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 이송+취업 알선…‘밀입국 패키지’ 불티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의 행방은 경찰서에서 밝혀진다. 밀입국자 또는 불법 체류자가 되고 나서다.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소수 중국인의 일탈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의 방식은 물론, 강화된 단속을 피해 다른 루트를 통해 한국에 몰래 들어오는 외국인들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고, 그 수법도 치밀하고 조직화되고 있다. 한국 밀입국 실태와 이들을 돕는 브로커 조직을 <일요신문>이 추적했다.
인천공항 전경. 일요신문 DB
# ‘그들’이 사라졌다
“비가 오면 늘 나타나곤 했다. 요샌 많이 찾아보기 어렵다.” 제주도의 한 전통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 씨(56)의 말이다. 그는 비가 오거나 날이 궂으면 중국 동포나 중국인이 많이 보였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A 씨는 제주도 내 건설붐이 불고 있는 인근의 현장들과 일명 함바집(건설 현장 식당)을 떠올렸다. 그동안 일용직 노동자나 함바집 보조 등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중국인들이 꽤 늘었기 때문이었다. 비가 내려 건설 일을 못하면, 쉬는 날을 맞아 이들이 시장을 찾는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이 중국인들이 올해 초부터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제주도의 인력소개소 대표들에 따르면, 최근 이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은 모두 한국인이라고 한다. 올해 초부터 중국인 인부는 거의 없어졌다고 했다. 한 인력소개소 대표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난해만 해도 중국인 인부들을 쓰는 업체가 많았다. 적은 임금으로 일을 맡길 수 있어 이들만 찾는 업체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올해 초부터 이들을 찾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앞서의 A 씨가 말한 시점과 일치한다.
동시에 관광업계에서도 앞서와 같은 기간에 관광객 무리에서 이탈하는 중국인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제주도에서 주로 중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업체들은 “골치 아픈 일이 줄어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한 관광 가이드는 “그동안 여권을 들고 불쑥 사라지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종종 있었다. 그래도 그런 사람이 걸리지 않길 바라면서 늘 조마조마하고 있었는데, 점차 줄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의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같은 시점에 관광객 무리에서 이탈하는 중국인과 건설 현장에 있던 중국인 인부의 수가 동시에 줄기 시작했다. 이 시점은 경찰과 고용 당국이 ‘불법 체류자’와 ‘밀입국자’에 대한 단속을 지난해보다 더욱 강화한 때다. 관광객과 건설 현장 인부, 그리고 불법 체류자. 이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걸까.
# “돈을 벌기 위해서”
앞서의 의문은 한 여행사 직원으로부터 해결할 수 있었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A 씨는 지난 1월, 무사증 제도(비자 없이 최장 30일간 제주도 관광 가능)로 제주에 입국한 베트남 관광객 59명이 사라진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단체관광객 155명 틈에 섞여 입국한 이들은 단 하루 만에 종적을 감췄다. A 씨는 “사라진 관광객들은 공통적으로 가져온 물건이 별로 없었다. 일주일 관광 일정이었는 데도 작은 손가방이나 배낭만 들고 왔다”고 말했다.
베트남 관광객 59명은 입국 당일 밤, 작은 손가방 하나를 들고 숙소를 떠났다. A 씨와 여행사 직원이 ‘무단이탈자 방지 매뉴얼’에 따라 여권을 맡아두고 있었지만 그들에겐 ‘중요한 소지품’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그들이 머물던 방도 깨끗했다. 구겨진 담배꽁초 두 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의 행방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대부분 인근 모텔에 머물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검거됐다. 그런데 일부 베트남 관광객이 발견된 곳은 모텔이 아닌 공장이었다. 단순히 몸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니었다. 공장 측에 임금을 약속 받고 일을 하고 있었다. 경찰에 검거된 그는 정확히 어떤 경로로 공장까지 오게 됐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만난 누군가와 함께 이곳 저곳을 옮겨 다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 온 목적에 대해 관광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앞서와 같은 방식으로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의 수는 매년 늘고 있다. 무사증 제도로 제주를 찾은 외국인은 2011년 11만 3825명에서 2015년 62만 9724명으로 크게 늘었다. 동시에 무단 이탈자 역시 2011년 282명에서 2015년 4353명으로 급증했다. 이 가운데 적발된 외국인 대부분은 한국 입국 목적에 대해 ‘취업’이라고 답했다.
