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더투표·알바동원 얼룩…“계파 없다” 이정현 선언 불구 계파 골 더욱 ‘쩍쩍’
하지만 당내에서는 벌써부터 전당대회의 후폭풍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계파청산을 부르짖었지만 선거 막판에는 친박과 비박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유례없는 진흙탕 계파 싸움을 벌였다.
새누리당은 지난 9일 전당대회에서 호남 출신 이정현 의원을 당대표로 선출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전당대회 경선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친박과 비박은 세 결집을 시도하며 계파 싸움에 불을 붙였다. 선공은 비박계 수장격인 김무성 전 대표였다. 김 전 대표는 지난 7월 14일 전당대회 승리 2주년을 기념해 지지자 1500명을 모아 대규모 행사를 치렀다. 전당대회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김 전 대표가 지지자들과 대규모 행사를 갖자 전당대회를 겨냥한 세 결집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김 전 대표는 행사 이후 물밑에서 비박계 후보들을 지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대표는 경선 직전 “주호영 후보가 당대표가 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라며 공개적으로 비박계 주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에 질세라 친박계 맏형격인 서청원 의원은 전당대회 후보 등록을 불과 이틀 앞둔 시점에 친박계 의원들과 대규모 만찬 모임을 열었다. 서 의원 측은 전당대회 불출마 결정을 사과하기 위한 순수한 자리라고 해명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역시 전당대회를 겨냥한 친박계의 세 결집 자리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양 진영은 계파 청산을 최우선 과제로 꼽으면서도 노골적으로 계파별 단일화를 시도했다. 친박계의 후보 단일화는 무산됐지만 비박계는 주호영 후보를 비박 단일 후보로 선출하는 데 성공했다.
새누리당 계파갈등은 이른바 ‘오더 투표 문자’ 의혹이 제기되며 극에 달했다. 특히 두 진영의 핵심 의원들은 대리인을 내세우는 교묘한 방식으로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찍어달라는 사실상의 지시 문자를 뿌렸다.
친박계는 이정현 후보를 찍어 달라는 문자를 대량 살포했고, 비박계는 아예 당대표뿐만 아니라 최고위원 후보까지 투표해야 할 사람을 정해 문자를 보냈다.
친박 한선교 후보는 지난 6일 열린 수도권합동연설회에서 “어젯밤부터 날아다니고 있는 문자”라며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한 후보가 공개한 문자메시지에는 ‘당대표 후보는 비주류 단일후보 기호4번 주호영, 최고위원에는 기호7번 강석호, 여성 최고위원은 기호6번 이은재, 청년 최고위원은 기호3번 이부형 후보에게 투표하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곳은 새누리당 박성중 의원 사무실이었다. 박 의원은 김무성 당대표 비서실 부실장을 지낸 대표적인 김무성계 인사다. 다음은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이다.
“의원 사무실 번호로 이런 내용의 단체 문자를 보내면 당연히 계파 나누기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데 설사 그런 비판을 받더라도 당원들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해 이기고 말겠다는 이판사판식 행동이었다. 계파갈등을 청산하겠다면서 계파 총력전을 벌인 셈이다. 전당대회를 치르면서 최소한 지켜야 할 선까지 넘어버린 느낌을 받았다. 초선 의원들의 경우에는 계파 분류가 모호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번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누가 누굴 도왔는지 서로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계파 청산을 외쳐도 계파갈등이 해소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계파갈등의 해소였는데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계파갈등이 봉합되기는커녕 상처가 더 벌어졌다는 얘기다. 당내 인사들이 전당대회 후폭풍을 우려하는 이유다.
실제로 유일한 비박계 최고위원인 강석호 최고위원은 지난 10일 전당대회 이후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원들이 의문을 갖고 있는 사항은 하나씩 밝혀야 하고 투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친박계의 공천개입 녹취록 파동 등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시사했다. 이정현 신임 당대표가 계파 청산 선언을 한 다음날 보란 듯이 친박계를 겨냥해 포문을 연 것이다.
게다가 전당대회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문제가 추후 새누리당의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번 전당대회는 예년과 달리 최고위원과 당대표를 분리해 선출했다. 지난 2014년 치러진 전당대회에서는 1등을 하지 못해도 순위 안에만 들면 최고위원이 될 수 있었지만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당 대표 경선에서 패하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도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당연히 경선이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여러 가지 잡음도 들려왔다.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5일 이주영 후보의 지지자인 A 씨를 불법선거운동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선관위에 따르면 A 씨는 인터넷 구직 사이트를 통해 일당 8만 원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청년 응원단 30여 명을 모집했다. A 씨는 이렇게 모집한 청년응원단을 관광버스로 7월 31일 경남 창원에서 실시한 새누리당 제1차 합동연설회에 참석시켰다. A 씨는 청년응원단에게 13만 9000원 상당의 음식물을 제공하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이 후보 측은 일부 지지자의 개인 일탈 행동일 뿐이라며 후보 자신과의 연루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 조사 과정에서 후보와의 연결 고리가 발견된다면 전당대회 스캔들로 비화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특히 전당대회가 치열했던 만큼 다른 후보자들도 이와 비슷한 비위 사실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검찰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