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붙으면 비토당해’ 거리두기…‘말 안들으면 내칠 수도’ 군기잡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충청 출신의 한 의원이 전한 내용은 참 뜻밖이었다. 절대권력 배출에 실패해온 충청에서는 도돌이표처럼 ‘충청대망론’이 회자되고 있는데 그는 “충청이라고 다 반 총장에게 몰빵(다 걸기의 속된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충북과 충남의 여론이 다르고, 그 안에서도 공기가 다르다고 한 그는 “반 총장은 충청이 아니라 충북 (음성) 사람”이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는 비단 이 의원뿐만 아니었다. 다른 충청 의원은 “충청 친박이라고 또 다 반 총장을 미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의 얘기를 자세히 들어보자.
“지금 우리 당에서는 자기들이야 그런 표현을 싫어하겠지만 ‘온건 친박’과 ‘강성 친박’이 있다. 비둘기파와 매파. 사실 반기문 대망론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은 매파다. 아니, 매파였다. 그런데 요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면서 매파에서 반기문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를 젓는다. 기류가 바뀌고 있다.”
충청권 인사들의 거대모임 중 하나인 충청포럼 대표 친박계 윤상현 의원의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정치권에서 윤 의원은 반 총장과 직접통화가 가능한 인사로 알려져 있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창립한 충청포럼은 반기문 대망론의 중추 지원세력으로 꼽힌다. 윤 의원이 지역구인 인천을 벗어나 고향(충남 청양)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 데에도 “반기문 대망론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란 시각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윤 의원 표현을 보면 그가 충청포럼 대표인지부터 의심스러울 정도다. 최근 한 언론과는 “반 총장은 많은 (대선) 후보 가운데 한 명이다. ‘반기문=친박 지지’라는 등식은 허상”이라며 “인기란 단지 피부 껍질 두께밖에 안 되는 깊이로 반 총장은 정책과 후보 적합성을 놓고 혹독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윤 의원뿐이라면 친박계 전체의 입장 변화라고 단언할 수 없다. 지난해 10월 정가에서 한창 개헌론 바람이 불었을 당시 ‘반기문 대통령, 친박계 국무총리’로의 이원집정부제 시나리오 가능성을 언급한 홍문종 의원이 스탠스를 달리하고 있다면 말이 다르게 된다. 홍 의원은 최근 “반 총장은 정치 아마추어 아니냐. 참 걱정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불과 넉 달 전인 5월 “반기문 총장을 모셔오는 것이 새누리당이나 대한민국을 위해 좋은 선택 아니냐. 그런 말씀을 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반 총장은 (대선 후보) 상수”라고 했던 것과 180도 바뀐 뉘앙스다.
사실 홍 의원은 지난해 이맘때 박근혜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 당시 반 총장과 7차례나 만난 것에 의미를 부여한 당사자였다. 당시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은 비공개 면담 시간을 갖기도 했다. 당시부터 ‘박반연대’의 현실화 가능성이 타진됐고, 친박계는 홍 의원을 시작으로 반기문 띄우기에 열렬히 나섰다.
친박계 핵심 중 핵심인 최경환 의원이 그 예였다. 그는 올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 대통령 특사로 참석해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25분간 면담했다. 원래 그날 오후 2시 만나기로 했다가 반 총장이 교통체증으로 늦자 5시간여를 기다려 오후 7시쯤 만나 대화를 나눴다. 기후변화, 북한 핵실험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기 위해 대통령 특사가 5시간여를 기다렸다는 것을 믿는 이는 많지 않다. 전화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당부라는 얘기다.
그런데 최근 최 의원을 두고 본인이 대선에 욕심을 내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최근 새누리당 경북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대뜸 “내년 대선이 3자 구도가 될지, 4자 구도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니냐”고 했다. 또 “요즘 너도나도 대선에 출마한다고 해서 안 나오면 (정치인) 취급을 못 받는다”고도 했다. 당시 경북도당에 있었던 한 인사는 “웃으며 하는 말이었지만 이를 듣던 기자들과 주변부에서는 농반진반이라도 정치인의 너스레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더라”면서 “당장 TK에선 유승민 의원 말고는 주자가 없다는 것도 최 의원을 부추기는 명분이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 최경환·홍문종·윤상현, 친박 3대천왕이라는 ‘최·홍·윤’의 움직임이 동시다발적인 것이다. 이런 움직임 때문인지 강경 친박계도 최근 입을 닫고 몸을 낮추고 있다. 충청 출신인 이장우 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정치부 기자들과 만나 “이제 이름 앞에 ‘강경파’라는 표현도 빼주고 가급적이면 ‘친박계’라는 단어도 빼고 굳이 넣으려면 ‘주류’나, ‘대전 출신의’ 이렇게 넣어달라”고 읍소와 압박을 병행했다고 전해진다. 일부 진보 중앙지나 인터넷 매체에게는 “앞으로 요상한 수식어를 붙이면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며 농담을 섞어 진심을 전했다고도 한다.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단골손님이었던 그는 요즘 부쩍 몸을 사리고도 있다.
