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이 섬세하면 인생이 맛난다
▲ 미각은 노화, 타액 감소, 각종 질병 등 다양한 원인으로 변한다. 갑자기 전보다 지나치게 달거나 짜게 먹는다면 미각에 문제가 생겼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 ||
예를 들어 당뇨병, 신장병, 위식도역류 등의 질환이 있으면 미각이 떨어지게 된다. 특정 질환이 아니더라도 맛을 감지하는 미각세포는 45세를 전후해 퇴화, 미각이 둔해지고 침의 감소, 약물,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미각이 변할 수 있다. 미각을 변화시키는 여러 가지 원인, 그리고 건강한 미각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음식을 먹었을 때 맛을 느끼는 미각세포(미세포)는 무려 1만여 개. 이 수많은 미각세포에서 단맛과 신맛, 쓴맛, 짠맛 등의 4가지 맛을 감지한다. 미각세포는 약 11주마다 재생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미각세포는 45세를 전후해 조금씩 줄어들고 퇴화하기 시작한다. 중년 이후에는 나이가 들수록 미각이 둔해지는 것이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폐경으로 인해 호르몬 분비에 변화가 생겨 침이 적게 나오면 미각장애가 생길 수 있다. 미각장애는 말 그대로 미각에 이상이 생겨 맛을 잘 모르는 상태를 말한다. 맛을 잘 모르니 너무 짜게, 달게 먹어 건강을 해치게 된다.
침이 적게 분비되면 미각장애가 생기기 쉽다. 우리가 섭취한 음식을 용해시키고 작은 분자로 만들어 혀의 미각세포가 맛을 잘 감지하도록 돕는 것이 침의 역할이다. 방사선 치료 중에도 침이 적어지면서 입맛을 잃기 쉽고, 침샘에 만성적인 염증이 생기는 쇼그렌증후군 또한 마찬가지다.
크고 작은 질병이 미각을 손상시키는 경우도 많다. 당뇨병이나 갑상선기능저하증, 신장질환 등의 대사성 질환이 있으면 미각장애 또는 맛이 없어도 맛을 느끼는 미각환상을 보일 수 있다. 위식도역류증이 있으면 입에서 신맛이 나서 음식 맛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된다. 충치, 구강 칸디다증 같은 입 속의 질환도 마찬가지다.
미각에 아무런 문제가 없더라도 미각과 연결된 후각이 나빠지면 입맛이 변한다. 감기에 걸려 코가 막힐 때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따라서 축농증, 비염 등이 있을 때는 이들 질환을 먼저 치료해야 건강한 미각을 되찾을 수 있다.
중이염을 앓은 후에도 미각이 변할 수 있다. 미각세포가 모인 미뢰에 분포하는 신경이 중이를 지나가기 때문이다. 감기에 걸렸을 때 귀가 잘 안 들리거나 먹먹한 느낌이 든다면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다.
복용 중인 약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당뇨병이나 고혈압, 관절염 등 오랜 기간 약을 복용해야 하는 만성질환이 있으면 입맛의 변화에 주의하는 것이 좋다. 진통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해도 감각 신경에 내성이 생겨 미각이 감퇴할 우려가 따른다. 약 때문에 생긴 미각장애는 약을 끊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부분 좋아진다.
이외에 흡연도 미뢰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업무, 대인관계 등으로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아도 일시적으로 침의 성분이 변하면서 흔히 말하는 것처럼 입맛이 써진다.
평소 어떤 식습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건강한 미각을 유지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선 철 성분이 결핍된 식사를 하게 되면 입안이 잘 헐어 미각이 변할 수 있다. 비타민 B12, 아연이 부족해도 마찬가지 증상을 보인다.
맵거나 짠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미각이 감퇴되기 십상이다. 요즘 불닭, 불갈비 등 혀끝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 음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매운 맛은 맛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통증으로, 뇌에서 맛처럼 기억하는 것뿐이다. 지나치게 매운 맛이 미각을 느끼는 끝 부위의 돌기를 상하게 하면, 다른 맛에 둔해지게 된다.
