같다’는 주장이 또 다시 제기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 ||
그렇다면 야당은 3월 빅뱅설의 혼란에서 자유로울까. 폭풍전야의 고요 속을 지나고 있는 한나라당이 오히려 3월 빅뱅설의 더 큰 진원지가 될 수 있다. 먼저 한나라당의 경선 관리 기구인 국민승리위원회의 활동이 3월 10일까지인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국민승리위원회는 앞으로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시기와 그 방법 및 절차, 그리고 후보의 검증방법 등 세 가지 사항을 중점적으로 논의하기로 돼 있다. 위원회의 활동기한은 2월 1일부터 3월 10일까지다. 필요시 최고위원회의 의결로 연장이 가능하지만 최대한 기한을 준수할 예정이다. 현재 집권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한나라당의 대권 후보 선출을 위한 제반 사항이 3월 10일까지 결정된다는 점에서 3월은 한나라당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달이다.
친 이명박 계열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이명박 전 시장 측에서는 전면적인 오픈프라이머리 실시나 현재 3만~4만 명 선인 선거인단 수를 대폭 확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반면 박근혜 전 대표 측으로서는 조금이라도 경선 시기를 늦춰 추격을 위한 시간을 벌려고 할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경선 방법과 그 시기는 양쪽에서 타협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후보검증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어떤 방법으로 검증을 할 것인지가 매우 불투명하다. 또한 후보검증 자체가 이 전 시장을 끌어내리기 위한 표적검증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에 대한 타협 여부가 국민승리위원회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정가에서는 이 전 시장의 3월 위기설도 나돌고 있다. 3월로 접어들면서 이 전 시장에 대한 구체적인 검증 여부가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이 전 시장이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것. 이 전 시장 측도 후보검증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3월부터 박 전 대표 측에서 본격적으로 후보검증 문제를 거론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전 시장 측의 우려대로 최근 박 전 대표 측에서 후보검증 문제를 ‘슬쩍’ 거론해 논란이 인 바 있다. 박 전 대표의 측근인 유승민 의원은 최근 “검증 얘기 때문에 지난 한 달간 ‘김대업보다 더 나쁜 놈’, ‘한나라당의 분열을 조장하는 놈’ 등 온갖 욕설을 들었지만 검증론을 철회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팩트가 없는 검증은 할 수 없지 않느냐”고 밝혀 이 전 시장 검증에 대한 ‘히든카드’가 준비돼 있음을 암시하고 있어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또한 박 전 대표의 법률특보인 정인봉 전 의원은 최근 “이 전 시장의 도덕성과 재산형성 과정 등의 문제점이 지적된 3, 4건의 자료를 수집해 왔다”며 ‘이명박 X파일’을 공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정 전 의원 발언에 정치권이 발칵 뒤집히자 박근혜 전 대표가 “개인적 사견일 뿐 저나 캠프의 생각이 아니다”라며 적극 진화에 나서 기자회견은 무산되었다. 해프닝에 그쳤지만 이 전 시장 측은 매우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박 전 대표 측이 이 전 시장의 도덕성 문제를 갖고 치고빠지기 식의 전술을 구사하며 흠집을 내려한다고 보고 있다.
이 전 시장 측은 3월경부터 실시될 예정이었던 감사원의 서울시 감사가 연기된 것에 대해 ‘잘 됐다’며 반색하고 있다. 감사원은 서울시 상반기 정기 감사 대상에 이 전 시장의 대표적 실적인 청계천 복원, 뉴타운 개발,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DMC) 조성 등을 포함시킬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전 시장 측이 감사원의 ‘표적 감사’에 대해 ‘유력 대권주자 죽이기’라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자 감사원은 최근 감사 일정을 후반기로 연기했다. 이 전 시장으로선 한시름 던 셈이다.
이런 문제가 아니더라도 한나라당 일부에서는 최근 당내에 불어닥친 ‘이념·정체성’ 논란이 3월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불거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나라당을 출입하는 한 기자는 이에 대해 “정체성 문제 거론의 배후에 박근혜 전 대표 측이 있다는 얘기가 있다. 박 전 대표 측이 당과의 일체감이 엷은 이명박 전 시장을 공격하기 위해 앞으로 이념과 정체성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이 전 시장과 심정적인 연대를 하고 있는 소장파의 입지가 축소되면서 이 전 시장의 당내 지지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문제는 이 전 시장이 당내 개혁을 요구해 탈당할 명분을 줄 수도 있는 민감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열린우리당에서 탈당해 나간 계파들도 3월은 서서히 새로운 대선 주자들을 중심으로 뭔가를 보여주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에서 최근 여권 후보로 거론되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움직임 또한 주목되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