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보다 돈 때문”…상납 압박 시달려온 북한 엘리트들 동요
8월 17일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귀순한 태영호 주영국 북한공사. 사진출처=유튜브 캡처
무엇보다 궁금한 대목은 태영호 공사가 어떤 이유로 한국행을 택했는지다. 17일 태 공사의 귀순 소식이 전해진 이후 국내외 언론들은 이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과 추측을 내놓았다.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부분은 태 공사의 가족들이다. 태 공사는 현재 부인과 2남 1녀의 자녀를 둔 가장이다. 올해 스물여섯 살로 알려진 장남은 영국의 대학에서 공중보건학 학위를 수료했으며 차남은 현지 고교 졸업 후 임페리얼 칼리지에서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할 예정이었다.
복수의 언론들은 태 공사의 망명 결정에 특히 차남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무엇보다 태 공사가 임기를 마치고 평양 복귀가 결정됨에 따라 입학예정이었던 차남의 학업 수행이 어려워졌고, 한편으론 오랜 기간 서구 사회에서 살아온 자녀들이 억압된 북한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면이 많았을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북한 고위급 당국 출신의 한 탈북자는 태 공사의 망명 직후 <일요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차남의 학업 중단이 태 공사의 망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지만 결정적인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라며 “북한의 외국 주재원 자녀들, 특히 유학길에 오른 인재들은 부모들의 주재와 무관하게 현지서 학업을 수행하기도 한다. 태 공사의 신분 정도면 학업을 이수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보다는 역시 ‘돈’ 문제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진단된다. 앞서의 탈북자는 “태영호 공사뿐만 아니라 무역일꾼을 포함한 북한의 해외 주재원들은 본국으로의 상납 압박에 시달린다”라며 “매번 본국에선 ‘창의적인 방식의 외화벌이’를 강요하지만 UN제재 이후 북한은 외교적 고립에 처해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의 해외 주재원들은 매년 최소한 3만~5만 달러가량의 개인적 자금을 상부에 상납하고 있다. 이는 개인적 상납금일 뿐 주재기관 사업 차원에서의 상납은 별개라는 후문이다. 주재원들은 이러한 상납액을 마련하기 위해 각종 사업을 진행하지만 사실상 정상적인 형태의 사업은 손에 꼽힌다. 대부분 마약, 무기거래 등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돈을 모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UN제재까지 강도 높게 진행되면서 북한과 거래하려는 이들도 자취를 감추고 있는 모양새다. 결국 해외 주재원들의 압박은 갈수록 심각해졌고, 비공식적인 이탈자들이 속출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서방국가에 주재한 바 있는 국내 한 외교 관료는 “늦은 밤에 조명을 소등해 어두운 공관은 항상 북한 공관이었다. 제3세계 국가들의 공관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라며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북한 주재원들은 상당히 궁핍한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영호 공사가 근무했던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전경. 연합뉴스
실제 태영호 공사 역시 현지 생활이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태 공사는 런던의 오랜 주택가에 위치한 공관에서 생활했다. 태 공사의 과거 강연 영상에 따르면, 해당 공관은 침실 두 개의 비좁은 공간에 주택가에 위치한 터라 인공기 게양조차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주변 인물에 따르면 태 공사가 혼잡통행료조차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태 공사가 580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비자금을 챙겨 나왔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앞서의 고위급 출신 탈북자는 “비자금을 개인적으로 챙겨 나왔다면 잠적을 했을 것”이라며 “일전에도 해외에서 관리되는 통치목적의 비자금 일부를 챙겨 나간 주재원들이 있었지만 남으로 귀순하거나 제3국으로의 망명보단 후일을 생각해 잠적한 경우가 더 많았다”라고 반박했다.
다만 그는 “역시 천문학적 규모의 비자금을 들고 잠적한 노동당 소속 자금책이 지난 6월 잠적했고, 태 공사가 이에 대한 추적 임무를 받들어 상부의 압박을 받았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라며 “태 공사는 영국 이외에도 오랜 기간 유럽 전역에서 근무 경험이 많고 실제 주재원들을 감시 및 통제하는 위치였기 때문에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상당한 위치에 있는 태 공사의 이번 망명 이후 추가적인 이탈자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른바 태영호발 엑소더스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기자와 만난 한 대북 소식통은 “이미 지난 2013년 11월 장성택 숙청을 전후해 북한의 해외 주재원들이 이탈하거나 소환돼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라며 “지금은 성격이 다르다. 당시는 자의반타의반 성격의 이탈이 많았다. 현재는 북한 최고 엘리트 인사의 자발적 망명을 목격한 셈이다. 주재원들이 심적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미 상납 시스템에 대한 상당한 염증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이미 태 공사 이탈 직후 해외 현지에 검열단을 급파해 해외 주재원들에 대한 강도 높은 감찰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된다. 해당 감찰에는 주재원들과 그 가족들이 근무하고 생활하는 공관 및 숙소에 대한 수색이 진행될 것으로 보이며 이 과정에서 특이사항이 발견되면 본국 소환 뒤 처벌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이러한 해외 감찰은 장성택 숙청 당시 한 차례 대대적으로 이뤄진 바 있다.
