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논란은 새만금에서부터 시작됐다. 내국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오픈 카지노’를 세울 수 있도록 하자는 ‘새만금사업 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이다. 현재 외국인 전용 카지노만 지을 수 있도록 규정된 조항을 손질해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를 세우자는 취지다.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의 주도로 전북 출신 소속 의원들이 모두 개정안 발의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서 사실상 국민의당이 논란을 부추긴 모양새다.
카지노를 유치하겠다는 명분은 그럴 듯하다. 복합카지노 리조트를 설치함으로써 진척이 더딘 새만금 개발을 앞당기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새만금에 복합 리조트가 들어설 경우 앞으로 5년간 일자리가 23만개 창출되고 23조5000억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내며 8조9000억원의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다는 게 김 의원 측이 제시한 대략적인 추산이다. 세수도 해마다 1조원 정도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 샌즈리조트가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2010년 개장되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카지노리조트다. 모두 3550실의 호텔 객실과 지상 200m 높이인 호텔 옥상에 대규모 야외수영장을 갖춤으로써 현재 싱가포르의 랜드마크로 군림하고 있다. 하루 방문하는 관광객만 해도 7만명 안팎에 이른다. 일찍이 불모의 사막에 카지노가 들어섬으로써 미국 서부지역의 경제를 견인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던 라스베이거스의 사례는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유발 효과를 액면 그대로 기대하기도 어렵겠으나, 설사 실현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라도 카지노 도입으로 인한 부정적인 측면을 지나칠 수 없다. 도박 중독으로 인한 사회적인 폐해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원랜드 카지노가 영업을 개시한 2000년 이후 도박에 빠져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데서 확인되는 점이다. 일대에서도 전당포가 가장 성업 중이라는 사실이 상징적이다. 이미 전북 지역에서도 “새만금에 도박산업의 빗장이 열리면 지역사회가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앞서 싱가포르의 경우 마리나베이와 센토사에 카지노가 개장하기까지 정부 차원의 꾸준한 국민설득 노력이 따랐음을 이해해야 한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와 고용창출, 경제회생 등 확실한 목표와 명분이 있었던 데다 사회적인 폐해를 줄이는 방안에 대해서까지 철저한 사전 검토가 이뤄졌다. 처음 카지노를 허용하면서 국민적인 반발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새만금에 카지노를 추진하면서 싱가포르와 비교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는 카지노 감독법에 따라 내국인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아직 카지노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비결이다. 내국인의 경우 100싱가포르달러(약 8만2000원)의 적잖은 입장료를 물리면서도 연간 20회 한도 내에서만 입장이 허용된다. 파산신청 대상자나 신용불량자들은 물론 공공주택 임대료를 6개월 이상 연체한 경우에도 출입금지를 내릴 수 있도록 블랙리스트 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지금의 우리 일반 정서상 이처럼 엄격한 제한 조치가 가능하겠느냐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사진=강원도 내 시장·군수들이 29일 태백시 오투리조트 컨벤션센터에서 시장·군수 협의회(회장 최명희 강릉시장) 정례회를 열고 새만금 특별법 개정안의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2016.8.29 ⓒ연합뉴스
새만금에 카지노를 허용할 경우 서울과 부산, 인천 등 다른 지역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소지도 다분하다. 카지노를 새로 허용하면서 새만금에만 허용하기에는 명분이 약하기 때문이다. 새만금 카지노 주장이 일어나면서 부산에서도 카지노 토론회가 개최되는 등 지역적인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특정 지역에만 카지노를 허용한다면 지역 간 충돌이 우려된다. 그렇다고 원하는 대로 모두 요구를 들어줄 수도 없는 형편이다.
