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짐 줄이기, 여행 짐 줄이기부터!
저는 지금도 작은 배낭 하나만 메고 다니니 출입국 수속이 간편합니다. 예전에는
짐 톰슨의 집. 티크목으로 못을 사용하지 않고 지었다. 집 안에 그가 인도차이나에서 수집한 그림, 도자기 등 예술품들을 보존하고 있다.
방콕 시내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짐 톰슨 하우스(Jim Thompson House)가 있습니다. 쏘이 가셈산 2로에 있습니다. 그는 태국의 실크산업을 세계적으로 알린 미국인입니다. 그가 생전에 살던 집과 예술품들은 국립 박물관의 하나로 공식 등록되어 관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애 마지막은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1967년 3월. 짐 톰슨은 친구들과 말레이시아 카메론 하이랜드로 휴가를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정글속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실종된 것입니다. 카메론 하이랜드는 쿠알라룸푸르에서 4시간 걸리는 드넓은 고원지대로 외국인들의 휴양지입니다. 밀림과 차밭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대대적인 수색작업에도 불구하고 끝내 아무 단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건축가였던 그는 2차대전 중 미군 장교로 근무하다 1945년 방콕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미군정보부로 일하며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돌아가지 않고 방콕에 남아 실크산업에 헌신하게 됩니다. 그는 동양문화와 태국 실크의 아름다움에 깊은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의 사업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것은 영화 <왕과 나>에 그의 실크작품이 선보이면서 부터입니다. 그는 태국 전통 건축에도 관심이 깊었습니다. 여섯 채의 그의 집은 티크목으로 못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시골과 인도차이나를 직접 다니며 수집한 그림과 도자기들과 가구들이 이 집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동양의 문화와 예술을 사랑했는지 느낄 수 있는 장소입니다. 열대림 속 우아한 목조건축물과 정원에 그의 예술감각이 생생하게 묻어나옵니다. 아름다운 실크 색감처럼.
파타야에서 30분 걸리는 산호섬 해변의 관광객들.
다시 파타야(pattaya) 해변입니다. 유난히 거리에서 중국말과 한국말이 많이 들립니다. 휴가철이니까요. 오랫만에 이곳 워킹 스트리트에 있는 한 카페를 찾아나섭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나나. 카페의 여주인입니다. 아직도 장사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15년 전쯤 저와 취재팀이 이 카페에 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 나나가 이 카페를 하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스물두 살 때 나나는 이곳 파타야 해변에서 한 외국인 청년을 만났고 사랑에 빠졌습니다. 처음 만난 장소가 바로 이 카페입니다. 노르웨이 청년은 여행이 끝나 돌아가고 몇 년간 소식을 주고받았습니다. 그후 연락이 끊기며 그녀의 슬픔은 깊어졌습니다.
어느 날 나나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며 밤늦게까지 일해 번 돈으로 이 카페를 임대했던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가 돌아오리라. 한번쯤은 이 카페에. 참 기막힌 얘기였습니다. 인파 사이를 뚫고 골목을 돌아 찾아봅니다. 많이 변했지만 이름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자리엔 커다란 나이트클럽이 생겼습니다. 당시 ‘Hotel California’가 울리던 카페. 지금은 번쩍이는 조명과 아델의 ‘Hello’가 흐느끼듯 흐릅니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 물어봅니다. 나나에 대해서. 그런데 반가운 소식을 듣습니다. 현지인과 결혼해서 몇 년 전 파타야를 떠났다는 겁니다. 뒤늦은 결혼입니다. 해변을 걸으며 노르웨이 청년이 한번쯤 왔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결코 줄일 수 없는 관계의 짐들. 그의 죽음도, 그녀의 상처도 어떤 관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워지지 않는 관계의 짐을 안고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짐을 줄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여행하며 줄여보고 이사하며 줄여보고 작은 일부터 줄이다보면 크디큰 인생의 짐도 줄일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때로는 사람과도 작별해야만 합니다. 내가 가벼워야 남의 것도 들어줄 수 있습니다. 끌어안은 짐을 다 안고 가려면 탐욕이 생기고 그 탐욕이 또하나의 짐이 됩니다. 가장 무서운 짐이 탐욕입니다. 저도 그 탐욕의 짐을 지고 살았습니다. 그것을 나중 깨달았습니다.
길을 떠나면서 짐을 줄입니다. 인생은 빈손의 여행입니다.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것은 여행하며 물어봅니다. 맑은 호수에게, 침묵하는 산들에게 그리고 길 위에서 처음 만난 그대에게.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