김태흠 의원도 마찬가지. 그는 9월 2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영란법 문제를 알고도 시행령을 손보지 않은 정부는 비겁하다”고 대놓고 청와대와 정부를 겨눴다. 친박계로선 이례적인 공식석상의 총질이었다. 김 의원은 반 총장에 대해서도 “국내 정치에서 리더십을 보여준 적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렇듯 친박계의 ‘보여주기식’ 반기문 거리두기를 보고 정가는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앞서 충청권의 한 의원은 “친박계의 의도적인 거리두기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즉, 반 총장이 ‘친박계 대표’로 이미지 메이킹이 될 경우 당 내부의 반발과 일반 국민의 비토가 적지 않기 때문에 ‘친박 대표가 아니다’라는 시그널을 보내기 위함이라는 얘기다. 마치 무등이라도 태워 경선 없이 대선 후보로 옹립할 분위기였던 친박이 특별한 계기가 없이 태도를 변경한 것에 명분이 약하다는 논리를 들고 있다.
다른 하나는 일종의 ‘군기잡기’다. 충청권 한 인사는 “친박계로선 ‘주류인 우리가 당신을 대권 주자로 모실 수도 있지만 이렇게 내칠 수도 있다’는 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기득권을 쥐려할 수 있다”면서도 “반대로 대세를 굳히고 있는 반 총장이 이들 친박계의 말대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실제로 친박계가 성을 내는 것이라는 설도 있다”고 전했다. 후자에는 최근 정진석 원내대표가 김종필 전 국무총리(JP)의 말을 반 총장에게 직접 전하며 마치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불쾌감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이정필 언론인
이정현식 당운영 불만 폭증 까닭…‘원맨쇼’로 혼자 스포트라이트 최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당 운영 행보를 두고 ‘과거 회귀’ 논란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서번트 리더십, 즉 국민만을 섬기겠다는 일념으로 나홀로 민생탐방, 현안이 생긴 곳 현장 행보 등 파격행보를 이어가던 그가 초심을 잊고 과거 지도부의 당 운영 기조로 바꾸고 있다는 일종의 비아냥거림이자 비판이 새어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이 대표가 취임 일성으로 내놓은 ‘실무적 회의’다. 그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당선되자마자 앞으로 총리나 장관을 불러대는 형식적인 당정 협의회나 간담회는 하지 않고 실무자들을 직접 불러 일의 효율과 능률을 높이겠다고 호언장담한 바 있다. 처음에는 그랬다. 주말과 새벽을 가리지 않고 쟁점 현안이 생기면 관계자들을 불러 회의를 이어갔다. 집권여당 대표가 형식이나 의전보다는 “일이 되는 방향으로” 하려고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지난 9월 11일 15년 만에 발생한 콜레라로 전국의 먹거리에 비상이 걸리자 이 대표는 국회에서 ‘추석 전후 수산물 안전대책 당정협의회’를 열었다. 보건복지부 장관과 해양수산부 장관이 불려왔고 관련 기관 담당자도 쫓아왔다. 50분의 회의가 끝나고 5분의 브리핑이 이어졌는데, 이 대표는 “당분간 끼니마다 회를 먹겠다. 회를 많이 먹겠다”고 했다. 다들 어리둥절해 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며칠 간 이 대표는 수산물시장은 전전했고 회 비빔밥 등을 먹는 장면을 언론에 공개했다. 추석 직후 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이 대표식 초심은 빛을 잃었다. 이 대표는 이날 “각자가 들은 추석민심을 전해달라”며 비공개 회의를 공개로 진행했다. 과거 김무성 전 대표와 서청원 전 최고위원 등이 계파 다툼으로 일관하면서 ‘봉숭아학당’을 만들자, 이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모든 회의는 비공개가 원칙”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언로의 빗장을 걷자 친박계 최고위원들 사이에선 일제히 ‘반기문 띄우기’ 발언이 이어졌다. 추석 민심을 전하는 것보다 추석 연휴 이슈가 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1월 귀국 소식에 숟가락을 올려놓아 언론의 조명을 받아보자는 쪽으로 계산이 된 것 같았다. 전국 각 지역에서 지도부를 통해 배달한 민심은 반 총장 이슈로 막혔고, 이 대표의 초심은 이렇게 빛을 잃었다. 한 당직자는 “오전 회의를 비공개로 하다 보니 당일의 현안 메시지 전쟁에서 매일 새누리당이 야당에게 뒤지고 있다”면서도 “그래도 당이 사분오열되는 것보다는 일사불란한, 정제된 모습을 보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추석 뒤 첫 회의는 실망 그 자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이정현식 당 운영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내놓는다. 일부 최고위원들 사이에선 “당 대표가 무슨 권리로 우리의 언로를 막느냐”는 항의를 이어가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지도부 측 인사는 “최고위원 경선에 나서기 위해서는 돈을 얼마나 써야 하는가. 그렇게 자금을 대면서도 지도부가 되려는 것은 공식석상에서 자기 이야기로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이 대표 본인만 주목받는 지금의 구조를 계속 이어갈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지도부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봉숭아학당을 막고자 했던 개혁 방안이 오히려 더 통제 불가능한 봉숭아학당을 잉태하고 있는 모습이다. [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