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좋다고 퍼먹으면 역효과
흔히 ‘지방’ 하면 몸에 나쁘다는 생각부터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방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 몸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에너지원인 동시에 세포막의 구성성분이 된다. 또 호르몬의 원료가 되고 지용성 비타민의 운반체가 되는 등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다.
물론 지방을 잘못 섭취하면 오히려 세포막을 손상시키거나 호르몬, 에너지 대사에 문제를 일으키는 등의 나쁜 영향을 미친다. 몸에 나쁜 지방으로는 동물성 식품에 많은 포화지방, 그리고 패스트푸드, 가공식품 등에 많은 트랜스 지방을 들 수 있다.
반면 식물성 식품에 많은 불포화지방은 몸에 좋은 지방이다. 예를 들어 올레인산과 리놀레산은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동맥경화의 촉진을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감마리놀렌산 역시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아토피성 피부염, 월경 전 통증을 개선시킨다. 알코올 대사를 촉진한다는 연구도 있다. α-리놀렌산은 유방암, 대장암을 예방하고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린다.
그렇다면 식물성 기름은 많이 먹어도 괜찮을까. 한때 장수식으로 알려진 지중해식 식사에서 올리브오일을 많이 쓰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본에서는 매일 한 스푼 정도의 올리브오일을 먹는 건강법이 유행한 적도 있다.
하지만 식물성 기름 역시 적당히 먹어야 한다. 많이 먹으면 혈중 지질이 상승하고 1g에 9㎉의 높은 열량을 내는 만큼 고지혈증, 비만 등을 일으키기 쉽기 때문이다. 을지대학병원 영양과 여인섭 과장은 “식물성 기름이 몸에 좋다고 일부러 많이 먹기보다는 음식에 적당히 사용하는 정도로 먹는 게 좋다”고 말했다.
특히 고지혈증, 비만, 당뇨병 등이 있는 경우에는 과다섭취하지 않도록 하고 지방의 소화에 관여하는 담낭, 췌장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지방 섭취량은 성인의 경우 총열량의 15~25% 정도. 불포화지방과 포화지방의 섭취비율은 2:1이 알맞다.
식물성 기름이면서 동물성 기름보다 오히려 포화지방의 비율이 높은 기름도 있다. 코코넛유, 야자유가 바로 그것이다. 향과 맛이 좋고 고온에서도 변질되지 않아 패스트푸드, 가공식품 등에 많이 쓰는 기름이다. 이런 기름으로 조리하면 서서히 산화돼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하지만 코코넛유에 들어 있는 포화지방은 91%. 야자유는 51%로 돼지기름(43%), 소기름(48%)보다도 높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식물성 기름을 잘 쓰려면 용도에 적합한 것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고온의 요리, 튀김에 쓰는 기름은 발연점이 높아야 조리 도중에 기름이 타지 않고, 식품 안으로 기름이 적게 스며든다.
특히 튀김 요리를 할 때는 식용유를 여러 번 반복해서 사용하면 몸에 나쁜 트랜스지방이 많이 생겨난다. 콩기름을 24시간 동안 튀김 요리에 썼더니 트랜스 지방 함량이 처음보다 5~10%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보통 튀김에 적당한 온도는 보통 170~180℃ 정도다. 따라서 이보다 발연점이 높은 콩기름(208℃), 옥수수기름(216℃), 채종유(225℃), 면실유(228℃), 포도씨오일(250℃) 등은 튀김 같은 고온 요리에 적합하다. 반면 동백기름(142℃), 참기름(149℃), 올리브오일(160~175℃), 낙화생유(150~160℃) 등은 발연점이 낮아 가열을 하지 않는 샐러드, 무침 등에 쓰는 게 좋다.
그렇다면 한 번 튀긴 기름은 버려야 할까. 한 번 튀긴 기름은 가능하면 쓰지 않는 게 가장 좋지만 다시 쓰려면 체에 걸러 불순물을 없애고 색깔이 있는 병에 담아서 냉장보관한다.
기름을 너무 오래 두고 먹어도 트랜스 지방이 생긴다. 따라서 기름을 살 때는 적은 용량의 제품을 구입하고, 일단 개봉하면 2~3개월 안에 먹는 게 좋다. 또 개봉 후에는 공기와 접촉해서 산화되지 않도록 뚜껑을 잘 닫아서 보관한다.
맛과 향은 물론 영양 성분도 조금씩 다른 식물성 기름. 자신의 입맛, 용도에 맞는 오일을 정했다면 유통기한, 투명도 등을 잘 살핀다. 병을 흔들어 봐서 불순물이 없고 맑은 것이 신선한 제품이다. 예를 들어 포도씨오일은 옅은 노란빛이 나는 녹색을 띠면서 투명도가 높은 것을 고르면 된다. 오래되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것을 사용해 만들면 농도가 진하고 걸쭉한 느낌이 든다.
