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연대 거부, 시위 주동자 없어…강제 동원 아닌 자발적 참여 ‘눈길’
이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지난 7월 28일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계획을 철회하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본관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이에 지난 8월 3일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 계획을 취소하겠다는 총장의 발표가 있었다. 이어 최 총장은 이들과의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총장과 학교 측의 변화를 이끌어내기까지 학생 주도 시위의 공이 컸다는 분석이다. 이번 이대 시위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민중가요가 울려 퍼지고 학생회가 주도하는 기존 대학가의 시위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된 이번 시위가 향후 대학가의 시위 문화를 송두리째 바꿀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가 시위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 대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시위의 주체는 줄곧 총학생회였다. 학생들의 투표를 통해 구성된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이대 사태에서 본관을 점거하고 농성에 참여한 이들은 재학생과 졸업생들로 학생회가 주도하는 형태가 아니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총학생회나 총동문회는 이번 일에 개입하지 않았고, 온전히 학생들 스스로가 조직하고 주도하는 것이며 재학생을 제외한 어떤 단체도 개입하지 않았다”고 했다. 학생들은 정치권을 포함한 외부와의 연대도 거부한 채 두 달 가까이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이대 졸업생들이 졸업장 반납 시위를 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대학가 시위 문화가 많이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 그나마 화제가 됐던 부분은 지난 2011년부터 시작된 ‘반값등록금’ 시위다. 반값등록금을 주제로 다수 대학교에서는 학교 측에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집회 및 시위가 있었다. 대부분 시민단체 및 정치권의 개입으로 전체적인 사회 이슈로 확대됐고 정부의 정책 마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시민단체 대학교육연구소가 교육부 자료를 토대로 전국의 대학 184개교의 등록금을 분석한 결과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2011년 769만 원에서 지난해 734만 원으로 5년 동안 4.5% 인하하는 데 그쳤다. 일부 국립대는 등록금이 인상되기도 했다. 외부 세력까지 개입됐음에도 학생들의 시위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진 못했다.
학생들 스스로 학교에 목소리를 낸 경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3년 12월 고려대학교에서 한 학생이 ‘안녕들하십니까’로 시작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당시 정부의 철도 민영화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모습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것. 당시 대자보 열풍은 철도노조 파업을 지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료민영화 반대, 밀양송전탑 건설 반대, 젊은 세대의 좌절감 등의 사회 문제 고발로 범위가 확산됐다. 또 초등학생이나 기성세대도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이대 시위는 학교를 생각하는 구성원인 학생들이 뜻을 함께해 그 규모가 더욱 커진 형태로 볼 수 있다. 이들은 단체로 시위 및 농성을 진행하지만 특정 대표는 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이대생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다른 학교에서 운영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익명으로 운영되고 있어 학생들이 온라인상에서 자발적으로 의견을 공유한다.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선후배를 떠나 모두가 ‘벗’이라고 부르며 서로를 동등하게 대했기 때문에 수평적인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고 특정 주동자 없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었다”며 입을 모았다.
교내 시위에 함께하지 못한 졸업생들은 신문에 광고를 내는 공론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들의 목적은 이대의 미래라이프대학 신설 반대 내지는 총장 사퇴로 일치했기 때문에 쉽게 단체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 이들 모두가 학교의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각자의 역할에 임하고 있었던 것도 특징이다.
이번 시위에서는 구호나 민중가요가 없었다. 구호나 민중가요 대신 대중가요가 시위 현장을 가득 채웠다. 또 이들의 손에는 촛불 대신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었다. 이들은 걸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고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켜 불빛을 냄으로써 행진하며 시위를 진행했다.
일각에서는 대학교 시위에서 걸그룹 노래나 따라 부르는 것이 가볍고 장난스럽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시위문화가 대중화되는 모습이 시위 참여의 문턱을 낮춰 더 많은 참여를 반기고 있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은 당시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른 이유에 대해 “시위곡으로 선정한 것은 아니었고 당시 경찰 병력이 교내에 진입해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하기 직전에 학생들이 두려움을 떨쳐 내고자 익숙한 노래를 부른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고려대, 울산과학기술대, 경기대, 연세대, 카이스트 총학생회 등은 잇따라 성명을 발표해 이대 학생들의 이번 농성을 지지하고 경찰력 동원을 비판했다.
2011년 서울대 락페스티벌 포스터.
교육부의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을 운영하기로 결정된 창원대, 동국대를 포함한 다른 학교에서도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창원대에서는 교수들 상당수가 사업 시행을 반대하고 있었다.
동국대 총학생회는 지난 8월 11일 평단사업 추진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고 한태식 총장의 퇴진 등을 요구했다. 또 이들은 학내 본관 앞에서 학교 측의 평생교육단과대 사업을 둘러싼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만민공동회를 개최했다. 만민공동회는 문화제 형태의 시위로, 본관 앞에서 24시간 노숙 농성을 벌이면서 평단 사업에 대한 학우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안드레 동국대 총학생회장은 “총학생회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참여하는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기 위해 만민공동회를 기획했다. 온라인상으로만 주고받았던 평단사업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오프라인으로도 수렴해 많을 때는 100여 명의 학생이 모여 토론의 난상을 펼쳤다”며 “평단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항의한다는 뜻을 학생들이 직접 표현함으로써 직접 민주주의에 한발 더 다가갔다”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