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0분 햇볕 쪼이면 효과
하지만 감기처럼 증상이 쉬 눈에 띄지 않는다. 여성과는 다른 남성들은 자신이 우울하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려는 경향이 강해서 주변에서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단순한 두통이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 알코올 의존 등의 증상으로 다른 과를 거쳐 우울증 클리닉을 찾는 경우가 많다. 만약 조금 우울한 정도가 아니라 자살충동을 느낄 정도의 심한 우울증일 때는 좀 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해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직장과 가정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남성들을 파고드는 우울증의 정체를 밝혀본다.
매사에 꼼꼼하고 철저한 성격을 가진 A씨(43). 결혼 후로는 공무원 생활을 계속 해왔는데, 올해 초에 기다리던 승진을 했다. 평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승진을 주변 동료들은 당연하게 여기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승진을 한 후로 A씨의 직장생활에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팀을 이끌어가는 위치에 있는 그가 컴퓨터 작업에 부하직원들보다 서투른 것이 문제였다. 자신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차츰 업무에 대한 부담감이 느껴졌다. 이후 기억력이 떨어져 깜빡깜빡 잘 잊어버리고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도 선뜻 판단이 내리지 못했다. 두통이 심하고, 갑자기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잠을 깊이 자지 못한 지도 오래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점점 싫다. 얼마 전에는 승진한 자리도 포기하고 근무지를 지방으로 옮기겠다고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옆에서 보다 못한 아내의 권유로 정신과를 찾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요즘 A씨처럼 우울증에 시달리는 중년 남성들이 의외로 많다. 치료를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은 30~35세부터 시작해 40대 중반 이후의 남성에게 많이 나타난다. 만약 가족 중에 우울증 환자가 있다면 좀 더 젊은 나이에 생길 수도 있다.
한 보고에 따르면 30~45세 남성 우울증의 유병률은 약 3%, 45~65세의 경우는 2% 정도다. 이 수치로만 보면 심각하지 않은 상황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자살을 생각하는 중증 우울증 환자만을 말하는 비율이다. 2004년 국립보건원 자료에 의하면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을 보이는 중년남성은 약 35%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병원을 찾는 경우가 적다. 고대 안산병원 정신과 한창수 교수는 “남성의 우울증을 방치하는 사이 증상이 심해지면 좀 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해 실제 자살에 이르게 될 확률이 여성보다 높다”며 심각성을 경고했다.
보통 남성이 여성보다 심리적으로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점점 쌓이고, 대인관계 문제,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인해 중년기 우울증이 찾아오기 쉽다. 평소 지나치게 세심하거나 꼼꼼한 성격, 강박적인 성격일수록 잘 걸린다.
가장 많은 원인은 단연 직장과 관련된 스트레스다. 감원이나 실직, 퇴직 등에 대한 압박감 으로 좌절을 느끼는 경우에는 쉬 몸이 피로하고 성취감이 떨어진다. 또 직장의 문제가 가장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다음으로는 기러기 아빠나 주말부부처럼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경우, 이혼이나 사별 등으로 인해 혼자 사는 남성도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여도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대상이다.
▲ 고대 안산병원 한창수 교수가 우울증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 ||
대부분의 우울증 환자가 밤에는 잠을 잘 이루지 못해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로 일상생활을 리듬을 잘 유지하는 것이 우울증의 예방·치료하는 데 중요하다. 매일 20분 이상 따뜻한 햇볕을 쪼이며 가벼운 산책을 하는 등 적당한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잘 이겨내려는 노력과 긍정적인 사고도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직업을 갖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많은 보수가 아니더라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 경희대의료원 신경정신과 장환일 교수의 조언이다.
가족이나 주변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증상이 심해 자살충동 등을 느끼는 경우라면 약물치료가 필요하므로 우울증이 의심된다면 정확한 진단부터 받는 것이 좋다. 또 치료되더라도 재발이 잦은 편이므로 가족이 주의해서 살펴야 한다.
이와 함께 대화를 많이 나누고 가장에 대한 관심을 갖고 권위를 인정해 주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지금까지는 그렇지 못했다면 오늘부터라도 가장의 역할을 만들어 작은 일에도 가장이 중심이 되도록 한다. 한창수 교수는 “환자의 의지가 약하다고 비난하거나 너무 조급해하는 것은 금물”이라며 “활력을 주는 여러 가지 활동을 권하되 조급하게 강요하지는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만약 환자가 자살, 죽음에 대해 말할 때는 반드시 전문가에게 알리고 함께 대처해야 한다. 죽음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울해하던 사람이 신변정리를 하거나 아끼던 물건을 주는 경우, “고맙다”는 투의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하는 경우, 외모에 전혀 무관심해지거나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는 등의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우울증 체크리스트
최근 자주 우울하거나 의욕이 떨어져 매사가 귀찮기만 하다면? 불안하고 허무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면 우울증은 아닌지 한번 체크해 보자. 우울증이 의심되는 증상은 다음과 같다.
1. 지난 2주 동안 적어도 다음의 항목 중 하나 이상에 해당되면 우울증으로 본다. 병원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 거의 하루 종일 우울하다.
△ 거의 매일 모든 것 또는 거의 모든 것, 하루 대부분의 활동에서 흥미가 떨어진다(자신 또는 주변에서 그렇게 느끼는 경우).
2. 다음 증상에서 4가지 이상이 있으면 우울증이 의심된다.
△ 갑작스런 체중감소나 증가, 또 식욕감퇴나 증가가 있다.
△ 불면 또는 지나치게 잠을 많이 잔다.
△ 늘 불안하고 기분이 처지는 느낌이 든다.
△ 쉽게 피로를 느끼거나 활력이 없다.
△ 사는 것이 무가치하고, 잘못 살고 있다는 죄책감이 든다.
△ 사고력, 기억력, 집중력이 떨어지고 우유부단해진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경희대의료원 신경정신과 장환일 교수, 고대 안산병원 정신과 한창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