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측 ‘헛다리짚기’에 박근혜 당했다
▲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갈등의 발화점은 죽기 살기 식의 후보검증 공방에서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정치권의 전망이다. 검증 공방이 격화되더라도 경선은 치러질 수도 있지만 그 후 분당을 포함한 후유증도 예상해볼 수 있다. 한나라당의 끝나지 않은 내홍을 따라가 봤다.
지난 4월부터 불붙기 시작한 한나라당의 경선 룰 공방이 일단 끝이 났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과 박근혜 전 대표 측은 중재안 결과를 두고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과연 누가 이번 1차 경선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볼 수 있을까. 양측 모두 자신들의 승리라고 말하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결과 판정이 그리 녹록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양측의 독자적인 자체 계산서부터 살펴보자. 이명박 전 시장은 벼랑 끝 정국에서 전격적인 양보를 함으로써 당의 화합을 지켜낸 ‘통 큰 지도자상’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공방으로 당의 주류로 우뚝 서게 됐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 측은 “뚝심 있게 원칙을 지켜낸 결과”라며 그의 ‘철혈 이미지’를 한껏 내세웠다고 판단한다. 또한 이번 공방전에 대해서도 “우리가 또 양보했다”며 이 전 시장의 ‘통 큰 결단’을 깎아 내리고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한 중립 의원은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이 이번에 양보함으로써 대의명분을 가지고 간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끝까지 떼를 쓰면 무조건 원칙을 지킬 수 있다’는 고집스런 면모를 보여 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여지를 준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전 시장은 명분과 함께 실리도 챙겼다고 볼 수 있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도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은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이 전 시장 측에서는 이번 경선 룰 공방에서 실제로 ‘표’에 있어서도 잃은 것이 별로 없다고 본다. 캠프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번 양보의 핵심은 강재섭 대표 중재안 3항의 양보다. 즉 여론조사 반영비율 하한선 67%를 폐지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목숨을 걸고 관철하려던 조건은 아니었다. 그것은 박 전 대표 측을 묶어두기 위한 일종의 페인트 모션이었다. 그보다 우리가 더 주력했던 것은 제 2항인 전국 시군구에 일제히 투표소를 설치, 하루 만에 투표를 마치는 것이다. 이는 일반국민들의 투표율을 대폭 높여주기 때문에 하한선 67% 양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 전 시장 캠프의 조직본부장으로 유력한 이방호 의원은 수많은 선거를 치러봐 조직 관리에 매우 능하다. 그는 이번 경선 룰 공방의 핵심이 전국 시군구 투표소 설치라고 보고 있었다. 그는 최근 기자에게 “이재오 최고위원이 강재섭 대표를 만나 경선 룰에 관한 ‘최종담판’을 짓기 전에 이 최고위원에게 ‘강재섭 대표를 만나거든 다른 것은 필요 없고 전국 시군구 투표소 설치와 동시투표를 강력하게 요구해라. 전국에 퍼져 있는 이 전 시장 조직이 움직일 경우 일반 국민들의 참여도도 충분히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제 3안 국민투표 67% 보정은 우리가 양보해도 그리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다’라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 점은 경선 룰 합의 뒤 박 전 대표 측에서 나온 불만과도 맥이 닿는다. 친박 그룹으로 분류되는 이규택 의원은 이에 대해 “이 전 시장 측은 2항만 있으면 산다고 생각하고 있다. 시군구에 200~300여 명 동원 못하겠는가. 모 의원에 의하면 2항을 획득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3항을 강 대표가 집어넣고 이 전 시장이 이를 양보하는 철두철미한 계획을 세웠다”며 크게 반발해 캠프에서도 내부 분란이 있었다. 이 전 시장의 3항에 대한 조건 없는 양보는 결국 2항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한 얄팍한 술수라고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 측은 ‘원칙을 지키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지켜낸 것을 최대 수확으로 꼽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친박 의원 보좌관은 이에 대해 “사실 경선 규정을 둘러싸고 이명박 전 시장이 ‘양보’를 한 것은 어찌 보면 박 전 대표와의 기싸움에서 밀린 나머지 ‘물명박’이라는 우유부단한 이미지를 더 깊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전 시장이 ‘통 큰 정치’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 이번 사건을 통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박근혜가 의외로 뚝심이 있고, 이명박은 의외로 약하다’는 인상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이번 전쟁은 국민들의 지지가 없는 진흙탕 싸움이었기 때문에 이 전 시장이 양보를 했다고 해도 별로 부각이 안 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 측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전 시장 측이 그동안 대세론을 내세워 엄청나게 줄 세우기를 했지만 결국 이번 전쟁에서 그 세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최고위원 등이 강경론을 펼쳐 한때 캠프에서는 ‘전국위원회 투표 강행을 통해 이번 기회에 박 전 대표를 완전히 주저앉히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지만 결국 이 전 시장이 당내 압도적인 지지를 확신하지 못해 한발 물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히면서 “반면 박 전 대표의 당내 지지도는 여전히 견고하다. 앞으로 남은 2개월은 이 전 시장을 후보검증 문제로 추락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이 전 시장의 후보검증 문제점을 집중 부각시킨다면 보수적인 당심이 박 전 대표로 쏠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의 분석 가운데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리던 한나라당 내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사실만은 틀림없는 듯하다. 과연 박 전 대표 측이 지지율 역전을 위해 목을 매고 있는 후보검증이 그들의 바람대로 이루어질까.
