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독주체제…제2 이회창 될까 우려
김상곤 후보도 문 전 대표와 가까워 친문 인사로 분류되지만 친문 세력은 표가 분산되면 안 된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이번 전당대회에서 추 대표에게 표를 몰아준 것으로 알려졌다. 더민주 전당대회는 권리당원 30%, 당원여론조사 10%, 일반국민여론조사 15%, 대의원 투표 45%의 룰로 치러졌다.
특히 권리당원들의 ARS 전화투표가 이번 전당대회의 승패를 갈랐다는 분석이다. 더민주 온라인 권리당원들 중 상당수는 지난해 말 안철수 의원이 탈당해 국민의당을 만드는 등 문 전 대표가 위기 몰리자 대거 입당한 문 전 대표의 지지자들이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온라인 권리당원들을 문 전 대표의 전위대라고까지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서 당내 경선은 해보나마나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온라인 권리당원은 한 달에 1000원씩 6개월만 당비를 내면 자격이 생긴다.
8·27 전당대회에서 친문 진영의 대대적 지원을 받은 추매애 후보가 당대표로 당선됐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추 대표의 승리로 더민주는 더 완벽한 친문재인 당이 됐다는 평가다. 이미 전당대회 전에 치러진 전국 16개 시·도당 위원장 선거에서 서울, 인천, 경기를 포함한 12곳의 위원장을 모두 친문재인계 인사들이 싹쓸이했다. 특히 경기 전해철, 인천 박남춘, 대전 박범계, 부산 최인호 위원장 등은 문 전 대표와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최측근들이다.
더민주 새 지도부에서 활약할 권역별 최고위원 5명 역시 전원 친문계 인사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다. 이번에 추 대표와 함께 당선된 양향자 최고위원과 김병관 최고위원 역시 지난 총선에서 문 전 대표가 영입한 친문계 인사다.
하지만 이번 전당대회 결과가 문 전 대표에게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더민주 내에서 경선을 치러서는 절대 문 전 대표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모든 야권 대권주자들이 잘 알게 됐을 것”이라며 “유력 주자들이 더민주 대선 경선에 아예 참여하지 않거나 탈당해 외부에서 출마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고 분석했다. 유력 대권주자들이 모두 빠지면 문 전 대표가 대선 경선에서 손쉽게 승리한다고 해도 흥행실패로 정작 본선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미 국민의당은 공정한 대선경선을 약속하며 더민주 대권주자들에게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김종인 전 더민주 대표도 “일개 계파가 전체를 쓸어 잡는 중”이라며 친문 일색의 당 지도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김 전 대표는 “전당대회를 보니 외연확장에 의문”이라며 “친문 15%로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전당대회장을 방문한 모습. 김종인 전 대표는 문 전 대표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당 일각에선 현재 더민주의 상황이 지난 2002년 대선 때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과 비슷하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당시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이고 있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게 패한 이유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회창 대세론’ 때문이었다. 일찌감치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던 이회창 후보는 손쉽게 대선경선에서 승리하면서 국민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했다.
반면 민주당(현 더민주)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대선 경선에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대선 경선에서부터 시작된 돌풍으로 노무현 후보는 결국 이회창 후보를 이기고 승리했다. 더민주가 내년 대선 경선에서 국민들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문 전 대표가 제2의 이회창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그러나 친문 진영에서는 이 같은 논란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친문 인사인 정청래 전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래문(이래도 저래도 문재인)’이라는 비판에 대해 “그 말은 잘못됐다. 이래도 민심, 저래도 민심이라고 본다”면서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을 떠받치는 게 민심이다. 그런 민심과 당심을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친문 진영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도 “그런 비판은 신경 쓰지 않는다. 일부러 져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전시효과 같은 걸 기대하기보단 차라리 대선 후보로 빨리 선출된 후 정책과 공약에 내실을 기하는 게 훨씬 낫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인사는 또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이종걸 의원을 포함한 비주류 진영이 자꾸 문재인 대세론이 독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대세론을 형성하고도 결국 승리하지 않았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또 다른 친문 인사도 “친문 지도부가 출범했다고 당내 대선주자들이 경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너무 앞서나간 것”이라며 “대선경선은 최대한 공정하게 치러질 것이고 다른 대권주자들도 선당후사 정신으로 모두 출마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