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전문가 대신 군출신이 요직에…국방부 ‘군별 할당’이 문제다
군인공제회의 낙하산 인사가 만성적자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강남구 군인공제회관.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군인공제회는 부사관 이상 군 간부와 군무원의 생활자금과 노후자금 등 복지를 지원하는 공익법인이다. 공제회 회비로 조성된 10조 원 가까운 막강한 자금력을 통해 각종 군 시설관리부터 금융, 건설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군인공제회는 부진한 사업 운영으로 숱한 지적을 받아왔다. 여러 사업에 투자를 했지만 사실상 진행이 멈춘 사업이 상당수였기 때문. 대표적 부진 사업으로 지목되는 것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다.
지난해 기준, 군인공제회가 2003년부터 PF사업에 투자해 원금도 못 찾은 사업이 10여 건에 이르며 회수하지 못한 금액은 1조 6000억 원에 달했다. 인허가 문제나 투자유치 지연 등으로 진행이 적게는 6년부터 길게는 12년까지 부진했던 사업도 있어 손실만 늘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군인공제회의 손익계산서를 보면, 2011년부터 최근 5년간 5800여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에만 2000억 원 이상의 적자를 냈는데, 이에 대해 군인공제회 관계자는 “과거에 투자했던 부동산 PF 사업들 중 일부를 처분하면서 손실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군인공제회는 앞서의 부진 사업 처분으로 잠재적 부실을 털어냈고, 동시에 올해 부동산 투자전략을 대규모 주택개발사업에서 펀드·리츠 등 간접투자와 소규모·공동투자로 전환해 안정성이 확보된 투자를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 거듭된 만성적자 근본 원인
하지만 군인공제회의 만성적자의 근본 원인은 다른데 있다는 지적이다. 회원들의 회비를 각종 사업을 통해 운용하는 군인공제회 특성상 금융·투자 전문가들의 경영 참여가 필수적인데, 군 출신 인사들이 대부분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즉, 고질적인 낙하산 인사가 해결되지 않으면 또 다른 형태의 투자 부실이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5년간 군인공제회의 임원 현황을 보면, 총 16개 직위에 44명의 임원이 채용됐다. 이 가운데 군 예비역 출신은 절반이 넘는 25명이었다. 여기에 국방부 및 청와대 출신도 각각 한 명씩 자리했다. 나머지는 외부인사로, 민간 기업 출신 전문 경영인 또는 변호사 등이다. 2016년 7월 31일 기준 이사장에는 이상돈 예비역 육군중장이, 감사에는 예비역 공군 소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감사는 국방부, 주한미군 출신 공무원이 각각 역임했다.
지난 2014년 국정감사에서 군인공제회 낙하산 인사로 지적받았던 재무정책, 금융사업, 경영기획, 투자사업부문 등 주요 사업부서의 이사는 현재 대부분 전문 경영인으로 교체됐다. 반면 본부장급 임원에는 여전히 영관급 예비역이 포진해 있다. 감사실장과 재무관리 본부장, 사업개발 본부장 등은 대부분 공군대령, 육군대령 및 중령 예비역이다. 현재 본부장을 역임하는 예비역들은 모두 지난 2014년부터 올해 초 사이에 채용됐다.
군인공제회의 산하기관 대표이사도 절반 이상이 군 출신이었다. 최근 5년 간 군인공제회의 직영사업소 사장 및 법인체 대표이사 현황을 보면, 6개 사업체의 사장과 대표이사를 역임한 14명 가운데 8명이 군 예비역 출신이었다. 특히 군 간부 4명은 전역 후 군인공제회를 거쳐 공제회 산하기관 임원으로 재취업에 성공하기도 했다. 육군 A 준장의 경우 2012년 군인공제회 회원관리 이사로 취업했다가 다시 산하사업체 대표이사로 재취업했다. 육군 B 소령과 C 대령, 공군 D 중령도 전역 후 각각 군인공제회를 거쳐 산하기업의 감사와 전무로 자리를 옮겼다. 2016년 7월 31일 기준 6개 직영사업소 및 법인체 대표이사에는 3명의 예비역 육군 준장이 자리하고 있고, 나머지는 전문경영인이 맡고 있다.
