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3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등과 환담하고 있는 문재인 민정수석 내정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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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홈페이지에 나타나 있는 민정수석의 주요 업무다. 노무현 제16대 대통령 당선자는 이같은 막중한 업무를 맡을 초대 민정수석에 ‘친구’이자 ‘동지’인 문재인 변호사를 임명했다.
여러 정치적 악조건 속에서도 국민적 여망을 등에 업고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 당선자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국민여론과 민심동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 그가 초대 민정수석에 문재인 변호사를 고집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일단 노무현 당선자와 문재인 민정수석 내정자가 ‘20년지기’라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노 당선자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라며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입니다”라고 언급할 정도로 문 내정자에 대한 신임이 두텁다.
그러나 ‘20년’이란 세월만으로 두 사람의 신뢰관계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게 중론이다. 문 내정자와 10여 년 이상 ‘법무법인 부산’에서 함께 활동해 온 정재성 변호사는 “합리적이고 정의감이 충만하다는 점에서 문 변호사가 (민정수석에) 적임자”라며 “지난 2∼3년 동안 사실상 부산•경남지역 재야운동의 구심점으로 활동해왔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문 내정자가) 정의감과 진보적인 성격 못지 않게 균형감각을 갖고 있다는 점이 더욱 큰 장점”이라며 “변론을 맡아도 일방적으로 의뢰인 편을 들지 않았다”면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변론을 하지만, 지나친 변론은 삼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내정자의 균형감각은 일반적으로 인권변호사를 자처하는 인사들이 ‘무료변론’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과 달리, ‘무료변론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온 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문 내정자는 ‘무료로 변론을 하게 되면 자칫 사건 당사자와 가족들이 재판을 경시하는 풍조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며 적은 액수라도 꼭 유료변론을 원칙으로 해왔다고 한다.
문 내정자는 경상대 교수들이 <한국사회의 이해>라는 저서를 강의했다는 이유로 국보법 위반으로 기소되자 5년간 변론을 맡아 항소심에서 승소를 이끌어 낸 바 있다. 5년간 끌어온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문 내정자가 받은 수임료는 고작 1백만∼2백만원대였다.
‘유료변론’의 원칙은 지키되, ‘수임료’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던 셈이다. 문 내정자의 균형잡힌 변론은 검찰과 법원 인사들 사이에서도 대체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부산지검에 근무했던 ㄱ검사는 “통상 변호사들이 사건 의뢰인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게 마련인데, 문재인 변호사는 비교적 균형잡힌 변론을 해 좋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유료 변론’ 원칙 외에도 ‘사건 브로커’를 두지 않는다는 것도 문재인 내정자가 법무법인을 이끌어오는 동안 견지해 온 원칙이었다. 그러나 ‘인권변호사’로 정평이 난 데다, ‘성실한 변론’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터라, 한 번 사건을 의뢰했던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주는 등 사무실 운영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 노무현 당선자가 23일 오후 인수위원회 접견실에서 문재 인 민정수석 내정자, 고건 국무총리 내정자, 문희상 비서 실장 내정자(왼쪽부터)와 만나 환담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문재인 내정자가 학생•노동자 등과 관련된 시국사건 변론에 적극적이었던 데에는 학생운동 전력으로 판사 임용이 좌절됐던 자신의 경험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부산 출신 문재인 내정자는 경남고를 졸업했다. 한나라당 박종웅 의원과 서병수 의원이 고교 동기다.
경남고 졸업 후 전기에 낙방, 후기로 경희대 법대에 입학한 문 내정자는 75년 대학 4학년 때 유신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 제적됐다. 이후 강제 징집된 그는 논산훈련소에서 공수부대로 차출돼 군복무를 했다. 문 내정자는 공수부대 근무중 교육받은 수중침투훈련의 영향으로 한동안 스킨스쿠버다이빙을 취미로 삼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등산을 주로 즐긴다. 바둑도 1급 정도 실력으로 수준급. 주로 유창혁류의 전투적 기풍을 선호한다고 한다.
군 제대 이후 어렵사리 대학에 복학한 문 내정자는 법대를 졸업하던 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합격 소식을 경찰서 유치장에서 접해야 했다. 80년 5월17일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체포•구금되었던 것. 결국 대학시절 학생운동의 전력은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음도 판사 임용에서 탈락하는 빌미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내정자가 경희대에서 학생운동을 하던 시기,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가 한나라당 강삼재 의원이다. 문 내정자는 “당시를 낭만적 학생운동기라고 하던데, 그때 이념 서클에 가입해 활동했고, 같이 활동하던 사람 중에 (강삼재 의원이) 대표선수로 총학생회장에 나가, 당선됐던 것”이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문 내정자는 사법연수원 시절 대학 때부터 캠퍼스 커플로 사귀어 오던 부인과 결혼했고, 슬하에 1남1녀를 뒀다. 장남은 세종대 1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 현재 논산훈련소에서 조교로 복무중이고, 딸은 올해 대학에 입학할 예정이다.
문재인 내정자는 사법연수원 졸업 이후 82년부터 노무현 당선자와 함께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90년대 중반까지 학생과 노동자 관련 시국사건이라면 부산•경남은 물론, 대구•경북까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발벗고 나섰다.
문 내정자는 이처럼 ‘인권변호사’로 활약한 것 외에 왕성한 사회활동으로도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부산•경남지역 대표 변호사로도 줄곧 활동해 왔고, 88년에는 <한겨레신문> 창간위원과 부산지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밖에 부산 YMCA 이사장, 부산인권센터 공동대표, 사단법인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이사장,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이사도 맡아 왔다. 노 당선자가 문 변호사를 민정수석에 내정한 배경을 두고 단순히 ‘20년 인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일관되게 걸어온 삶의 궤적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문재인 내정자의 이 같은 이력 덕분이다.
사실 문재인 내정자는 그동안 여러 차례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기도 했지만 한사코 거절해왔다. 특히 지난해 6•13 부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후보가 몇 차례 부산시장 출마를 권유했음에도 ‘나는 참모용’이라며 ‘더 나은 사람이 출마해야 한다’고 고사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문 내정자는 ‘YS가 지원해주거나, 최소한 말리지만 않는다면 박종웅 의원이 출마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문 내정자 본인은 ‘변호사 업무에 복귀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노 당선자가 직접 나서 도와줄 것을 청하고, 주위에서 ‘당선자의 개혁 마인드를 뒷받침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쇄도한 이후에야 ‘정치를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뒷받침하러 가는 것’이라며 동참할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문재인 민정수석 내정자는 지난해 ‘제47회 변호사 연수회’에서 ‘법치주의와 개혁’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김대중 정부의 개혁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지만 오랜 권위주의 통치체제 하에서 손상된 민주주의와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법치주의적 개혁은 결코 중단할 수 없는 시대적 관심”이라며 “개혁의지를 가다듬어 정부와 정치권의 각성과 분발을 견인해 내는 국민적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사와 사정 등을 통해 공직기강과 사회기강을 확립해야 하는 민정수석의 중책을 맡게 된 문재인 내정자. 그가 과연 정부와 정치권의 각성과 분발을 견인해 내는 개혁 파수꾼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