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미래질병 유전자에 써있다
▲ 유전자 검사를 위해 채취한 샘플을 분석하는 모습. 사진제공=파마코디자인(주) | ||
만약 친가나 외가를 통틀어 ‘우리 가족 중에 이런 병이 많은데’싶어 걱정이 되거나 본인 스스로 건강이 염려된다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유전자 분야의 성과인 유전자 검사를 활용하면 당뇨나 고혈압, 폐암, 치매 등 자신이 걸리기 쉬운 질병을 미리 파악해 건강관리에 참고할 수 있다.
건강검진을 해도 특별히 아픈 데는 없다는데 몇 개월 전부터 쉬 피로하고 무기력해진 느낌이 드는 L씨(42). 우연히 노화방지클리닉을 찾았다가 유전자검사를 한번 받아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검사 결과 해독기능이 떨어져 독성물질이 쌓여 있고, 심혈관질환의 발병 위험이 높은 편이라고 했다. 그 후 약 3개월 정도 해독기능을 도와주고 심혈관질환 예방에 도움이 되는 식생활을 하면서 항산화제를 복용한 결과 대부분의 증상이 사라졌다. 다시 검사를 해보니 이상 수치도 현저히 개선돼 있었다.
요즘 L씨처럼 건강관리에 관심이 많은 중년층에서 유전자검사를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유전자를 구성하는 DNA를 분석해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타고난 유전적 질병 소인을 확인하는 것이 유전자검사. 유전자검사 업체인 파마코디자인 조은진 대표는 “지난해 병원을 통해 의뢰받은 유전자검사는 1만여 건이었으나, 올해는 무려 4만여 건으로 크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흔히 ‘피는 못 속인다’ 는 말들을 한다. 부모에게 물려받는 것은 쉽게 눈에 띄는 외모만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질병도 물려받게 된다. 부모가 당뇨병이나 비만으로 고생하는 경우에는 자녀들도 같은 질병에 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유전자 검사의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자신이 걸리기 쉬운 치명적인 질병을 미리 알고, 여기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폐암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면 담배를 끊는 등 폐암의 위험요소를 줄이는 생활로 폐암을 예방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혈액이나 머리카락 등을 이용한 검사법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간단하게 타액을 이용하거나 피부에 살짝 붙였다 떼는 스티커 등을 이용해 유전자를 채취하는 방법이 등장했다. 삼진제약(주)과 (주)진뱅크에 의해 최초로 개발된 스티커형 유전자 검사법의 경우 특수시약으로 처리된 파스와 같은 2장의 스티커를 피부에 약 15~20초 붙였다 떼서 피부세포를 채취해 분석한다.
또 대형 종합병원뿐 아니라 동네 개인병원에서도 쉽게 받을 수 있다. 비용은 많게는 수백만원을 호가하는가 하면 검사 업체에 따라 20개 정도의 항목을 종합적으로 검사해도 40만원 정도로 저렴한 곳도 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위험도를 알 수 있는 질병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폐암이나 당뇨, 고혈압, 비만, 골다공증, 심혈관질환, 치매, 요통 등으로 다양하다. 아토피, 천식 등 최근 늘어나고 있는 알레르기 질환 관련 유전자도 검사가 가능하다.
△폐암=폐암과 관련된 유전자는 CYP1A1과 GSTM이 대표적이다. CYP1A1은 흡연을 했을 때 발생하는 발암물질의 활성을 촉진시키는 유전자이고, GSTM는 CYP1A1에 의해서 활성화된 발암물질을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GSTM 유전자가 없으면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으로 본다.
△치매=유전에 의해 생기는 알츠하이머형 치매와 관련된 대표적인 유전자는 4가지. 65세 이전에 생기는 치매는 PS1, PS2, APP유전자가 관여하는데, 전체 치매환자의 1% 미만이 여기에 해당된다. 65세 이후에 생기는 치매라면 ApoE 유전자가 관여한다. 50% 이상의 치매환자가 이 유전자와 관련이 있다. ApoE는 세포내의 콜레스테롤·지질대사를 조절하는 데도 관여해 동맥경화 위험도나 면역기능을 체크하는 데 참고가 된다.
△심혈관질환=심혈관의 확장과 수축에 관여하는 안지오텐 전환효소(ACE) 유전자의 변이여부를 검사해 심근경색 발병 위험을 체크한다.
