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가고 가족 잃고…역경 속에도 헌신
빗속의 남부 항구도시 몰레먀인. 강에서 바다로 이어진다.
몬족은 미얀마 역사에서 빼어난 문화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또 한따와디 왕조와 꼰바웅 왕조 등 화려한 왕조들이 불교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양곤에 있는 쉐다곤 파야도 몬족의 전성기에 완성되었습니다. 박물관에는 나무와 돌로 조각된 13세기의 불상, 몬족글자의 비문, 신소부 여왕(Queen Shin Saw Bu)의 왕관이 눈길을 끕니다. 2층은 고문서가 소장된 도서관입니다. 몰레먀인은 몬족의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지만 여러 인종이 함께 사는 독특한 도시입니다. 몬족, 버마족, 까친족, 인도계, 중국계 등이 한 데 어울려 삽니다. 1886년 당시 영국은 미얀마를 영국령 인도에 편입했습니다. 그리고 인도인들을 미얀마로 이주시켰습니다.
이렇게 여러 인종이 살다보니 여러 종교가 같이 공존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미얀마에서 이 도시만큼 다양한 종교 유적지가 있는 곳은 없습니다. 도시를 감싸고 도는 강을 따라 걷다보면 유럽풍 교회와 불교사원, 그리고 이슬람사원, 화려한 중국 전통사원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습니다. 해안도로 끝에는 오거 아일랜드(Ogre Island)와 샴푸 아일랜드(Shampoo Island)로 가는 보트선착장이 있습니다. 강 안에 있는 아름다운 섬으로 가는 당일여행입니다. 몰레먀인에는 유난히 오래된 교회가 많습니다. 1827년에서 1954년까지 지어진 교회가 중심도로에 모여 있습니다. 이 중에서 유럽인들에게 눈길을 끄는 교회가 1827년 미얀마에서 최초로 세워진 침례교회(First Baptist Church)입니다. 미국인 선교사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이 세운 교회입니다.
몰레먀인은 빼어난 문화와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곳이다. 몬족 전성기의 신소부 여왕의 금관(왼쪽)과 몰레먀인 근교의 불교 유적지.
1813년 7월 13일. 이날 저드슨 선교사는 버마 랭군에 가족과 함께 도착했습니다. 그가 이땅에서 지낸 기록을 보면, 미국 초기 선교의 살아있는 역사를 대변합니다. 미국 선교사가 최초로 파송된 곳이 우연치 않게 버마가 되었습니다. 그는 인도로 갔다가 입국이 거부되어 자신이 원했던 버마로 향합니다. 이곳에서 투옥, 가족들을 잃는 슬픔, 가난과 질병 속에서 신앙과 단절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건강이 악화된 1816년 1월에 신약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고 그후에 기념비적인 미얀마 영어사전도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미얀마인 목회자들이 쓰는 성경이 200년 전 저드슨이 완성한 것입니다. 1819년 마웅 나우라는 버마인에게 첫 세례를 주었습니다. 버마땅에 온 지 6년 만의 일입니다. 그 정도로 이곳은 척박한 선교지였습니다.
1827년 아도니람 저드슨이 세운 미얀마 최초의 교회.
37년간을 버마에서 보낸 저드슨의 말년에는 7000여 명의 크리스천 신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1859년 그는 병이 들어 치료를 위해 귀국하는 배에 올랐지만, 항해 도중 세상을 떠나 바다에 수장되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62세였습니다. 가족들의 희생과 저드슨의 헌신. 지금 미얀마에 기독교가 뿌리를 내리게 된 씨앗입니다. 그래서인지 미얀마 곳곳에는 그를 기리는 비문들이 많습니다. 몰레먀인에 있는 미얀마 최초의 교회에는 그의 가족들이 묻혀 있습니다. 교회 정원 안쪽에 아내와 아들의 묘지가 있습니다.
200년 전 이 나라에 들어온 ‘종교의 박물관’ 몰레먀인. 오늘도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집니다. 강변을 낀 스트랜드 로드(Strand Road)에도 다양한 인종의 젊은이들이 서로 만나 사랑과 대화를 나누는 도시입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