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국제기준 적용 여파…‘표적 방사선 치료’서 ‘전신 방사선 치료’ 회귀 땐 후유증 심각
양 군은 지금은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 과정에 따라 오는 12월에는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방사선 치료에 쓰이는 약의 공급이 중단될 예정이라는 말을 들어 예약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 약은 방사성동위원소 131아이오딘이 포함된 주사액으로 MIBG라고 불리는 표적방사선 치료법에 쓰인다. 아이와 부모들에게 이 약의 공급이 중단된다는 것은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7~8년 전까지만 해도 신경모세포종을 치료하는 방법은 전신 방사선치료가 유일했다. 전신 방사선치료는 말 그대로 전신에 방사선을 노출시켜 종양세포를 제거하는 방법이다. 신경모세포종 환자 중에서도 전이가 있는 고위험군의 경우에는 항암치료와 수술을 거쳐 방사선치료를 받아왔다. 방사선치료를 받으면 생존율이 향상되지만 그만큼의 후유증이 따른다. 온몸에 방사선이 노출되기 때문에 성장 장애에서부터 내분비 장애, 백내장, 신장 기능 저하가 따르는 것.
체내 모든 세포가 방사선에 노출되는 전신 방사선 치료와 달리 표적방사선 치료법은 131아이오딘을 주사해 종양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해 정상세포의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신경모세포종의 특성상 재발이 많아 이를 치료를 위해 전신 방사선 치료를 해야 했지만 표적방사선 치료를 통해 방사선 노출을 감소시킴으로써 완치된 이후에 따르는 후유증을 크게 덜 수 있었다. 전신 방사선치료로 완치한 한 아이의 어머니는 “8년 전에 수술을 받고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아이는 방사선 후유증으로 여전히 성장이 많이 되지 않았고 아직도 갑상선 약을 먹고 있다. 그때 MIBG가 개발됐다면 이 치료법을 썼을텐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치료법에 쓰이는 주사액 생산이 중단된다는 말은 부모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다. 지난 6월 주사액을 생산하던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삼성서울병원을 포함해 신경모세포종을 치료하는 병원에 ‘방사선의약품 및 연구용 방사성동위원소 공급, 위탁판매 계약을 통해 방사성의약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왔지만 생산이 중지되므로 사용일정을 고려해달라’는 입장을 밝혀 왔다. 이들이 주사액 생산을 중단한다는 배경에는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에 관한 규정’ 개정이 있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7년 1월 1일부터 완제의약품의 제조 및 품질관리에 대한 국제 기준인 GMP의 세부기준을 국내 규정에도 반영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지침, 해설서 등으로 운영되던 GMP 세부기준을 국내 규정에도 적용하는 것으로 국내 의약품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마련됐다. 이에 따라 방사성의약품에 해당되는 131아이오딘 주사액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국제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방사성의약품 제조 고시에 따르면 방사성의약품의 제조와 취급에는 잠재적 위해 요소가 있기 때문에 품질보증, 작업원, 시설 및 설비 등에 보다 엄격한 기준이 따른다. 식약처 관계자는 “GMP는 제재가 아니며 이미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에서도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있어 우리나라 역시 시행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라며 “국내 의약품의 품질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라고 설명했다.
방사성의약품 제조 과정. 사진 출처=한국원자력연구원 홈페이지.
131아이오딘을 생산해오던 원자력연구원에서는 “식약처에서 법 개정에 따라 원자력연구원이 131아이오딘을 생산하기에는 의약품제조시설로 미비하다는 의견을 냈다. 여기에는 무균의약품 제조의 제한이 포함됐다”며 “GMP에 적법한 설비를 갖추기 위해 가격을 추산해본 결과 10억 원이라는 재원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돼 생산 중단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경모세포종은 환자가 연간 300명 정도밖에 안 되는 희귀병이라 수익이 높을 수가 없어 공공기관인 원자력연구원만이 유일하게 생산을 맡아 왔다.
문제는 주사액 생산이 중단된다면 신경모세포종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기존의 전신 방사선치료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소아혈액종양학회에서는 “MIBG 표적 방사선치료는 장기적인 후유증을 최소화하면서도 우수한 생존율을 가져올 수 있는데 대안 없이 주사액이 중단돼 전신 방사선치료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생존자의 심각한 후유증을 피할 수 없고 환자 개인적으로 삶의 질이 저하돼 이런 생존자를 장기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도 매우 커진다”는 공문을 통해 중단 없는 생산 조치를 요청했다.
성기웅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역시 “131아이오딘은 소아의 신경모세포종뿐만 아니라 성인에게 주로 나타나는 갈색세포종의 치료에도 쓰인다”며 “국내에서 약 생산이 중단되면 방사선 치료의 국내 인프라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부모는 “식약처에 주사액 중단 이후의 방안에 대해 물어봤지만 ‘아직 결정된 것이 없지만 알아보고 있으며, 수입을 할 가능성도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조혈모세포이식술에서 필요한 약인 항암제인 치오테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약값이 올랐었다. 피해는 결국 환자들이 고스란히 받게 된다”며 “GMP 기준을 국내에 적용하려는 생각을 하기 전에 이 약을 포함한 의약품 공급 차질에 따른 문제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해봤는지도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지난 2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어제 식약처와 주사액 공급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협의를 했고 향후 식약처에서 설비를 보러 오기로 했다”고 말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주사액 수급에 문제가 없다. 공급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부모들은 “대안이 있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들어왔지만 늘 말뿐이었다. 우리들은 이번 협의에 대해서는 전혀 들은 것도 없다”며 “공급 중단이 없을 것이라는 확정된 발표가 아닌 데다 이번에는 어떻게 넘어갈지 몰라도 늘 공급 중단의 위험에 노출돼 있을 수밖에 없다. 힘들어하는 아이 치료에만 힘을 써도 모자란데 이런 일까지 신경 쓰고 불안해하느라 마음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