△당뇨병=FABP2라는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지방질 흡수가 늘어나고, 과도하게 흡수된 유리 지방산이 인슐린 저항성을 초래하게 된다.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면 포도당이 세포 내로 들어가지 못하고 혈액에 그대로 남는다. 이때 우리 몸은 인슐린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 많은 인슐린을 계속 만들다가 마침내 더 이상 생산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당뇨병이다.
△비만=지방분해와 관련된 유전자는 ADRB-2와 ADRB-3유전자. 이 유전자에 변형된 경우에는 같은 열량을 섭취하고 같은 양을 소모한다 해도 선천적으로 지방분해율이 낮아 몸 안에 쉽게 지방이 축적되기 쉽다. 참고로 부모 중 한쪽이 비만인 경우 자녀의 비만 확률은 40%이며, 부모 모두 비만인 경우에는 60%로 보고돼 있다.
△알코올=인체가 알코올을 섭취하게 되면 간은 알코올을 분해하기 위해 알코올 분해효소에 의한 대사 과정을 진행한다. 그중 ALDH2라는 효소가 알코올 분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ALDH2 효소의 분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알코올 섭취로 인한 독성이 몸 안에 쌓인다. 독성이 많이 쌓여 ALDH2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면 효소의 활성이 70% 정도 감소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만약 유전적으로 알코올 분해 능력이 낮은 타입인데도 알지 못하고 음주량이 지나칠 경우에는 건강을 해치게 된다.
△요통=요통의 원인 중 하나로 주로 40세 미만의 청장년에게 많이 생기는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강직성 척추염 환자 412명을 대상으로 한 국내 연구에 따르면 강직성 척추염 환자의 93%가 HLA-B27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HLA-B27 유전자 유무를 검사해 요통, 관절염 위험도 체크가 가능하다.
△골다공증=VDR은 우리 몸 안의 비타민 D에 관여하는 유전자다. 비타민 D는 칼슘과 뼈의 대사를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비타민인데, VDR에 이상이 생기면 비타민 D의 활성에 지장을 초래하므로 골다공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골다공증의 75% 정도가 이러한 VDR유전자의 변이에 의해 발생된다고 한다.
유전자검사 결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금물이다. 유전자 검사·보관 바이오벤처인 진뱅크의 대표이기도 한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김인현 교수는 “특정 질병의 위험도를 알려주는 관련 유전자에 변이가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 비해 관련 질환에 대한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의미”라며 “반드시 해당 질환에 걸린다는 뜻은 아니다. 건강염려증에 가까울 정도로 지나친 걱정을 하기보다는 해당 질환에 대한 위험이 높다는 생각으로 예방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반대로 유전자 변이가 없다고 해서 자신이 해당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의미도 아닌 만큼 과신해서도 안 된다. 유전적인 원인이 없더라도 오랫동안 잘못된 식생활이나 생활습관을 지속하는 경우에도 질병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검사를 통해 유전자 변이가 발견되는 경우에는 검사결과를 바탕으로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는 것이 좋은지 주치의와 상의하도록 한다. 즉, 위험도가 높은 질병의 위험요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줄여나가는 동시에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 등 건강한 생활습관으로 하나씩 바꾸어 나가야 한다.
유전자 검사를 받고자 할 때는 병의원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다. 가끔 유전자 검사 업체에서 ‘유전자상담사’라고 해서 직접 검사를 하거나 약국에서 실시하는 것은 불법이다.
나에게 필요한 유전자 검사
유전자검사를 받으려고 할 때는 많게는 20가지 정도의 항목이 있다. 모든 항목을 전부 검사하기 어려울 때는 자신의 가족력 등을 고려해 위험요인이 큰 항목 위주로 검사를 받으면 된다. 각 연령대별로 필요한 유전자 검사 항목은 다음과 같다.
△ 신생아 - 비만
△ 어린이·청소년 - 비만, 아토피, 천식, 심혈관질환, 소아당뇨, 요통
△ 20~30대 - 심혈관 질환, 당뇨, 알코올, 요통
△ 40~50대 이후 - 기본적으로 모든 항목에 해당된다. 특히 치매, 폐암, 골다공증, 당뇨, 고혈압 관련 유전자 검사는 받는 것이 좋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김인현 교수, 파마코디자인 조은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