가장 큰 문제는 기존 강원랜드의 반발이다. 강원랜드는 ‘폐광지역 개발지원 특별법’에 의해 2025년까지 내국인 카지노 운영권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에 카지노가 생길 경우 기득권을 침해받는 입장이 된다. 강원랜드가 성명을 통해 “카지노는 도박 중독자 대량 배출과 재산 탕진 등 폐해를 유발한다”며 치부를 솔직히 드러내면서까지 반대하는 이유다. 국민의당의 카지노 추진 움직임에 대해서는 ‘입법 포퓰리즘’이라며 극력 저지를 선언한 마당이다.
이에 대해 새만금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한 김관영 의원 측은 강원랜드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새만금 카지노가 성사될 경우 입장료를 강원랜드의 10배 수준으로 올리고 입장 횟수를 엄격히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카지노 수익의 일부를 강원도 폐광지역에 우선 배분하겠다는 카드도 내놓았다. 그러나 강원랜드의 접근성이 새만금이나 부산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는 점에서 이 일대의 경제가 초토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지역 주민들과 정치권이 똑같이 받아들이는 위기감이다.
더구나 지금의 내국인 카지노 논란에는 국내 시장을 노린 외국 자본의 상술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 진출을 시도하고 있는 샌즈그룹은 라스베이거스에 뿌리를 둔 전형적인 카지노 자본이다. 지난 2004년 마카오에 샌즈마카오 개장을 출발점으로 아시아 진출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가 샌즈그룹 소유이며, 일본에도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에 맞춰 카지노 설립을 추진 중이다.
어느 외국 자본과 마찬가지로 샌즈그룹의 투자 의도는 분명하다. 이익이 발생하는 만큼 거둬가겠다는 것이다. 앞서 제시한 대로 새만금에 카지노가 세워지고 경제유발 효과가 그대로 나타난다 하더라도 실속은 샌즈그룹이 독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밤거리의 조명은 화려할지 몰라도 자칫 카지노로 재산을 탕진한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절망의 도시’로 전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새만금의 개발과정과 특성에 관련된 문제다.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이라는 의미를 떠나서도 모두 24조원 규모의 천문학적 예산이 투자된 간척사업이다. 이처럼 국민적 기대를 걸고 추진된 새만금의 돌파구를 카지노에서 찾겠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고도 안이하다. 진정 새만금의 미래를 위한다면 좀 더 건설적인 방향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새만금을 살리려고 강원랜드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상이다. 강원랜드가 현재 10조원 이상의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는 점에서도 국민 정서적으로 수긍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새만금에 대기업들이 추진하는 ‘스마트 영농’을 도입하는 것이 더 가까울 수 있다. 정치인들이 주민들을 설득하고 선도하지는 못할망정 포퓰리즘 방식으로 관심을 끌어가려는 방식에 우려를 느낄 뿐이다.
그렇다고 내국인 카지노가 언제까지나 불가침의 영역은 아닐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카지노 정책에 근본적인 전환점이 요구된다. 강원랜드의 독점권이 2025년에 끝나게 되므로, 그 이후에는 다시 판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다른 지역에서도 계속 입질을 하는 상황에서 강원랜드에만 계속 카지노를 허용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경마와 로또 등 여러 사행산업 중에서 유독 카지노에 대해서만 내국인 접근을 금지하고 있는 것도 형평성에는 맞지 않는다.
카지노 게임에 흥미를 지닌 국내 고객들이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 등 외국 카지노를 들락거리고 있다는 사실도 고려 대상이다. 국내 소비로 충분히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언제까지 외국에 손님을 빼앗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외국인 관광객은 국내에서 카지노를 즐기도록 유치하면서도 내국인에 대해서는 카지노 출입을 금지하는 정책도 합리적이지는 않다. 더군다나 일본에 카지노가 들어설 경우 관광정책 차원에서도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하지만 아직은 ‘국민 정서’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 강원랜드는 폐광지역의 경제회생과 고용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공감대가 형성된 끝에 정부 주도로 허가가 이뤄진 경우다. 새만금이나 부산의 경우에도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의욕은 이해할 수 있으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을 생각해 도박산업으로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은 근시안적 발상이다. 언젠가는 이뤄질 일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고진현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