매우면서 짜기까지 한 음식은 더욱 문제. 특히 아이들이 짜게 먹으면 신장이 미숙해서 무리가 되고, 건강한 미각을 해치는 것은 물론 성인병이 일찍 찾아올 수 있다.
집에서 음식을 해먹을 때는 너무 맵거나 짜지 않게 조절하기가 쉽다. 하지만 외식을 하면 아무래도 맵고 짠 그대로 먹을 수밖에 없고, 자극적인 음식을 자주 먹다 미각을 잃을 수 있다.
보다 건강한 미각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각이 건강해야 먹는 즐거움을 한껏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강관리에도 그만큼 득이 된다.
우선 약은 오·남용을 피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복용하고, 원인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빨리 치료하거나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경유 교수는 “미각이상이 곧바로 심각한 문제를 만들지는 않지만 그대로 두면 소금, 설탕 등을 많이 섭취해 고혈압, 당뇨 등을 만들고 상하거나 해로운 식품을 섭취할 가능성도 커진다”고 조언했다.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혀의 위생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혀에 허옇게 설태가 덮이면 미각이 둔해지는 것은 물론 잇몸질환 등도 잘 생긴다. 양치질을 할 때 칫솔, 혀 클리너 등으로 혀에 낀 설태를 제거해주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입 냄새 제거 효과도 뛰어나다. 구강청정제는 자주 사용하지 않거나 희석해서 쓰는 것이 좋다.
보철, 틀니 등을 하고 있는 경우에는 치아 관리도 잘해야 한다. 금속 성분으로 인해 침 성분이 변하면서 입맛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식생활에서는 다양한 음식을 고루 먹는 것이 섬세한 미각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또 건강한 미각을 유지하는 데는 침의 역할이 절대적인 만큼 충분히 씹어서 맛을 음미하노라면 맛없는 음식이 없다.
영양소로는 미각세포 재생에 필요한 아연을 충분히 섭취하면 도움이 된다. 아연은 육류의 간이나 조개류, 현미, 무잎, 파슬리 등에 많이 들어 있다. 만약 식품으로 아연을 섭취하기 힘들다면 종합비타민제를 복용하는 것도 괜찮다.
패스트푸드, 가공식품 섭취는 줄이는 것이 좋다. 이들 식품에 들어가는 식품첨가물 중에는 아연의 흡수를 방해하는 것도 있다. 미각세포를 파괴하는 맵고 짠 음식, 담배, 카페인 역시 삼가야 한다. 갑자기 싱겁게 먹는 것이 쉽지 않은 경우에는 우선 한두 가지 반찬만 기존대로 간을 하고, 나머지 반찬과 국은 싱겁게 하는 식으로 시도해 본다. 국이나 찌개 종류의 간은 먹기 직전에 하는 게 좋다. 처음부터 간을 하면 야채에 짠맛이 다 배어 나트륨을 많이 섭취할 수밖에 없다. 소금이나 간장이 아닌 식초를 이용한 음식을 자주 식탁에 올리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이다. 그래도 짜게 먹는 편이라면 채소, 과일 섭취를 더 늘려준다. 채소, 과일에 많은 칼륨이 나트륨을 몸 밖으로 배설시킨다.
미각장애 체크리스트
다음의 항목에 해당되는 것이 있는지 체크해 보자. 여러 항목에 해당될수록 미각장애일 가능성이 크다.
□ 나이가 45세 이상이다.
□ 여성의 경우 폐경기를 맞았다.
□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다.
□ 당뇨병, 갑상선기능저하증, 신장병 등이 있다.
□ 위식도역류가 있다.
□ 축농증, 비염 등이 있다.
□ 당뇨병, 고혈압, 관절염 등의 만성질환으로 약을 복용 중이다.
□ 맵거나 짠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 매번 마음만 먹을 뿐 아직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다.
□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을지대학병원 이비인후과 박경유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