# 검은 그림자, 브로커
경찰과 고용당국, 여행사 업계에선 이를 일부 외국인의 일탈 행위로 보지 않고 있다. 한국말은커녕 영어도 모르는 외국인들이 밀입국을 하고, 며칠 만에 취업을 한 점으로 볼 때 이들을 돕는 누군가, 즉 브로커 집단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들 사이에서 브로커 집단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외국인들이 많이 모여 있는 안산, 중국동포나 중국인들이 터를 잡은 서울 대림동 일대에선 쉽게 밀입국 브로커들과 접촉할 수 있다고 했다.
이들 사이에선 구체적인 밀입국 비용과 방법에 대해서도 잘 알려져 있었다. ‘중국 이 사장’이라는 인물이 만든 450만 원짜리 밀입국 ‘패키지’가 대표적이다. 이 금액만 내면 배를 타고 제주도는 물론, 또는 육지까지 이동할 수 있다. 여기에 웃돈을 더 얹으면 빠른 취업도 가능하다. 관광으로 위장해 비행기를 타고 입국하면 가격은 두 배로 뛴다. 한화 1400만 원은 기본 금액이고, 서울로 이동하려면 300만 원이 더 추가된다.
# 적발 어려운 이유
일관된 루트와 가격이 책정돼 있는 것으로 볼 때, 브로커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일부 중국동포들과 경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들은 점조직 형태로, 치밀하게 밀입국을 주도하고 있다.
브로커들은 현지에서 알선책을 통해 밀입국 ‘희망자’를 모집한다. 현지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등 공공장소에 “한국에 가서 취업하실 분 모집”이라는 홍보 포스터를 붙이거나, 구인신문에 광고를 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현지 유명 커뮤니티나 SNS를 통한 광고가 급증하는 추세다.
배와 비행기 등을 통해 밀입국자들이 한국에 입국하면 한국 알선책이 정해진 모텔로 이들을 안내한다. 알선책은 육지 등으로 밀입국자들을 옮길 운반책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차가 준비되면 다시 밀입국자들에게 연락을 돌린다. 밀입국자들은 택시를 타고 모텔 등 정해진 장소를 말하거나 쪽지를 보여주면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모든 대화와 연락이 스마트폰 메신저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웨이신(We chat)이나 QQ가 대표적이다. 단순히 계정만 추가해 연락을 주고 받는 방식이라 연락처 등을 알 방법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이 때문에 알선책과 운반책 등, 같은 브로커 조직끼리도 신원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알선책은 모텔이나 집결 장소를 알려주면 그만이고, 운반책은 밀입국자들을 정해진 장소로 데려다 주는 게 전부다. 운반책과 알선책 등은 앞서의 패키지 금액 450만 원 가운데 100만 원가량씩을 받지만, 누구에게 돈을 받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에 대해 경남의 한 경찰 관계자는 “이런 방법을 쓰는 조직에는 여행사, 국제결혼정보업체, 운수업 종사자 등 자영업자들이나 직업을 갖고 있는 한국인이 연루돼 있다. 밀입국에 성공한 외국인도 일부 있다”며 “목돈 마련을 위해 한두 번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는 전문적으로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들은 늘 점조직 형태로 움직이기 때문에 운반책과 알선책을 검거한다 해도 총책을 적발하는 게 쉽지 않다”고 귀띔했다.
