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이상 게임하는 초등학생 퇴치로 ‘정의구현’”…경찰은 단속 ‘골머리’
PC방에서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어린 학생들 모습. 연합뉴스
요즘 PC방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은 단연 ‘오버워치’다. ‘오버워치’는 총을 사용해 전투하며 상대팀을 죽이는 내용의 다중 사용자 1인칭 슈팅 게임으로 지난 5월 출시된 이후 PC방 게임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런데 최근 ‘오버워치’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PC방에서 ‘오버워치’를 하는 초등학생을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다.
‘오버워치’는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에 기반한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등급분류에 따라 만 15세 이용가로 분류된 게임이다. 하지만 연령 제한에도 불구하고 초등학생을 비롯한 만 15세 미만의 청소년들까지 ‘오버워치’ 열풍에 동참하고 있는 현실이다.
21일 영등포구 소재 한 초등학교에서 만난 초등학생 김민석 군(12·가명)은 “게임 시작할 때 보면 ‘15세 이용가’라고 나와 있어 당연히 하면 안 되는 건 줄 안다. 하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친구들과 오버워치를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이 ‘오버워치’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본인 인증 절차를 걸쳐 회원가입을 해야 하는 게임 특성상 타인의 주민등록번호 도용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만 15세 미만의 초등학생들이 부모님 등 타인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PC방에서 게임을 하다 경찰에게 적발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일부 PC방 이용객에게 초등학생들은 이미 ‘미운털’이 박힌 존재다. 시끄럽게 떠들고 욕설을 하는 등 주변 이용자들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방학이 되면 PC방에 초글링(초등학생과 스타크래프트의 게임 캐릭터 ‘저글링’의 합성어)이 몰려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일부 PC방 이용객들에게 초등학생들은 불편한 존재로 여겨졌다.
실제 ‘오버워치’를 하던 어린 학생을 신고해본 적이 있는 심규범 씨(20)는 “한 번은 주말에 어린 애들이 키보드·마우스 두들기는 소리에 온갖 비속어 써가며 주변을 시끄럽게 하는 걸 못 참아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다”며 “더군다나 그 때는 ‘오버워치’하는 초등학생들이 경찰에 잡혀갔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본적이 있어 ‘나도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으로 신고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확인해본 결과, 심 씨처럼 ‘오버워치’하는 초등학생을 신고한 적이 있거나 이를 목격한 사람들의 후기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후기 중에는 ‘오버워치 초등학생 신고’를 PC방에 자리가 없을 때 자리 구하는 방법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여의도 소재 한 PC방 관계자는 “아무래도 초등학생들이 PC방에 없으면 게임을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신고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어른들 입장에서는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이나 시끄럽게 하는 건 매한가지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처럼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은 해당 PC방으로 출동하게 된다. 서울 중랑경찰서 한 경찰관계자는 “오버워치를 하는 초등학생 대부분이 자신의 형제나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아이디를 만들고 게임을 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주민등록 도용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출동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하지만 출동한다 하더라도 정작 현장에 가보면 신고대상자가 없어 허탕을 치는 경우도 많고, 14세 미만의 청소년에게는 형사상 처벌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훈계 조치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라며 “따로 연락처를 적어 부모나 학교 측에 연락해 지도․편달을 부탁하는 방법 이외엔 특별히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오버워치 초등학생 신고로 경찰력 낭비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초등학생의 오버워치 게임을 제한하는 내용의 PC방 안내문.
PC방 업주들도 제 나름대로 고민이 많다. ‘오버워치 초등학생 신고’로 정작 피해는 PC방 업주가 본다는 입장이다. 여의도 소재 다른 PC방 관계자는 “처음 몇 번은 경고조치로 끝나지만, 제대로 관리를 안 할 경우 영업정지같은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며 “이 때문에 수시로 카운터에서 감시를 하지만 한계가 있다. 비회원으로 PC 켜고 도용 아이디로 접속하는 경우는 매번 매장 돌아다니며 일일이 찾아야 하는데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에 따라 PC방 업주는 나이에 따라 등급에 맞는 게임을 이용자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이를 묵인하고 방치한 업주의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행정조치로는 1번 적발 시 경고, 2번 적발 시 5일 영업정지, 3번 적발 시 10일 영업정지로 최대 6월 이내 영업정지 또는 영업폐쇄 명령까지 받을 수 있다.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지 않으려면 PC방 업주가 자체 관리․감독에 나서야 하는데 실상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예 ‘초등학생 출입금지’를 내세우며 ‘PC방 노키즈존’을 실행하고 있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노원구 한 PC방 관계자도 “생각보다 초등학생 수요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조만간 초등학생을 출입금지 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처벌규정도 미약한데 현실적으로 PC방 일일이 돌아다니며 규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학생들이 이용 등급을 준수하도록 PC방 업주뿐만 아니라 경찰관, 학교, 부모 등 어른들의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지도․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