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파워게임 막후

‘권력의 심장부’ 최후에 웃는 자 누구?

	▲ 청와대 비서실장에 내정된 문재인 정무특보(왼쪽)와 청와대 핵심 요직인 국정상황실장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안희정 씨.

노무현 대통령이 9일 한명숙 전 총리 후임으로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를 지명하는 한편 이병완 비서실장 후임으로는 문재인 정무특보를 내정했다. 노 대통령은 이들이 참여정부 마지막 총리, 비서실장이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는 만큼 마지막까지 고심을 거듭했을 것이 분명하다. 총리 후보와 관련해서는 ‘충청 총리론’이 유력한 것으로 관측됐으나 노 대통령은 안정적인 국정관리 차원에서 한 지명자를 선택했다. 비서실장 후보로는 문재인 내정자와 실무형인 김병준 정책특보가 경합을 벌였지만 결국 문 내정자의 손을 들어줬다.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내각은 실무형이지만 친정이 가능한 형태로, 비서실은 정국을 주도할 친위체제로 만들어 임기 말 기강을 바로세우겠다는 구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청와대 주변에서는 이번 인선 과정에서 참여정부 마지막 내각과 비서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친노그룹 내 계파간 파워게임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진행된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1년도 채 남지 않은 참여정부의 권력 심장부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친노그룹의 권력암투 실태를 진단해 봤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참모진과 노 대통령 측근그룹을 중심으로 권력암투가 치열하게 전개돼 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내각이나 청와대 비서실은 물론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산하기관 인사 과정에서 이들 측근그룹의 파워게임은 정점에 달하곤 했다.

노 대통령의 측근그룹은 크게 시니어그룹과 PK(부산 경남)사단, 386 세대 참모그룹 등으로 구분되고 있다. 시니어그룹에는 노 대통령의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 씨와 염동연 의원, 이강철 정무특보, 정찬용 전 인사수석 등이 포진해 있고 PK사단은 문재인 내정자와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이 이끌고 있다. 또 386 참모그룹은 연대파인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과 고대인맥을 대표하고 있는 안희정 씨가 주류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집권 초 평평한 균형관계를 유지했던 세 그룹은 크고 작은 정치적 사건에 따라 부침을 달리했다. 386 그룹 대표주자로 참여정부 초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이광재 의원은 2003년 10월 여권의 청와대 인적쇄신 압박을 못 이기고 낙마한 후 2004년 총선을 통해 재기했다.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PK사단을 이끌고 있는 문 내정자는 2004년 2월 여권의 차출론 공방에 휘말려 비서실을 나왔다가 3개월여 뒤에 다시 시민사회수석으로 재입성한 후 다시 민정수석을 거쳐 지난해 5월 또 사퇴했다. 야인으로 돌아간 문 내정자는 지난해 10월 노 대통령 정무특보로 임명돼 정치활동을 재개하다 이번에 비서실 수장자리에 올랐다.

시니어그룹은 호남인맥을 대표했던 정찬용 전 인사수석이 2005년 5월 이른바 ‘행담도 게이트’에 연루된 의혹으로 낙마하면서 권력의 중심축에서 멀어져 갔다. 대통령 정무특보로 활동하고 있는 이강철 특보만이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을 뿐이다.

시니어그룹 몰락 이후 청와대의 권력은 PK사단과 386 그룹이 양분해 왔지만 역할이나 양적인 측면에서 PK사단은 386 그룹의 파워에 미치지 못했다. 4년 넘게 청와대 비서실을 장악해 온 386 그룹은 권력이 비대해 지면서 연대와 고대 인맥으로 나뉘어 자기들끼리 권력 암투를 벌이기도 했다.

386 그룹의 득세는 당청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기도 했고 정책 오류 등 적잖은 부작용을 양산하기도 했다. 정찬용 전 수석과 함께 행담도 게이트 구설수로 물러난 정태인 전 비서관이 지난해 무죄 판결을 받은 후 386 그룹의 무능과 현 정부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노 대통령이 실무형 비서실장으로 거론됐던 김병준 특보 대신 문 내정자를 마지막 비서실장에 임명한 배경에는 비대해진 386 그룹의 기강을 다잡는 동시에 임기 말 권력형 비리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노 대통령의 절대적 신뢰를 받고 있는 문 내정자는 노 대통령의 의중을 실어 비서실 체제 개편 등 친정체제를 강화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부 강경파 386 그룹의 일방통행적 정책을 제어하고 잡음이 많았던 일부 386 라인에 대한 인적쇄신도 단행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PK 사단을 대표하는 문 내정자가 실세 비서실장 자리를 꽤찬 만큼 앞으로 청와대 권력의 중심추는 PK사단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고 386 그룹은 상대적으로 권력 파워게임에서 밀리는 형국으로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 대통령의 또다른 핵심 측근이자 386 그룹 리더격인 안희정 씨가 후임 총리로 적극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우식 과기부총리가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하고 총리 인선에서 낙마했다는 사실은 임기 말 권력 파워게임에서 밀리고 있는 386 그룹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386 그룹도 호락호락 밀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386 투톱인 이광재 의원은 원내에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고 안 씨 또한 이해찬 전 총리의 방북과 관련해 모종의 역할론이 제기되는 등 막후에서 재기를 다지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특히 안 씨는 조만간 단행될 청와대 비서실 개편 때 핵심 요직인 국정상황실장에 오를 가능성도 일부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문 내정자를 중심으로 한 PK사단의 굳히기냐, 안 씨의 청와대 입성을 계기로 한 386 그룹의 건재 과시냐를 놓고 친노그룹의 권력암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홍성철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