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심 잡고 ‘통큰 베팅’ 이명박 압박
▲ 지난 2월 16일 방미 중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LA 동포 환영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
먼저 박 전 대표가 6월이나 9월이나 경선 시기는 별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박 전 대표의 당심 우위론이 자리 잡고 있다. 설 연휴 전후에 실시된 비공개 당 대의원 대상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는 이 전 시장을 10% 가까이 앞선 것으로 알려진다. 이 전 시장 캠프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도 3%가량 앞서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친박 계열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우리는 선거인단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대의원(20%)과 당원(30%) 지지율에서 이 전 시장을 앞서고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전체 선거인단의 30%를 차지하는 일반국민선거인단 투표에서도 박 전 대표 지지자들의 열성도가 이 전 시장의 지지자들보다 높기 때문에 적극적인 투표에 나설 것이다. 이렇게 되면 20%가 반영되는 여론조사에서는 이 전 시장에게 크게 밀릴지라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 또한 앞으로 후보 검증 문제가 더 튀어나올 경우 ‘안정적인 후보’를 원하는 국민들이 박 전 대표 쪽으로 더욱 쏠릴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박 전 대표의 당심 우위론은 그의 ‘대도박’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친 이명박 계열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지난 2006년 서울시장 경선의 예를 보자. 그때 맹형규 의원이 당심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여론조사와 일반 국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오세훈 후보가 승리했다. 한나라당 대의원들의 구성이 민정당 체제 이후 많이 변화된 게 사실이다. 그들은 본선에서 꼭 이길 수 있는 후보를 향해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이다”라고 전제하면서 “박 전 대표가 대의원들만을 믿는 것은 잘못이다. 박 전 대표의 근거지인 대구경북 지역의 경우 대의원들 세력 분포가 이 전 시장으로 많이 쏠려 박 전 대표 측에 비상이 걸렸다는 얘기도 있다. 이번 6월 경선 수용은 이 전 시장의 당심 장악력을 과소평가한 박 전 대표의 무리수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박 전 대표의 6월 경선 실시 수용의 배경에는 당심 우위론 외에도 믿는 구석이 또 하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박 전 대표로서는 원칙을 지키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는 동시에 이 전 시장에게도 뭔가 양보안을 내놓으라는 압박전술을 펴는 일석이조 효과를 노렸다고 본다. 그리고 어차피 경선 시기 문제는 손학규 전 지사가 9월 이후 실시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쪽이 알아서 해줄 경우 9월 실시도 관철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로서는 9월 경선이 오히려 더 불리할 수도 있다고 판단해 6월 실시를 받아들였다는 주장도 있다. 여의도의 한 보좌관은 “9월이 되면 여권 후보가 가시화되는 시점이다. 이때까지 이 전 시장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남아있을 경우 여권은 이 전 시장을 무너뜨리기 위해 집중포화를 퍼부을 것이다. 그럴 경우 박 전 대표는 양강 구도의 희생양이 되어 1약 후보로 전락할 수 있다. 국민들 관심이 여야 대표주자 간의 대결에만 매몰될 경우 박 전 대표로서는 손 쓸 새도 없이 관심권 밖으로 멀어져갈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또한 박 전 대표로서는 6월 경선을 합의해줘도 그 3개월 동안 후보 검증 유탄에 결국 이 전 시장이 낙마할 것이라는 계산을 했을 수도 있다는 해석도 있다. 여기에는 박 전 대표 측이 자신들이 확보하고 있는 ‘이명박 X파일’의 파괴력을 믿고 있을 가능성과, 여권에서 가장 확실한 X파일 몇 개를 터뜨릴 경우 이 전 시장이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도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이 전 시장 측은 “웬만하면 변수를 만들지 말고 합의를 도출해내자”는 쪽으로 내부정리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박 전 대표는 지난 3·1절을 전후해 이틀 정도 잠행해 관심을 모았다. 박 전 대표는 경선 ‘6월 실시’ 원칙을 굳히고 철저한 전투 대비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는 최근에 당 소속 의원들이나 각종 시민사회단체, 이익단체의 장급 인사 등과 두루 만나며 저인망 작전에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이는 현재의 경선 시기와 방법 등에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바닥을 훑으면 이길 수 있다는 대 결단 끝에 나온 계획된 행보로 해석된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