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정국 양김 전쟁 또 시작됐다

왕년의 라이벌 무대 밖에서 ‘입김대결’

	▲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 김영삼 전 대통령

연말 대선이 6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선주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져 도움을 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절을 할 지경이다. 이런 가운데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 등 이른바 ‘3김’의 정치 행보도 덩달아 바빠지고 있다. 지역 패권주의와 강력한 카리스마로 40여 년간 한국 정치사를 이끌어 왔던 ‘3김 정치’는 DJ의 퇴임과 2004년 총선에서 낙선한 JP의 정계은퇴로 완전히 종식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그러나 알고 보면 3김은 여전히 지역패권을 담보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차기 대선주자들이 이들을 찾아 문안을 올리고 3김도 이를 즐기며 훈수정치를 넘어 직접 정치 한가운데에 발을 들여놓기도 한다. “3김 정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3김의 심상찮은 정치행보를 지켜보고 있는 정치권 관계자들은 최근 이구동성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던진다. 3김 이후 뚜렷한 지역맹주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호남·영남·충청권에서 3김의 막강한 영향력은 죽지 않고 되살아났으며 3김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한 대선주자들의 구애경쟁은 낯 뜨거울 정도다. 지역 표심을 얻기 위해서는 아직도 이들 3김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정치환경과 대선주자들의 대권 함수관계가 ‘3김 정치’ 망령을 되살리는 단초가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적지 않은 잔재 세력을 이끌고 있는 3김이 본격화되고 있는 대선정국에 뛰어들 경우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미 정계를 은퇴한 전직 대통령과 거물급 원로 정치인이 국가 전체가 아니라 특정 정파를 위해 현실 정치에 개입하거나 대선정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치 발전이나 국가 발전을 위해서도 좋은 선례가 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재 가장 활발히 정치에 참여 하고 있는 것은 DJ다. 범여권 대선주자들을 두루 면담하며 영향력을 과시해 ‘훈수 정치’ 논란을 넘어 한나라당 측으로 부터는 국론 분열을 조장한다는 극한 비난까지 쏟아지고 있다. 특히 DJ의 훈수정치를 YS가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으로 알려지며 두 사람을 중심축으로 한 범여권과 한나라당의 공방전도 날로 치열해 지고 있는 형국이다.

YS는 지난달 28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한 홍준표 의원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DJ의 ‘훈수 정치’를 겨냥해 “김대중이 완전히 발악을 하고 있다”고 공격해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YS가 선공에 나서자 한나라당도 ‘태상왕 노릇’ ‘국론 분열 조장’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금도를 지켜라’ 등 원색적인 용어를 써가며 DJ를 압박했다.

YS와 한나라당이 DJ에게 공세를 퍼붓자 범여권은 DJ의 지원군으로 나섰다. “정치 원로의 경험과 경륜을 듣고 조언을 구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는 논리가 주류를 이뤘고 “한나라당은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 달라”고 충고 겸 경고를 곁들였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은 “한나라당이 못마땅하다면 전두환·김영삼 전 대통령한테 가서 얘기를 들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미 대통령까지 지낸 DJ와 YS가 70년대 두 사람의 싸움을 연상시키듯 감정싸움까지 얽혀 장외전쟁 양상으로 확전되고 있는 형국이다.

	▲ 김종필 전 총재

문제는 여기에 두 사람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범여권과 한나라당이 대선정국 주도권 장악 전략과 맞물려 있다는 데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DJ는 정치 개입 비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입장을 적극 설파한다는 입장이어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의 예방을 받은 DJ는 “지금은 대통합이 대의이고 명분”이라고 전제한 뒤 “대통합이 안 되면 차선책이라도 결단하라”고 ‘훈수 정치’를 넘어 직접 지시하듯 대책을 내놓았다. 제대로 독자적인 지지세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범여권 대선주자들은 앞으로도 DJ의 영향력을 빌리기 위해 수시로 동교동을 찾을 것으로 예상돼 DJ의 정치개입 논란은 대선정국 내내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YS도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YS가 범여권 주자들로부터 뜨거운 구애를 받고 있는 DJ를 신랄하게 비판한 이면에는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자신 또한 정치적 영향력이 살아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전략이 내포돼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영남권을 지역기반으로 했던 YS는 현재 한나라당 빅2인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측으로부터 지원요청을 받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계보였던 상도동계는 양 진영으로 흩어져 있어 예전만큼 막강한 영향력은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만 YS 개인은 아닐지 몰라도 그 영향력 아래에 있는 구 상도동계 또한 한나라당 주자들의 구애 대상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YS는 개인적으로 박 전 대표보다는 이 전 시장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3월 이 전 시장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는 등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다. 또 지난 5월 18일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게 순리”라고 말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전 시장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JP도 대선정국이 본격화되면 충청권을 담보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만 JP는 정계를 은퇴한 만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받고 있는 심대평 대표를 막후에서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실제로 JP는 지난 4·25 재보선에 출마한 심 대표가 당선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 대표가 주창하고 있는 충청 중심론의 원조가 JP라는 점을 감안하면 심 대표가 그리고 있는 대망론 중심에도 JP의 노회한 정치력이 투영돼 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JP는 심 대표가 차세대 충청권 맹주로 자리매김하면서 범여권 통합세력들로부터 적극적인 연대 제의를 받자 “캐스팅보트를 쥐게 될 기회가 올 것이니 서둘지 말라”는 조언을 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심 대표가 범여권 통합론에 제동을 걸고 ‘홀로서기’를 선택한 배경에도 JP의 훈수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과연 3김의 정치적 욕심은 어디쯤에서 끝날지 두고 볼 일이다.

홍성철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