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1년 3월22일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빈소를 지키고 있다. | ||
정주영 회장의 다섯째 아들인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MH)이 정주영 전 회장의 묘소 앞에서 코트를 벗고 꿇어앉았다. 묘소 앞에는 간단한 다과가 차려져 있었다.
이윽고 정몽헌 회장이 절을 올리고 꿇어 안자 현대아산 김윤규 사장이 대북사업 경과 보고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참배 전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감정이 둔해서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던 정몽헌 회장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는 소리만 내지 않았을 뿐 오열하고 있었다.
이날 정몽헌 회장 등의 선영 참배는 금강산 육로 시범 관광 출발을 앞두고 대북사업을 지휘하고 개척했던 선친인 정 명예회장에게 보고하는 자리였다. 그럼에도 그가 눈물을 흘린 것은 금강산 관광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현대그룹이나 그에게 좋은 일보다는 견디기 힘든 일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지난 2001년 3월 정주영 명예회장이 타계한 뒤 현대는 2세들간의 상속 싸움과 대북사업을 관할하고 있는 현대그룹의 유동성 위기 등이 겹쳐 궁지에 몰렸다. 현대건설과 현대전자 등 그룹의 간판 회사들이 모두 사실상 은행관리 체제에 들어가 있는 등 말못할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 계열사들은 공교롭게도 대북 송금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음이 최근 드러났다.
정치권에서 대북송금 문제가 논란을 빚으면서 현대의 대북사업은 경제 뉴스보다는 정치 핫뉴스로 취급받고 있다. 게다가 정계 일각에선 대북 송금 전모가 밝혀지면 ‘현대가 망한다’는 거친 말도 튀어 나왔다.
정 명예회장이 세상을 뜬 지금 이 모든 뉴스의 한가운데에는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가 남북의 교류 협력관계를 진일보시킨 것이라고 평가받는 육로관광 시작을 앞두고 선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정몽헌 회장은 지난해부터 거의 유랑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국내에 머물지 못하고 미국 등 해외를 떠돌았다.
그는 지난해 9월 국정감사 직전에 출국해 국내 언론을 피한 채 4개월 동안 잠적했다. 지난해 12월 대통령 선거 후 그의 귀국이 점쳐졌지만 ‘4천억원 대북 지원설’이 터지면서 그의 귀국은 더 미뤄졌다.
그는 결국 출국 5개월 만인 지난 1월11일 전격 귀국했다. 그리고 곧 그는 대북송금과 관련해 출국금지자 명단에 올랐다.
부친이 의욕적으로 펼쳤던 대북 사업이 정치 현안으로 부상하면서 대북사업도, 현대 계열사도 모두 위기 국면으로 치달았다. 그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신세가 된 것이다.
부친이 자주 찾았던 현대건설의 싱가포르 현장의 비밀도, 대북 경협 사업을 위한 송금도 고스란히 정 회장이 해명해야 할 몫으로 남고 말았다.
이에 대해 정 회장의 고모인 정희영씨(정주영 회장의 여동생)는 정 회장의 그간 마음고생에 대해 금강산 육로 시범관광 길에서 “조카(몽헌)가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대는 전 계열사들이 멍들어가면서까지 왜 이런 사업을 고집했던 것일까. 정 회장은 왜 국내외를 유랑하는 처지가 되면서까지 대북사업을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정희영씨는 “정 명예회장이 다른 뜻이 있었던 게 아니라 친척들이 있는 북쪽이 잘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대북사업을 시작했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금강산 인근의 고향인 통천에 여섯째 삼촌댁과 여러 친척들이 남아 있는 등 금강산 개발은 곧 고향개발과 같은 사업이라는 얘기다. 물론 정 명예회장의 ‘1001마리의 소떼 방북’도 다 그런 연장선이었다는 해석이다.
물론 천부적인 사업가였던 정 명예회장이 사업적인 측면을 도외시하고 대북사업에 베팅한 것은 아닌 듯싶다.
정몽헌 회장도 지난 16일 대북송금 관련 기자회견에서 “일본 호주 미국 등 제3국과의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고, 해외자금, 국제기금, 국제기구 등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북측과 7대 사업에 대한 합의 사실을 사전에 공개하지 못했다”고 주장한 것이 바로 그런 면이다.
▲ 정몽헌 회장이 지난 16일 대북송금과 관련한 기 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
현대의 대북 사업을 정주영 회장의 미완의 프로젝트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정주영 회장이 이 사업을 사실상 시작하고 사업권을 따냈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 명예회장이 시작한 현대의 대북사업은 금강산 개발 프로젝트에서 시작해, 개성공단 개발사업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금강산에 2004년까지 5억달러를 퍼붓고 이어 개성공단 개발까지 하기엔 현대의 자금력은 달린다.
때문에 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그 결과에 현대가 목을 맸다. 일본쪽 자금을 동원해 국제컨소시엄을 결성하겠다는 것이 현대의 복안이었지만 북한 핵문제 등 북한의 국제관계가 경색되면서 문제가 꼬인 것.