# 임원 연봉 인상, 성과급 지급, 손실에는 책임 없어
군 관계자들 사이에선 군 전문성이 필요한 사업 부서에 군 출신 임원이 자리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군 전문성과 큰 관련이 없는 영리부서나 사업체들에도 대부분 예비역 장성들이 대표이사나 임원 등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투자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자리가 퇴역 군인 출신들로 채워지면서, 투자와 경영에 대한 전문가가 부족해 투자 실패 또는 부진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동시에 군인공제회가 퇴역군인들의 자리 나눠먹기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쏟아진다. 군인공제회 내부에서도 이와 관련한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다. 군인공제회 한 관계자는 “다른 공제회와 비교해 (임원들의) 업무 능력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하지만 군 출신 임원 또는 관계자 수가 많은 것은 맞다.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의견도 다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그동안 군 출신 임원들은 손실에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군인공제회의 경영실적을 보면, 2010년 2428억 원, 2011년 3536억 원 등 적자를 기록하다 2012년에 350억 원의 흑자를 냈지만 2013년 다시 548억 원 적자로 돌아섰다. 2014년엔 134억 원의 흑자로 돌아섰다가 지난해 2320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동시에 회원 복지비는 급감하고 있다. 지난 2012년 3135억 원에서 매년 줄어 2015년 2727억 원을 기록했다. 반면 군인공제회 임원 등의 직위별 연봉 현황을 보면, 군인공제회 본부 임원과 직영사업소 및 법인체 임원들은 지난 2011년부터 올해까지 연봉이 5~10%가량 꾸준히 올랐다. 여기에 2013년과 2015년에는 1억 원에 가까운 성과급도 지급됐다.
또한 군인공제회는 그동안 자체적으로 손실 책임자를 징계했지만, 대상자 가운데 군 출신 임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군인공제회의 손실사업 관련 책임자 등 조치결과를 보면, 지난 2011년 2명, 2013년 6명, 2014년 2명, 올해 3명이 견책과 감봉과 같은 가벼운 징계부터 정직이나 해임의 중징계까지 받았는데, 대상은 모두 팀장이나 사업 실무자에 불과했다. 한 군 관계자는 “사업의 최종 결정권은 임원에게 있는데 단 한 명도 책임을 지지 않으니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군인공제회 관계자는 “현재 투자와 경영과 관련한 부서에는 민간 전문가들을 채용해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다”면서도 “그동안 임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규정이나 지침이 없었다. 임원들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정관 수정을 검토,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 국방부, 임원 선임 군별(軍別) 할당
이러한 거듭된 국방부 산하기관 낙하산 인사 논란은 국방부에서 비롯된 것으로 확인된다. 산하기관 임원 인사는 국방부가 전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군인공제회 측도 “‘규정대로 지정된’ 임원을 채용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국방부 산하기관 임원 선임절차’를 보면, 국방부는 그동안 주요 산하기관 고위직을 육·해·공군 등 출신 군별로 할당해 놓고 있었다. ‘산하기관 고위직 나눠 먹기’ 논란은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이 보고서의 ‘산하기관 임원직위 군 지정 기준’을 보면, 산하기관 및 관련 기관 8곳의 28개 자리 중 육군 예비역 장성 중에서 뽑도록 하는 자리가 15개였다. 해군과 공군은 각각 3개였다. 기타 자리는 책임연구원과 공무원, 전문경영인에게 할당돼 있었다.
이러한 기준 때문에 국방부가 마련한 임원 채용 절차 자체는 까다롭지만, 결국 군 출신 예비역이 임명될 수밖에 없다. 국방부는 현재 산하기관 임원 직위를 대통령 임명직 2명, 장관 임명직 6명, 장관 승인직 24명으로 구분하고 있다. 대통령 임명직은 전쟁기념사업회 회장과 국방과학연구소 소장이며, 장관 임명직은 한국국방연구원 원장, 전쟁기념사업회 감사다. 장관 승인직은 앞서의 기관 사무총장과 감사, 군인공제회 및 직영사업소와 법인체 임원 등이다.
대통령 임명직과 장관 임명직은 추천, 장관 승인직은 인사위원회나 이사회를 통해 선출된다. 모든 임원 선임 절차에는 2~5배수 지원자 모집, 국방부 심의, 인사검증 등이 마련돼 있지만, 군별 임원 지정 기준으로 결국 나눠먹기에 불과하다.
실제로 전쟁기념사업회 회장은 국방부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방장관 제청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모두 육군 중장 또는 소장 출신 예비역 장성만 대통령에게 추천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장관이 임명하는 전쟁기념사업회 감사직은 육군 소장 또는 준장 출신 예비역에게 돌아가고 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군 전문성이 필요한 자리에만 선임하는 것이다. 예비역들의 사회 진출 통로 마련 차원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논란이 되거나 개선할 점이 있다면 검토 후 조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