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달고…멍석 깔고…의원실 ‘리모델링’ 열풍
“저기 앉아계시잖아요, 허허허.”
8월 23일 기자는 유의동 새누리당 국회의원(경기평택을)의 사무실을 찾았을 당시 유 의원의 보좌관은 이같이 말했다. 의원실 가장 안쪽 수석 보좌관들이 있어야 할 책상 위에 놓여있는 화분 위로 유 의원이 빼꼼이 얼굴을 내밀었다. 유 의원은 “여기가 편하다. 제가 보좌관 출신이라 여기가 원래 제 자리였다”며 환하게 웃었다. 유 의원을 찾은 민원인들은 처음에는 보좌진들 사이에서 ‘툭’ 튀어나온 유 의원을 보고 많이 당황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유 의원의 권위 없는 모습 때문에 의원회관을 찾는 방문객들은 호평을 하고 있다.
보통 의원실은 의원방, 휴게실, 보좌진들의 공간을 포함해 3개의 공간으로 구성돼있다. 의원의 방은 문이 닫혀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유 의원은 최근 보좌관들 사이에 자신의 자리를 배치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직원들과 한 공간에 있으면 소통도 빠르다. 저쪽(의원방)에 있으면 책상에 앉아 인터폰으로 사람들을 일일이 불러야 한다. 정말 비효율적이다. 사실 의원에게 어느 정도 권위는 필요하지만 방 안 분위기와 권위는 상관이 없다. ‘보여주기 정치’라고 비판할지 몰라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보좌진들이 불편해하지 않으면 계속 이렇게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충남 아산갑)의 방 역시 독특한 모습을 풍기고 있다. 수북이 쌓인 서류들이 약 70개의 공간에 나뉘어 정리돼 있다. 특히 의원 방안에 보좌진 책상이 따로 있다. 보좌진의 책상은 의원의 방 밖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의원의 방은 다르다. 앞서 유 의원이 자신의 자리를 보좌진들 사이로 옮겼다면, 이 의원은 보좌진의 책상을 자신의 방에 옮겨 놓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인턴을 위한 책상이었는데 이제 보좌진들도 사용한다. 회의를 하다가 필요한 경우에 우리도 노트북 가지고 옆에 앉아서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의원이 공직생활을 오래해서 서류정리를 한 뒤 보관을 한다. 워낙 기록을 중시하는 의원이기 때문에 다른 방보다 서류가 많다”고 설명했다.
카페처럼 꾸민 손혜원 의원 사무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마포구을)의 의원실은 보좌진들 사이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제20대 국회의 개원 전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보좌관은 “정말 너무 놀랐다. 처음에는 은은한 조명 때문에 카페인 줄 알았다. 정말 쉼터처럼 꾸며놨다”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실제로 손 의원이 사용하는 방 안에는 나무줄기처럼 기다란 전등이 바닥 쪽으로 휘어진 채 놓여 있다. 전등 아래쪽엔 은색 빛깔의 커다란 돌이 자리하고 있다. 책상 위에는 작은 컵들과 전통 주전자가 있어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손 의원이 쓰는 책상 옆에는 약 1m 길이의 커다란 성량개비 모양의 전등이 있는데 성냥 끝에선 노란색 불빛이 뿜어져 나온다.
손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이 나전칠기 박물관장 출신이다. 개인소장품도 많고 전통공예 쪽에 각별한 관심이 있다. 손 의원은 생활 속에서 전통공예가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커다란 돌은 옷칠 장인과 나전칠기 무형문화재가 협력해서 만든 작품이다. 최근에도 해외 미술관들이 이 작품을 사갔다”고 설명했다. 손 의원의 방은 전체적으로 ‘초록색’ 느낌이 강하지만 조명을 켜면 어느새 카페로 변하곤 한다. 응용미술학을 전공한 디자인 전문가 답게, 손 의원의 각별한 ‘센스’가 돋보이는 방이다.
김세연 의원 사무실은 벤처기업 분위기를 풍긴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부산 금정구)은 자신의 책상이 없다. 원탁 책상와 쇼파 겸 침대가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김 의원의 방은 ‘화이트톤’으로 물들어 있다. 칠판과 T자형 책상은 물론 책꽂이 등이 전부 하얀색이다. 벤처기업 분위기를 풍기는 이 방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김 의원이 따로 꾸린 전시 공간이다. 진귀한 물건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책꽃이 한쪽 벽면 위에는 귀여운 피규어들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구슬이 있다. 벽면에는 애플 로고부터 유명 인물 사진까지, 다양한 물품들이 걸려 있다. 또 다른 책꽃이에는 앵그리버드 인형은 물론 조립비행기도 놓여 있다.
김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19대 때부터 신경을 썼다. 김 의원이 다른 나라를 갔다 오면 기념품을 가지고 와서 스스로 붙인다. 딱히 의원을 위한 책상이나 의자는 없다. T자형 탁자에 앉아 업무를 본다. 의원은 평소에도 화려한 것을 안 좋아하고 단색 계통의 깔끔한 것들을 좋아한다. 생각이 많이 개방적이라, 가구점에서 카탈로그를 직접 보고 가구들을 직접 사왔다. 비싼 가구들도 아니다. 분위기가 딱딱하지 않아 방문객들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김근태 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인재근 의원 사무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도봉갑)실은 ‘김근태 기념관’을 방불케한다. 인 의원은 ‘민주화의 산증인’ 고 김근태 전 의원의 배우자다. 의원방 안쪽에 들어섰을 때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김 전 의원이 미소짓고 있는 입간판이다. 입간판 뒤에 있는 정사각형 모양의 작은 기타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책장마다 약 30개의 액자가 놓여 있는데, 액자의 대부분은 김 전 의원의 초상화나 생전의 모습을 담을 사진이다. 의원방 한쪽에는 성냥도 전시돼있다. 성냥 역시 김 전 의원을 기념해 만든 작품이다.
인 의원실 관계자는 “김 전 의원의 추모 전시회가 열렸을 당시 김 전 의원이 쓰던 목재의자를 성냥으로 만들었다. 기타는 콜트 콜텍 노동자 관련 예술작품이다. 실제로 소리도 난다. 김 전 의원을 그리워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인 의원에게 선물을 많이 한다. 최근에 들어온 선물 중엔 김 전 의원을 스케치한 작품도 있었다. 지금도 인 의원은 김 전 의원을 많이 그리워 한다. 꿈에 김 전 의장이 나왔다는 얘기도 가끔 한다”고 밝혔다.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경북김천)방의 걸작품은 ‘누런 멍석’이다. 이 의원은 최근 자신의 방 안쪽의 책상과 의자를 한쪽으로 치우고 멍석을 깔았다. 멍석 옆에는 징이 놓여있는데 방문객들이 방을 찾을 때마다, 이 의원이 직접 손으로 징을 친다고 한다. 이 의원실의 한 비서관은 “이 의원의 아이디어다. 옛날의 농가 느낌을 만들려고 했다. 방문객들은 멍석을 보고 많이 놀랐다. 처음엔 ‘멍석을 여기에 왜 깔았나’ 생각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편하다고 한다. 머슴의 심정으로 돌아가 초심을 잃지 않고 국민과 눈높이에서 정치를 하겠다는 의미다”고 말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