# 밀입국자가 아닌 브로커를 위한 ‘코리안 드림’
법무부와 경찰은 밀입국자와 이를 통한 불법 취업에 대해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앞서의 브로커 조직이 존재하는 한 밀입국은 계속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브로커 집단이 단순히 알선이나 운반만 담당하는 게 아니라, 한국의 일반 공장과 농장, 또는 중소기업에 수시로 접촉하면서, 밀입국 및 불법체류 ‘수요’까지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밀입국자나 불법체류자들을 고용했던 공장이나 농장 관계자들은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람(밀입국자 등)을 쓴다”고 토로한다. 전남 지역의 한 농장 관계자는 “종종 SNS나 메일, 전화 등으로 (브로커에게) ‘사람 필요하지 않냐’며 연락이 온다. 소개해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법 체류자나 밀입국자다. 거절하면 당분간 (밀입국자) 쓰고 있으면 ‘합법’으로 바꿔주겠다고 제안한다”며 “일손은 해가 갈수록 부족해지고 인건비도 적게 들어가니까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허위 초청장을 써주는 중소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남의 한 경찰관계자는 “초청장이나 고용허가서를 써준 업체들은 적발되면 대부분 ‘실제로 고용하기 위해 입국시켰는데 도망쳤다’ 또는 ‘우리가 만든 서류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완강히 부인한다”며 “일부는 직원들 월급도 제대로 못 주는 형편인데 서류 한 장에 100만~200만 원을 준다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다고 토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경찰, 여행사 등 관계자들에 따르면 외국인 밀입국 알선은 사실상 하나의 ‘비즈니스’로 자리 잡았다. 현재까지 적발된 사례로만 봐도 알선책들은 사례금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반면 이들에게 거액의 사례금을 준 밀입국자 중 상당수는 가족과 지인들의 돈까지 끌어 모아 빚을 지고 온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채 고국에도 돌아가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오지만 정작 코리안 드림을 실현한 사람은 밀입국 알선책들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유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기업형 브로커 조직도…유령회사 차려 놓고 “오세요” ‘기업형’ 브로커 조직이 개입하면 밀입국 루트는 더욱 다양해진다. 이들은 서류 위‧변조 등을 통해 합법을 빙자한 불법 밀입국, 취업을 알선하기 때문이다. 서류 위조를 통해 밀입국을 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허위 초청이나 고용허가서다. 브로커 조직은 ‘중소기업 대표’로 신분을 위장해 유령 회사를 차리거나 가짜 서류를 만들어줄 것이라 판단되는 업체를 직접 찾아간다. 업체 관계자에게는 “고용허가서를 써주면 건당 100만 원, 가짜 바이어 초청장을 써주면 200만 원을 챙겨주겠다”고 제의한다. 잦은 발급으로 인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 10명 단위로 업체를 바꾼다. 한국에서 허위 초청장을 만들어 현지 알선책에 전달하면 그는 밀입국자에게 공항 입국심사대를 통과하는 데 필요한 사전교육을 한다. 밀입국자가 한국에 무사히 입국하면 그 자리에서 추가 사례금을 받는다. 이런 방식으로 1명을 밀입국시키고 받는 돈은 최소 1200만 원이다. 외국인 등록증을 위조하는 것은 ‘별도 옵션’이다. 이 과정에서 여권이 필요한 경우에는 이마저도 쉽게 위조한다. 위조 담당자에게 200만 원만 송금하면 3주 내로 받을 수 있다. 신청 방법도 어렵지 않다. 앞서의 ‘한국 취업’ 광고나 브로커 등에 접촉한 뒤, 돈과 함께 메일로 나이와 이름, 증명사진을 첨부해 의뢰하면 된다. 여기에 해외여행 중 도난이나 분실된 한국 여권도 사들여 이를 변조해 사용하는 방법도 성행한다. 또한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다른 사람의 공연 동영상을 제출해 예술흥행비자(E-6)을 발급받는 수법을 통해 가수나 댄서 등으로 여성들을 허위 초청한 뒤, 성매매 업소에 취업시키는 경우도 늘고 있다. 최근 강남을 중심으로 러시아, 태국 여성만 있는 오피스텔이나 휴게텔 등이 늘고 있는데, 대부분 이런 수법으로 한국에 입국 시킨다. 그밖에 홍콩이나 중국에서 출발해 한국을 경유하는 화물선, 크루즈 여행 패키지를 활용한 밀입국도 앞서의 기업형 조직을 통하면 어렵지 않게 시도할 수 있다. 이 경우, 전국의 모든 항만이 밀입국 루트가 된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