앞서의 대북 소식통은 “이번 특별감찰은 악순환일 뿐”이라며 “이미 주재원들이 대대적으로 물갈이된 바 있는데 이번에도 감찰이 이뤄진다면 상납 시스템 운영 자체가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이러한 누수를 방지하는 통제 자체가 북한 당국에 상당한 부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RFA>는 태 공사의 망명과 관련해 북한 당국이 후속조치로 주재원들에 대한 가족동반 주재 제도를 폐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태 공사의 사례도 그렇지만 불과 한 달 전 이탈한 김철성 주러시아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 역시 가족과 동반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태영호는 누구? 부부 모두 항일 빨치산 가문…실제 영향력 황장엽보다 커 태영호 공사의 부친으로 알려진 태병렬 전 인민군 대장. 연합뉴스 태 공사는 이러한 집안 배경을 바탕으로 학창시절 중국에서 영어와 중국어를 수학했으며 귀국 후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 태 공사는 특히 김정일의 덴마크어 통역관으로 선발돼 1993년 덴마크 대사관 서기관으로 유럽 땅을 밟았다. 그 뒤 스웨덴 대사관과 본국의 유럽 국장을 거쳐 2006년 영국대사관에 부임했다. 태 공사 이름이 국제사회에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는 2001년 벨기에에서 열린 인권대화 자리였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고작 41세로 직책은 유럽국장(대리)이었다. 탄탄대로를 걸어온 셈이다. 태 공사의 부인 오혜선 역시 뼈대 있는 항일 빨치산 가문 출신이다. 오혜선의 조부인 오백룡 전 노동당 군사부장은 김일성 주석의 전우로 함께 싸운 항일 빨치산 1세대였으며, 오금철 군 총참모부 부총참모부장 역시 그의 친척으로 전해진다. 부부의 출신 성분만 놓고 보자면 빨치산 가문 중에서도 순도 높은 성골에 가깝다는 평이다. 외부에서 태 공사의 망명을 두고 주목하는 점도 바로 그의 출신 성분 때문이다. 물론 공식 직책으로 따지면 1997년 귀순한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비서에 한참 못 미치지만 출신 성분과 실제 영향력을 놓고 보자면 태 공사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황 전 비서의 경우 평범한 서당 집 출신으로 재능을 인정받은 학자 타입에 가까웠다. 황 전 비서의 귀순 당시 북한 내부에선 별 다른 이탈 및 동요가 없었지만 태 공사의 경우는 그 후폭풍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한] |
심층심문 후 특별 신변보호 조치 예상 태영호 공사의 향후 거취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탈북자들은 일반적으로 입국 후 일정기간 국가정보원의 합동심문을 받게 된다. 합동심문 기간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몇 주가 소요되며 이후엔 통일부의 신분 인도에 따라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하나원에 입소한다. 그곳에서 탈북자들은 일정 기간 교육을 이수하고 정부가 마련해주는 임대주택에 입주해 일상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태 공사의 경우 이 같은 일반적인 통로를 거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지난 4월 입국한 북한식당 종업원들의 경우처럼, 태 공사와 가족들 역시 장기간 합동심문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고위급 핵심층 인사라는 점에서 북한 권력층 내부에 대한 자세한 기밀 및 정보에 대한 심층 심문이 예상된다. 특히 태 공사는 유럽 내 김정은의 통치 자금 관리에 관여해 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조사가 심도 있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심문 이후에도 태 공사와 그 가족들은 다른 탈북자들과 공동 생활하는 하나원에 입소할 가능성은 적다. 태 공사가 앞서의 과정을 거쳐 사회에 나올 경우에도 우리 당국의 특별 신변보호 조치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변보호 조치는 북한 당국의 특별한 위협 및 제거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고위급 탈북자들에 한하여 취해지는 조치다. 특히 황장엽 전 국제비서의 피살시도 이후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한] |
북한 보위부 여권장사 ‘빨간불’ 북한은 최근들어 국가안전보위부 내 담당 기관을 중심으로 여권 발급 업무를 해왔다. 최근 북한 주민들은 어느 정도의 출신 성분이 보장된다는 전제하에 1인당 약 1400달러의 상납액만 마련된다면 과거에 비해 손쉽게 해외 출국이 가능해졌다. 특히 해외 유학을 목적으로 자녀들을 해외에 내보내는 북한 주민들이 급증했다. 이를 통해 보위부는 상당 금액의 돈벌이를 해왔고 상납액을 충당해 왔다. 기본 1400달러에 옵션을 조금 얹는다면 해외 체류 친척과 관련한 서류까지 위조해주며 여권 장사를 해왔다. 하지만 이번 태영호 공사 망명 사건으로 북한 보위부의 여권 장사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동안 보위부의 돈벌이 중 큰 몫을 차지해 왔던 여권 발급 장사가 부침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보위부 내부 차원의 부담 또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