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가 사위 안용찬 부사장이 키운 제주항공은 2005년 설립 후 최근까지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제공=제주항공
[일요신문] 지난 16일 애경그룹 계열사인 제주항공은 공시를 통해 600억 원 규모의 호텔 사업 투자 계획을 밝혔다. 서울 홍대입구역 복합역사 개발 사업으로 추진될 이 호텔의 운영권은 제주항공이 갖는다. 600억 원은 2015년 기준 제주항공 자기자본(2318억 원)의 25.9%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다.
제주항공은 탄탄한 항공 수요를 바탕으로 2005년 설립 후 최근까지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했다. 2016년 2분기 매출액은 전년 대비 13.8% 증가한 1621억 원을 기록했다. 하나금융투자증권은 8월 17일자 ‘조사분석’을 통해 “올 3분기 (제주항공은) 항공 성수기(7~9월)에 진입하면서 고정비 이상의 매출액을 달성해 이익 모멘텀이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6080억 원의 매출과 433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제주항공은 어느덧 애경그룹 내 핵심 계열사로 자리매김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저가항공(LCC) 시장의 파이를 키운 항공사는 진에어와 제주항공”이라고 말했다. 대형 국적 항공사들 틈에서 LCC 시장을 개척한 제주항공은 업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같은 실적을 바탕으로 애경가(家) 사위인 안용찬 애경그룹 부회장 겸 제주항공 대표는 그룹 후계구도의 변수로 거론되고 있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장녀 채은정 애경산업 부사장의 남편인 그는 아내와 함께 그룹 내에서 항공·생활사업 부문을 담당하고 있다.
안 부회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애경산업 역시 3년 만에 매출 규모가 1000억 원 이상 증가했다. 애경산업은 세제, 화장품 등을 판매해 수익을 내는 생활용품 제조업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애경산업은 2013년 3594억 원, 2014년 4069억 원, 2015년 4594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78억~272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안 부회장은 애경산업과 제주항공 두 계열사만으로 그룹 내에서 1조 원대의 매출을 책임진 셈이다.
애경그룹은 신사업 투자 등을 목적으로 내년 상반기까지 애경산업 기업공개(IPO)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시장은 애경산업의 기업가치를 약 4000억 원으로 보고 있다. 애경그룹 계열사 가운데 상장기업은 지주사인 AK홀딩스, 석유·화학업체인 애경유화, 지난해 11월 상장한 제주항공뿐이다. 만약 애경산업 IPO가 성공한다면 안 부회장이 키운 회사들은 나란히 그룹의 ‘간판’이 되는 것이다.
안 부회장은 그룹의 자금 융통에도 기여한 측면이 적지 않다. 안 부회장이 벤처 형태로 설립한 화장품 회사 네오팜은 지난해 12월 727억 원을 받고 한불화장품에 팔렸다. 그룹의 모태이자 최상위 지배기업인 애경유지공업의 재무상황을 고려하면 727억 원은 적지 않은 액수로 평가된다.
장 회장의 장남 채형석 총괄부회장 등 애경그룹 일가가 지분 100%를 소유한 애경유지공업은 과거 비누 제품을 생산하던 제조업체였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부동산 개발 실패 등에 따른 차입 부담으로 부채가 늘어나 현재 부채 규모는 2437억 원에 이른다. 반면 자본 총계는 147억 원에 불과해 자본잠식에 가까워진 상태다.
애경가 차남 채동석 부회장의 주력 사업 영역인 AK플라자(구 애경백화점)는 매출이 감소세를 보이는 등 경영성과가 신통치 않다. AK플라자 분당점 페이스북 캡처.
애경유지공업은 애경그룹의 ‘가족 경영’을 상징하는 회사다. 장 회장의 지분(8.18%)과 애경유지공업(9.73%)의 지분을 더하면 장남 채형석 부회장의 지분보다 많다. 앞서 2004년 장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채형석 부회장에게 그룹 총괄 업무를, 차남과 삼남, 장녀에게도 각각의 사업부문을 맡겼다. 경영권과 지분을 어느 한 쪽에 몰아주지 않은 것은 형제 간 협력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차남과 삼남은 기대만큼의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차남 채동석 부회장의 주력 사업 영역인 AK플라자(구 애경백화점)는 백화점 업계에서 5위에 머무르고 있으며, 지난 3년 간 매출액 또한 5000억 원 수준에서 점차 감소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남인 채승석 대표는 골프장 사업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구체적인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또 채승석 대표는 형인 채형석 부회장과 채동석 부회장이 한 사무실을 썼던 것과 달리 독자 활동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왼쪽부터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과 안용찬 제주항공 대표.
올해로 80세인 장 회장은 고령인 데다 건강이 좋은 상태는 아니라고 전해진다. 애경 측은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경영에 참여하진 않고 있다”고 밝혔다. 장 회장의 아들들과 사위 사이에 현재 눈에 띄는 갈등은 없다. 하지만 향후 장 회장의 지분을 누가 물려받느냐에 따라 그룹 경영권이 요동칠 수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애경의 경우 사업 포트폴리오가 유통에 특화된 것도 아니고, 화장품에 특화된 것도 아닌데 부동산․생활·항공 부문까지 전선이 너무 넓다”며 “요즘 보면 (사위가 경영하는) 제주항공 쪽에 ‘포커싱’이 맞춰진 모습이며 성장 가능성도 충분한 듯 보인다. 하지만 기존 그룹 체계를 재편 또는 분리하지 않고, 현재의 통합 경영 전략을 유지한다면 성장 모멘텀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 다른 관계자는 “채형석 부회장이 나름 선전했지만 항공 사업의 호조로 사위가 더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다”며 “(채형석 부회장이) 면세점 사업 등 중국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