핵문제 해결없이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인도 개선이 이뤄질 수 없고 이는 다시 북-미, 북-일 관계의 개선, 대북 프로젝트를 수행할 국제 컨소시엄 결성도 여의치 않는 등 사안이 복잡해진 것.
정 회장의 ‘업보’라면 이렇게 복잡하고 리스크가 큰 대북 사업을 부친으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았다는 점이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 2001년 ‘2차 왕자의 난’ 때 육성 발표를 통해 “앞으로 (현대그룹의) 경영자협의회 의장은 정몽헌 회장이 단독으로 한다”고 밝혀 정 회장에게 그룹의 무게 중심을 실어줬다.
그는 이어 “(몽헌 회장 뒤에는) 제가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일은 다 저와 의논할 것이니까 아무 걱정도 안해도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고 밝히며 자신이 정몽헌 회장의 후견인임을 명확히 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이 떠난 지금 정 회장은 도리어 그 부담에 허덕이고 있다.
정몽헌 회장의 가신으로 분류됐던 이익치 현대증권 전 회장은 “정 명예회장이 북한에 소형자동차 공장 설립을 위해 현대자동차 주식을 취득하려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정 명예회장의 시도가 몽구-몽헌 회장 형제간 재산싸움으로 비화하면서 왕자의 난으로 발전됐다. 결국 왕자의 난이 커진데는 정 명예회장의 대북 사업도 한몫했다는 얘기다.
정 회장은 부친 타계 뒤 대북사업쪽으로 힘을 모았다. 대선 이후에는 계열사 인사를 통해 측근 인사를 전진배치해 ‘이사회 의장’이 아닌 현역 경영진으로 경영 일선에 컴백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낳았다. 하지만 대북 송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그의 컴백은 불투명해졌다.
하지만 정 회장의 업무 장악력이나 조직 장악력은 무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그와 갈라선 김충식 현대상선 전 사장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김 전 사장은 “차마 정 회장을 욕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그의 가신들은 같은 전문경영인이기 때문에 욕할 수 있다. 강명구 현대택배 부회장, 김재수 경영기획팀 사장,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최용묵 현대엘리베이터 부사장 등은 문제가 많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현대그룹에 몸담고 있는 인물들이다. 정 회장은 지난 2000년 ‘왕자의 난’ 이후 부친 때의 가신인 박세용 전 회장이나 이익치 전 회장 등을 물러나게 하고 MH사단으로 물갈이를 했다.
MH가 선친 때부터의 가신인 박 전 회장과 이 전 회장을 물러나게 하자 정 회장의 냉정한 성격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각에선 이런 점을 두고 정 회장이 ‘아니다 싶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성격으로 아랫사람이 모시기에는 까다롭다’는 평도 나왔다.
하지만 이는 재벌 2세들 사이에선 특이한 점이 아닐 수도 있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큰 재벌 2세들은 적재적소에 사람을 갖다 쓰기만 할 뿐이지 어떻게 인물을 키우고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하는지는 주된 관심사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대북사업에도 관여했던 이익치 전 회장의 경우 그룹에서 물러난 뒤에는 정 회장과 교류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전 회장은 정몽헌 회장의 동생인 정몽준 의원과는 반대편에 섰다.
하지만 정 회장과 갈라선 이들이 ‘정 회장에게 칼을 들이대지 않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 명예회장에 대한 의리’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만큼 아직 정 회장 주변의 인물들이 명예회장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정몽헌 회장에 대한 인물평가는 무난하다. 다만 현대 가문의 보편적 기질로 인식되는 터프함이나 통이 큰 인물이라기보다는 ‘소박하고 꼼꼼한 인물’이라는 평이 주를 이룬다. 격식을 따지기보다는 실용적이고 소박하다는 것.
출장 갈 때도 수행원을 데려가지 않고 해외지사에서 영접을 나오는 것도 싫어한다. 또 출장을 가면 꼭 계열사 현지법인에서 업무보고를 받는 등 꼼꼼하게 챙기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이익치씨는 정몽헌 회장에 대해 “어쨌든 그는 정주영 명예회장이 사업가적인 기질이 있다고 인정한 아들이다”고 평했다.
정몽헌 회장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국회에서든, 특검을 통해서든 대북사업의 실체가 낱낱이 해부되고, 대북 송금에 연루된 현대건설 등 현대 계열사들의 소액주주들이 집단 소송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
대북 송금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따라 정몽헌 회장은 선친의 사업인 대북사업에서 타의에 의해 손을 떼게 되는 위기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물론 그럴 경우 현대그룹 역시 다시 한 번 위기가 찾아오리란 것은 불문가지다.
그의 옆에는 바람막이가 돼주던 부친도 없다. 남북정상회담이란 정치적 업적을 남겼던 대통령도 곧 바뀐다. 그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