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헐크한테 여유를 가르치세요
▲ 스트레스를 삶의 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 ||
이번 기회에 자신의 분노 수준을 체크해 보고, 적절히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보자. 쉽게 분노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에너지를 다른 쪽으로 발산할 필요가 있다.
펀드 때문에 많은 손해를 본 30대 후반의 직장인 남자 Y 씨. 결혼자금으로 애써 모아온 돈 3000만 원을 펀드에 넣었다가 후회막심이다. 더 손해를 보기 전에 팔아야겠다고 결심, 환매를 하고 난 후로는 신경이 예민해졌다. 회사에서도 상사에게 업무 때문에 지적을 받으면 자신도 모르게 속에서 벌컥 치솟는 느낌이 자주 들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어떨 때는 가슴도 답답하다.
K 씨(남·31) 역시 비슷한 증상으로 얼마 전에 병원을 다녀왔다. 특별히 아픈 데는 없지만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나서 참기 힘들다. 윗집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나면 바로 달려가서 화를 내고, 마트에 가서도 조금만 못마땅하면 판매사원들에게 바로 거친 말을 내뱉는다. 얼마 전에 아들을 낳아 신경이 예민해진 그의 아내가 속상해서 “도대체 왜 그렇게 화를 자주 내느냐?”고 묻곤 한다.
병원에서 상담을 받은 결과, K 씨는 의사로부터 자신도 모르게 자꾸 화를 내는 것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마음속에 응어리진 상처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처럼 어려운 경제 여건,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 사회에 대한 미움 등 분노의 원인은 저마다 다양하다.
‘분노’라는 감정은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 중 교감신경계를 지나치게 흥분시킨다. 이로 인해 판단력을 상실, 상황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 스트레스 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이 분비돼 신체에 각종 나쁜 증상을 만들기도 한다.
분노는 한방에서 말하는 화와 같은 개념이다. 보통 화나 화병, 스트레스를 같은 것으로 여기지만 화병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병이다. 스트레스란 외부의 환경 또는 내부의 욕구에서 생기는 해로운 자극으로 인한 신체 변화를 뜻한다. 정확하게는 아직 병이 아닌 상태다. 분노도 스트레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화병을 쉽게 말하면 분노, 즉 화로 인한 병이다. 오랫동안 분노가 차곡차곡 쌓일 때 생긴다. 다시 말하면 속상한 일이나 고민스러운 일, 좌절, 욕구불만 같은 마음의 상처를 제대 풀지 못하고 계속 가지고 있을 때 화병에 걸리기 쉽다”는 것이 신촌세브란스 정신과 민성길 교수의 설명이다.
부정적 감정이나 충동을 발산하고 싶지만 주위 여건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참고 사는 것이다. 이런 생활이 오래 가면 화병이 생기기 쉽다. 서양의학적으로 화병의 이름을 붙이자면 ‘만성 분노장애’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병명은 없다. 또한 요즘에는 오래 참아서 화병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당장 화가 나서 못 참는 경우, 이른바 ‘급성 화병’을 보이는 이들도 많다.
화병이 있으면 자주 열이 오르는 느낌이 들거나 가슴, 목이 답답하고 어지럼증 불면증 두통 같은 증상이 생긴다. 심리적으로는 별일이 아닌데도 우울해지거나 불안, 짜증 등이 자주 나타나고 쉽게 분노가 폭발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 분노가 폭발할까. 대부분 상대방이 자기를 무시하거나 놀리고 있다고 느낄 때 분노한다.
분노를 참는 것도 문제지만 분노를 지나치게 표현하는 것 역시 문제다. 분노를 지나치게 표현하면 심장혈관 질환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의 심장전문의 프리드만과 로젠만은 관상동맥 질환 환자 중에 항상 바쁘고, 쉽게 적대감이나 분노를 표현하고 아주 경쟁적이며 야심만만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것을 ‘A형 성격’으로 구분했다. 건강한 남자 3000명을 대상으로 8년 반 동안 추적 조사를 한 결과, A형 성격을 가진 사람은 반대의 성격(B형)보다 2배 정도 더 관상동맥질환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심장근육에 분포돼 있는 관상동맥의 상태를 검사해 보면 혈관이 미세하게 막힌 사람은 A형과 B형이 큰 차이가 없었지만 다소 심하게 막힌 사람은 70%가 A형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아주 심한 사람, 즉 최소한 2개 이상의 관상동맥이 동맥경화 덩어리로 완전히 막힌 사람 중에서는 90% 이상이 A형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분노를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성격이 소심하고 예민한 사람들이다. 너무 참기만 하는 경우나 자신을 학대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평소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성격도 잘 참지 못해 분노를 드러내는 경향을 보인다.
흔히 ‘자존심이 강하다’고 알려진 사람들도 사소한 일에 화를 잘 내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사람은 자존심이 강한 것이 아니라 자기애가 강한 경우가 많다. 자신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면 화가 난다는 것이다.
민성길 교수는 “이런 사람은 자존심이 강한 게 아니라 반대로 자존심이 약한 사람이다. 강한 것처럼 허세를 부리지만 속마음은 약하고 열등감이 많아 마음의 상처를 잘 받는다”며 “정말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화를 잘 내지 않고 화가 나더라도 잘 다스린다”고 말했다.
분노할 만한 어떤 상황에 대해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어느 정도 분노를 표출하다가도 곧 자신의 말과 행동을 반성하면서 스스로를 통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분노를 잘 참고 곤란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너무 쉽게 분노해서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분노했을 때 생기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다른 쪽으로 발산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의 분노에 대해 일이나 상대방 혹은 사회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분노를 추슬러 긍정적으로 발산시키는, 즉 자신이 먼저 변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좋다.
우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사고의 전환’을 시도해 본다. 우선 스트레스를 삶의 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업무가 너무 많아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잠시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런 다음 다시 일을 시작하면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계속 일에 매달려 있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다. 꼭 해야 하는 일도 즐겁게 할 때 훨씬 속도가 난다.
또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을수록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조금만 뜻대로 되지 않아도 쉽게 분노하거나 목표에 집착하면 오히려 목표와 더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대인관계에서는 너무 완전한 관계를 원하지 않도록 한다. 상대의 생각은 나와 다르기 마련이므로 어떤 대인관계에서든 약간의 갈등이 있는 것이 정상이다. 갈등이 전혀 없는 것보다 서로 노력해서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했을 때 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다.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말고 의문이나 생각이 다를 때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좋다.
화가 나더라도 작은 실수나 실망은 웃고 넘어가는 아량도 필요하다. 화가 날 때는 조용히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과거의 일 중에서 재미있는 일을 생각해 본다. 조그만 일에도 화를 내는 습관이 몸에 배지 않도록 한다.
여러 가지 노력을 해도 분노를 다스리기 어렵다면 병원을 찾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검사를 통해 분노의 원인을 찾아낸 다음 없앨 수 있는 것이라면 치료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분노를 조절하는 이완요법이나 심리치료 등을 배우면 도움이 된다. 필요하다면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항경련제 등의 약을 처방하기도 한다.
가족이나 회사 동료 등 주변 사람들은 분하고 억울한 것, 고생한 것 등을 충분히 이해해 주고 분노를 쉽게 풀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상대방이 화를 자주 낸다고 주변 사람들이 같이 화를 내고 감정적으로 대하면 더 풀기 어렵다.
또한 화가 나더라도 자신이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표현은 삼가야 한다. 쉽게 화를 풀려면 유머의 힘을 빌려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세브란스병원 정신과 민성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