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노래방서 한국 여성들 체포당해…“날조된 진술서에 서명 강요받아” 탄원
‘저는 매춘부가 아닙니다.’
성매매 혐의를 받은 서 아무개 씨는 지난 2월 청와대, 외교통상부 앞으로 ‘성매매를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보냈다. 서 씨를 비롯한 한국 여성 다섯 명은 당시 한 달째 멕시코시티의 W 노래방에서 종업원으로 일했다. 서 씨는 탄원서를 통해 지옥 같았던 지난겨울 밤을 회상했다.
지난 1월 15일 밤, 복면을 쓰고 기관총과 권총을 든 현지인 50여 명이 노래방에 나타났다. 멕시코 검찰 관계자였던 이들은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양 씨를 비롯한 종업원들을 차에 태워 어디론가 데려갔다. 이들은 종업원들에게 양 씨로부터 감금을 당하고 성매매를 했다고 말하도록 요구했다.
서 씨는 탄원서를 통해 “장장 40시간 동안 변호사와 통역사를 불러 달라고 말했지만 모든 것이 묵살됐을 뿐만 아니라 총으로 협박을 당했고 먹고, 자고,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며 “사실이 아닌 진술서에 서명을 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버텼지만 지금 서명하지 않으면 허위진술 및 불법취업으로 감옥에 간다고 협박당했다”고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검찰 수사 도중 현지 한국대사관의 영사가 통역인을 데리고 이들을 찾아왔다. 영사는 종업원들에게 ‘1차 진술서에 서명해도 2차 진술서에 말하고 싶은 바를 모두 추가할 수 있다’고 말해 이들은 진술서 내용을 알지 못한 채 성매매를 인정하는 진술서에 서명을 하게 된다. 이들은 대사관에서 자국민을 보호해준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매매를 인정한 진술서는 변경이나 누락 없이 검찰에 넘겨져 이들이 성매매 혐의를 인정한 것이 돼 버렸다. 진술서에는 종업원들이 한 명당 2000페소(한화 약 12만 원)를 받고 성매매를 했다고 적혀 있었다. 멕시코에서 성매매는 불법이지만 검찰은 이들이 강압적으로 성매매를 강요당한 것이라 예외적으로 무혐의라는 처분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종업원들은 국내로 들어와 성매매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들의 주장처럼 사실이 아니라면 엉뚱하게 성매매 불명예를 떠안게 된 것이다.
주멕시코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영사는 조사 내용에는 관여할 수 없고 한국인들의 인권침해 여부에 대해서만 주재국 수사기관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며 “종업원들이 1차 진술을 부인해서 이들의 2차 진술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검찰 측에 물어봤던 것이었고, 2차 진술을 하려면 1차 진술에 먼저 서명을 해야 하는데 이들이 나중에 영사가 강제로 서명하게 했다고 와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멕시코 검찰은 이들을 구속한 이후 “지난 1월 15일 밤 양 씨가 일하고 있던 노래주점이 마약·무기밀매·매춘 등의 소굴”이라며 “양 씨가 종업원들을 감금하고 매춘을 시키는 등 불법을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다음 날 바로 <텔레비사> 등 현지 언론들은 ‘성매매를 강요당한 여성들이 검찰에 의해 구조됐다’는 내용으로 대서특필했다. 한 방송사에서는 뉴스 자료화면으로 걸그룹 소녀시대의 사진을 사용하며 한국 여성들이 성매매 알선을 많이 한다는 내용까지 보도하고 있었다.
양 씨의 경우 이 여성들을 감금하고 성매매를 하게 했다는 혐의로 산타마르타 감옥에서 7개월째 수감 중이다. 양 씨 지인들은 양 씨의 성매매 알선을 적극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양 씨는 당시 결혼을 앞둔 동생을 만나기 위해 멕시코를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양 씨는 3개월짜리 관광비자가 며칠 안 남아 귀국을 앞두고 있었다. 지인의 노래방 카운터 업무를 봐주다가 봉변을 당한 것. 양 씨가 일을 도와주던 W 노래방 점주 역시 양 씨와 같이 성매매 알선 혐의로 수배 중이다.
<일요신문>은 W 노래방 점주의 친형인 이 아무개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씨는 검찰의 성매매 수사에 여러 가지 잘못된 점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 당시 노래방에 있던 손님 역시 수사 대상인 동시에 검찰의 이해를 돕기 위해 통역을 했던 것. 이 씨는 “멕시코 현지 형사소송법 상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통역을 할 수 없는데 검찰에서 막무가내로 통역을 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지 변호사는 “법적으로는 공식 인가를 받은 공인 통역사가 통역을 해야 하지만 통역사가 몇 안 되는 실정이라 예외적으로 통역이 가능한 사람이 통역을 맡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이 씨는 “검찰은 종업원 여성들이 성매매를 했다는 증거로 노래방 화장실의 콘돔 사용문구를 제시했는데 내가 노래방을 자주 가봐서 알지만 그런 문구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검찰은 또 콘돔을 싼 휴지가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라고 말하지만 법원에서 진술한 정액감정사들은 당시 현장 보존이 돼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현장 증거물로 채택된 휴지에서는 정액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 씨의 친동생 역시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친동생 양 씨는 “언니는 한국에서 쇼핑몰을 운영하다 잠깐 관광하러 와서 봉변을 당했다. 그날도 귀국 전 파티를 하기로 했던 날이었다”며 “애초에 신고한 고소인이 법원에 나오지 않아 신원을 추적했지만 없는 사람인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이 애초에 모든 것을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멕시코시티 내 교민들은 하나같이 한국인 성매매가 있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민은 “10년 동안 여기에서 살고 있지만 노래방에서는 홀 서빙을 하는 것 외에는 성매매가 일어날 수 없다”며 “종업원 분들이 관광비자로 불법 취업을 해 세금을 내지 않은 것 정도만 처벌받아야 하며, 양 씨의 경우에는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사관 관계자는 “연방법원에 헌법소원을 했고 8월 중 심리를 하고 12월 중 결정이 날 것으로 보이는데 멕시코에서는 절차가 더디게 이뤄져 언제 결론이 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