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먹고 ‘주목’, 완성도 더해지면 ‘대박’
여름 극장가에서 가장 뜨거웠던 키워드는 단연 ‘국뽕’이다. ‘애국심’과 ‘히로뽕’을 합쳐서 만든 신조어인 국뽕은 통상 지나친 민족주의나 애국주의를 뜻한다. 이미 단어 속에 부정적 뉘앙스를 품고 있어서 비하하는 표현으로 주로 쓰인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뼈아픈 지적이나, 흥행에는 도움이 된다는 국뽕 논란의 실체는 무엇일까?
# 국뽕 논란의 정점 <인천상륙작전>
국뽕 논란의 중심에 섰던 작품은 <인천상륙작전>이다. 맥아더 장군의 실제 작전을 소재로 삼은 이 영화는 할리우드 배우 리엄 니슨이 맥아더 장군을 연기하고, 이 작전 뒤에 숨어 있던 주역이었던 한국군의 이야기를 발굴해내며 의미를 담았다.
하지만 영화 시사회가 끝난 후 언론의 평가는 박했고, 평론가들은 낮은 평점을 매겼다. 애국으로 장사하려 한다는 원색적인 비판도 나왔다. <부산행>이 1000만 고지를 향해 거세게 질주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 빗발쳤다.
영화 ‘인천상륙작전’ 스틸 컷.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오히려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대중을 결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봐야 하는 영화’라는 반대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고, 정치권에서도 이 영화를 본 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정치인들이 속속 등장했다. 영화를 본 네티즌의 평점도 엇갈리긴 했지만 “재미있게 봤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이는 700만 명이 넘는 관객 수로 증명된다. 주요 투자배급사들의 사활을 건 대결에서 <부산행>에 이어 2위에 이름을 올리며, <인천상륙작전>은 분명 ‘성공’에 방점을 찍었다.
이런 논란은 추석 시즌 개봉된 <밀정>으로 이어졌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독립군과 일본 경찰로 일하는 친일파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 역시 항일 운동을 소재로 삼은 만큼 국뽕으로 불릴 만한 요소가 다수 포함됐다.
당초 김지운 감독이 차가운 느낌을 가진 ‘콜드 누아르’를 만들 계획이었다고 말한 만큼 그런 기획 의도에 부합하지 못한 지점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개봉 전 언론 인터뷰에서 “국뽕을 경계하면서 콜드 누아르로 만들려 했지만 필연적으로 뜨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 국뽕 논란, 어떤 영화들이 있었나?
<인천상륙작전>이 처음으로 국뽕이라는 ‘딴지’에 발이 걸린 건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2007년 심형래 감독이 만든 <디 워>가 평단과 관객의 극과 극 평가 속 흥행에 성공했다. 고질라, 킹콩 등 해외 괴수에 맞선 이무기와 용이라는 소재가 국민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고, 수준급 컴퓨터그래픽이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개연성이 부족한 스토리와 영화 말미 아리랑을 삽입하는 등 노골적으로 애국심에 호소하려 했다는 부정적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역대 영화 흥행 1, 2위 기록을 갖고 있는 <명량>과 <국제시장> 역시 국뽕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명량>은 일제에 맞서는 이순신이라는 지도자를 내세워 민족주의와 애국심에 불을 댕겼고, 그 결과 1700만 명이라는 전무후무한 관객을 모았다. 영화의 완성도나 배우 최민식의 연기 등도 흠잡을 데 없었지만 영화 외적 요소가 흥행에 큰 도움을 줬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제시장>은 대한민국의 경제화를 이끈 아버지 시대의 이야기를 그려 심금을 울렸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 베트남전 참전, 이산가족상봉 등 굵직한 현대사를 건드렸지만 민주화 운동과 같은 민감한 정치적 사안은 배제했다는 뼈아픈 일침이 있었다. 하지만 역시 영화의 재미와 의미를 모두 갖추고, 황정민의 호연이 더해져 1400만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국뽕 논란에 휩싸인 영화들이 대부분 흥행 면에서도 성공을 거둔 셈이다.
영화 ‘밀정’ 포스터.
# 핵심은 영화적 완성도!
영화는 문화적 장치다. 반드시 의미를 담거나 역사의식을 갖출 필요는 없다. 관람한 관객들이 “재미있다”고 말한다면 그 자체로 충분한 존재 가치가 있다. <인천상륙작전>이 <명량>이나 <국제시장>에 비해 유독 자주 도마에 올랐던 이유는 ‘영화적 완성도’ 때문이다.
배우 이정재와 이범수로 대비되는 두 주인공의 이미지는 지나치게 선과 악으로 갈려 단선적인 느낌을 줬고, 관객들이 <명량>의 해전만큼 기대했던 인천상륙 과정은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지 못했다. 특히 사실감이 떨어지는 컴퓨터그래픽은 숱한 영화들을 통해 상승한 관객들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역사를 다룬 영화인 만큼 그에 상응하는 완성도가 뒷받침됐다면 더 없이 좋았을 것”이라며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영화가 가진 미덕과 그 메시지에 동감하는 이들이 많았고, 그랬기에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해 <인천상륙작전>은 국뽕 논란이 아니라 완성도 논란으로 갑론을박했어야 옳다”고 말했다.
이번 국뽕 논란을 통해 또 한 번 확인된 사실은 ‘영화는 논란을 먹고 큰다’는 것이다. <덕혜옹주>는 역사 왜곡 논란에 시달렸고, <터널>은 실제 사건이나 인물을 다룬 것이라는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인천상륙작전> 역시 국뽕 논란이 오가는 사이 인지도가 크게 상승했고, 관객과 평단의 괴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는 이들이 대거 극장으로 몰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 다른 영화계 관계자는 “국뽕 논란만으로 하나의 작품을 매도하거나 옹호하는 것은 편협한 생각”이라며 “이런 논란 역시 하나의 가치 있는 의견 교류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 대중적 요소까지 고려해서 작품을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