용기는 페트병보다는 유리병에 담긴 제품이 환경호르몬 같은 유해 성분의 염려가 적고 기름의 품질도 유지할 수 있다. 자외선 차단 성분이 든 어두운 색의 유리병에 담긴 제품으로 구입하도록 한다. 보관할 때는 어두운 색의 병에 담아 어둡고 서늘한 곳에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요즘 인기가 많은 몇 가지 식물성 기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올리브오일=항산화 능력이 비타민 C의 20배에 달하는 폴리페놀 성분이 풍부해서 암을 예방하고 노화를 지연시키는 효과가 기대된다. 또 불포화지방인 올레인산이 많아 좋은 콜레스테롤(HDL)을 늘려서 동맥경화, 심장병 등의 예방에 도움이 된다.
올리브오일 중에서도 올리브에서 처음 짜낸 ‘엑스트라 버진’이 향이 진하고 가장 좋은데, 샐러드드레싱이나 빵에 찍어 먹으면 맛과 향이 잘 어울린다. 특히 녹황색 채소, 과일과 함께 먹으면 베타카로틴의 흡수까지 도와 일석이조. 새우, 오징어처럼 콜레스테롤이 많은 식품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한번 짜낸 올리브에서 다시 짜낸 ‘퓨어’ 올리브오일은 고온에서도 잘 타지 않아 튀김, 구이, 볶음 등에 좋다.
◇ 포도씨오일=올리브오일보다 향이 은은한 포도씨오일도 폴리페놀, 리놀레산, 비타민 E 등의 성분으로 인해 성인병 예방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 시립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23명의 심장병 환자에게 매일 2티스푼 정도의 포도씨오일을 섭취하게 했더니 혈청 중 콜레스테롤의 운반체 역할을 해서 체내 콜레스테롤을 배출,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는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이 14% 증가했다고 한다. HDL이 1% 증가할 때마다 환자의 심장 발작 횟수가 3%씩 감소한다는 사실도 함께 밝혀냈다.
요리에 쓰면 향이 강하지 않아 식품 자체의 맛과 향을 살려준다. 느끼한 맛이 적어서 상큼한 맛을 내야 하는 샐러드에 넣어도 괜찮고, 볶음이나 튀김에 써도 좋다. 산화 속도가 느려 다른 식물성 기름보다 오래 두고 사용할 수 있고, 콩기름 옥수수기름처럼 유전자 조작 논란에서도 안전해서 좋다. 콩기름 옥수수기름은 불포화지방이긴 하지만 산화가 빨라 오래 보관하기 어렵고 유전자 조작의 우려가 있다.
◇ 해바라기씨오일=해바라기씨에서 짜낸 기름으로 오메가-6 지방의 비율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오메가-6 지방은 나쁜 콜레스테롤(LDL)의 혈중 농도를 낮춰 심장병 발생 위험을 줄여준다. 하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좋은 콜레스테롤까지 낮춘다. 또 지방산 조성에 따른 암 발생률 조사에서 포화지방과 오메가-6 지방산이 증가할수록 암 유발률이 높았다고 한다. 반면 오메가-3 지방은 많을수록 암 발생 억제효과가 컸다.
오메가-6 지방을 섭취할 때는 오메가-3 지방과 적당한 비율을 유지하는 게 좋다. “오메가-6과 오메가-3 지방의 비율은 모유와 비슷한 4~10 : 1 정도로 섭취하면 된다”는 것이 여인섭 과장의 조언이다.
참고로 오메가-3 지방이 많은 기름으로는 생선, 어유 외에도 들기름 콩기름 채종유 호두기름 아마씨유 등의 식물성 기름이 있다. 오메가-6 지방은 홍화씨기름 해바라기씨오일 면실유 옥수수기름 참기름 달맞이꽃종자유 등에 많다.
◇ 들기름=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오메가-3 지방인 리놀렌산이 많이 들어 있어서 고지혈증, 심장병 등을 예방한다. 포화지방이 많은 고기를 구워 먹을 때 들기름에 찍어 먹으면 특히 궁합이 잘 맞고, 나물을 무칠 때도 맛이 잘 어울린다.
하지만 공기와 접촉하면 다른 기름보다 빨리 변하는 것이 단점이다. 일단 개봉하면 되도록 빨리 먹어야 한다.
◇ 미강유=영양이 풍부한 쌀겨로 만든 기름이다. 비타민 E를 비롯한 여러 가지 비타민이 특히 많아 노화방지, 피부미용 등에 좋다. 색이 연하고 향이 부드러워서 어떤 요리와도 잘 어울리고 건강식품, 의약품에도 많이 쓴다.
◇ 홍화씨오일=불포화지방 외에도 칼슘, 칼륨, 마그네슘 등이 풍부해서 뼈를 튼튼하게 만든다. 맛이 담백해서 그냥 먹어도 좋고, 발연점이 높아 고온의 요리에 써도 무방하다. 화장품에도 많이 사용된다.
◇ 카놀라오일=캐나다산 유채를 품종개량한 작물에서 짜낸 기름으로 DHA, EPA 같은 오메가-3 지방이 올리브오일보다 10배나 많아 나쁜 콜레스테롤을 없애는 효과가 뛰어나다. 또 시판되는 식물성 기름 중에서 포화지방의 함량이 가장 낮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을지대학병원 영양과 여인섭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