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혼밥·혼술 엿보기…‘외롭지 않아요’
18일 첫 방송된 케이블채널 tvN <내 귀에 캔디>는 <그녀>를 예능으로 만든 스핀오프 격이라 할 수 있다. 고독한 도시인에게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비밀 친구가 생긴다면’이라는 가정을 갖고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한류스타 장근석을 비롯해 배우 경수진, 방송인 서장훈 등 싱글족이 익명의 친구와 통화하며 고민을 털어놓고 소통하는 콘셉트다.
장근석 등 싱글족 스타들이 익명의 친구와 통화하는 콘셉트의 프로그램 tvN ‘내 귀의 캔디’ 포스터.
tvN 관계자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이라며 “그만큼 세상이 바뀌었다는 의미이고, 혼자서 의식주를 해결하며 외로움에 사무친 현대인이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1인 가구’는 무려 511만 가구였다. 전체 가구인 1877만 가구 중 27%가 넘는다. 네 집 중 한 집은 홀로 산다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최근 종방된 SBS 주말극 <그래, 그런 거야> 속 3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이 오히려 현실이 아닌 판타지에 가깝다.
이에 발맞춰 TV 프로그램도 혼밥(혼자 먹는 밥), 혼술(혼자 마시는 술)을 즐기는 시청자들을 잡기 위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혼자 밥 먹고, 술 마시며 TV를 보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주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조격 예능은 MBC <나 혼자 산다>다. 2013년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출연진을 바꿔가며 3년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방송인 김영철과 가수 김동완이 하차를 결정하고 가수 장우혁과 웹툰작가 기안84가 새 멤버로 합류하는 등 끊임없이 멤버가 공급되고 있다. 특히 이혼 후 홀로 사는 중견 배우 김용건 등을 배치해 다양한 연령층의 호응을 얻은 것도 이 프로그램이 장기 흥행하고 있는 이유다.
케이블채널 올리브는 혼자족을 위한 두 가지 프로그램을 최근 론칭했다. <조용한 식사>가 7월말 방송을 시작했고 9월 초 첫 방송되는 방송인 탁재훈, 정진운 진행의 <8시에 만나>가 대기 중이다.
싱글족 스타들의 삶을 보여주는 MBC ‘나 혼자 산다’는 3년째 장기 흥행하고 있다. ‘나 혼자 산다’ 페이스북 캡처.
<조용한 식사>의 모토는 “기계적인 리액션은 이제 그만, 먹는데 무슨 설명이 필요해?”다. 이는 근 1년간 각광을 받은 먹방 프로그램들이 여러 음식을 먹으며 과한 평가와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한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 홀로 밥 먹는 혼자족들에게 음식을 먹으며 지나친 리액션을 보이는 것도 사치, 맛있게 배불리 한 끼를 먹으면 그만이다.
제작진은 “오롯이 한 그릇을 영접하고 이별하는 스타들의 아주 솔직한 모습을 통해 색다른 재미와 묘한 힐링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8시에 만나>는 2명의 MC가 다양한 음식 취향을 가진 스타들을 저녁 8시에 초대한 후 혼밥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펼치는 토크쇼다. 스타들이 직접 혼밥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그들만의 레시피를 알려준다. 이혼의 아픔을 겪은 후 이제는 혼자족에 합류한 탁재훈이 진행을 맡았다는 점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요소다.
저마다의 이유로 홀로 술을 들이키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tvN ‘혼술남녀’ 는 9월 5일 첫 방송된다.
이런 혼자족을 위한 프로그램은 단순히 ‘공감’ 코드에 치중하지 않는다. 그 저변에 깔린 정서는 ‘엿보기’라 할 수 있다. 혼자 무언가를 하는 콘셉트를 보여주려면 주인공 외에는 타인이 없어야 한다. 때문에 주로 집안 곳곳에 관찰 카메라를 설치한 후 이를 편집해서 보여주는 형식이고, 시청자들은 부지불식간 타인의 집 안 구석구석을 엿보고 있는 셈이다.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이들이라고 남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혼자 사는 타인은 과연 어떤 집에 살고, 무엇을 먹고, 옷차림은 어떤지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사다. 이는 대면하지는 않으면서 각종 SNS를 통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심리다.
결국 혼자족들은 ‘외롭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현재 외롭게 살고는 있지만 타인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갖고 있고, 더 멋진 삶을 영위하기 위해 타인의 삶에서 장점을 배우려 한다. 그리고 가끔은 혼자서도 잘 사는 자신의 모습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자신만의 영역이라고 하지만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SNS에 자신의 내밀한 영역의 사진과 이야기 등을 올리는 이유다.
한 지상파 예능국 PD는 “혼자족 프로그램은 대중의 보여주고 싶어 하는 욕구와 보고자 하는 욕망이 만나서 탄생한 것”이라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더 SNS에 몰두하며 타인의 삶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대중의 심리를 파고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