먼저 이 전 시장 측은 후보검증에 관한 한 열세를 면치 못할 상황이다. 이 전 시장 입장에서 보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에 굳이 후보검증에 관해서도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 단지 자료 축적 정도만 해놓자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에서 펀치가 날아올지 모른다는 게 약점이다. 때문에 박 전 대표 측이 기습공격을 감행한다면 앉아서 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깊어지고 있다. 물론 캠프에서는 “모든 상황에 대해 자료 축적과 관련 인사들을 스크린했다. 오히려 저쪽(박 전 대표 측)에서 준비를 하지 않는 것 같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 전 시장 측이 예상하고 있는 후보검증 항목 중에 ‘에리카 김 사건’이나 이 전 시장의 숨겨진 거액의 재산 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그의 도덕성과 관련한 민감한 사생활 문제가 터질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특히 이는 보수적인 성향의 한나라당 대의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심’의 압도적인 지지 부족은 이 전 시장에게 아킬레스건이다. 왜냐하면 그가 가지고 있는 최대 장점은 범국민적 지지도지만 이것은 확실한 현금이 아니고 일종의 ‘어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67% 일반국민 여론조사 보정 항목도 없어져 당심에 따라 경선 결과가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투표구를 여러 곳에 설치해 참여율을 높인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대의원이나 당원 참여율의 절반에도 못 미칠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만약 이 후보의 지지도가 떨어져 박 전 대표와의 차이가 10%포인트 안쪽으로 좁혀진다면 상당한 위기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리고 그 위기를 부르는 특급 토네이도가 바로 후보검증이라고 보고 있다.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공이다. 하지만 이 전 시장은 그 선제공격을 날릴 수 없다.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그로서는 ‘관리’에 치중할 것이고 그 결과 후보 검증 국면에서 계속 박 전 대표에게 질질 끌려 다닐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박 전 대표가 경선 룰 공방에서 보여준 ‘막무가내 식’ 주장을 되풀이할 경우 당을 깨지 않는 이상 뾰족한 수가 없을 것으로 보여 수세국면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전 시장이 박 전 대표 측의 무차별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맞대응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당심에서 밀린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박 전 대표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전 시장 측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상식 선에서 공격을 하면 참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이 전 시장 측도 상당한 양의 ‘박근혜 X파일’을 확보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여러 곳에서 방대한 자료의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는 게 캠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미 한 월간지에서 최태민 목사(94년 사망) 관련 의혹에 대한 중앙정보부 수사 기록을 상세하게 보도하는 등 양측의 후보 검증 국면도 급격하게 과격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캠프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이 ‘이명박은 네거티브에 쓰러질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볼 때는 박 전 대표가 더 위험하다. 이 전 시장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는 이미 내성이 생겨 쉽게 지지율이 허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순결한’ 이미지를 가진 박 전 대표에 관한 민감한 부분이 드러날 경우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에 빠질 것이다. ‘한 방에 나가떨어질 후보’는 바로 박 전 대표”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는 이회창 전 총재가 도덕적인 이미지로 비치다가 고급 빌라 파문으로 한순간에 나가떨어진 것과 비슷한 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치킨게임이라는 것이 있다. 한밤중에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로 어느 한 쪽도 양보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치닫는 게임을 말한다. 정치권에선 ‘이-박 치킨게임’이 한나라당의 정권 재창출을 가로막는 최대 변수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은 치열한 경선 뒤에도 상호 비협조, 탈당같은 후유증을 계속 겪게 될 전망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