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 논란에 홍준표 복병
▲ 지난해 8월 한반도대운하 탐사에 나선 이명박 전 시장. 광주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이 전 시장이 대운하 문제의 허점을 노출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
이명박 전 시장 측은 광주 정책토론회가 끝난 뒤 ‘대체로 만족한다’는 자체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다른 후보들이 한반도 대운하 문제를 경제 이슈에서 환경 이슈로 ‘비틀어’ 공격적인 질문을 한 데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내부 평가도 나오고 있다. 캠프 내부에서는 “예기치 못한 ‘환경 공세’에 한방 먹었다”는 표정도 감지된다. 캠프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토론회 자체가 한반도 대운하의 환경 문제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한반도 대운하를 통한 대한민국 발전이라는 이 전 시장의 경제적 비전이 국민들에게 각인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의 가장 핵심 공약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 대운하의 경제적 가치와 비전이 ‘식수 오염’이라는 환경 문제에 파묻혀 오히려 운하 건설 전체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광주 토론회를 위해 밤늦게까지 자료를 꼼꼼히 읽어보고 야무지게 준비를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박 전 대표 측은 그동안 한반도 대운하의 경제성에 대한 문제점을 주로 부각시키다가 이번 토론회에서 홍준표 의원을 비롯한 다른 후보들이 환경 문제에 포커스를 맞춰 집중적인 공세를 펼친 것이 먹혀들었다고 판단, 앞으로 운하 건설의 ‘환경 재앙’을 집중적으로 거론하겠다는 자세다. 그밖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보다 구체적인 ‘약점’도 계속 이슈화시킬 태세다.
박 전 대표 측의 이 같은 전방위적 공격 배경에는 광주 토론회에서 ‘기선을 제압했다’는 자신감이 짙게 반영돼 있다. 예상과 달리 이 전 시장이 상대 후보들의 대운하 질문 공세에 구체적 답변을 내놓지 못하는 등 토론회에서 ‘허점’을 노출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앞으로 박 전 대표 측은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허점을 집중 공략해 그것을 이 전 시장의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도 문제로 공세를 확대시켜나간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캠프 한 의원은 이에 대해 “대운하 허상에 대해 일단 불이 붙었다. 이 전 시장에 대해 갈수록 국민들의 의구심이 커지면서 그에 대한 신기루 같은 경제 이미지도 많이 깨질 것이다”라며 이 전 시장 공격을 단단히 벼르고 있다.
한편 이 전 시장 캠프는 토론회 결과를 아쉽게 보고 있다. 자체 평가회에서 “1:4의 불리한 토론이었지만 여유 있게 대응해 대체로 무난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시장 스스로도 “대운하를 설명할 기회가 부족했다”고 토로했을 정도로 아쉬움이 남는 표정이다. 한 측근 의원은 “(이 전 시장이 대운하를 포함한 모든 공약을) 숙지하고 있었는데 구체적인 답변을 못한 이유를 모르겠다. 그 점이 가장 아쉽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 시장 측은 토론회 결과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도 운하 건설 공약 때문에 앞으로 계속 시달릴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초반 강경 대응으로 선회하고 있다. 이 전 시장은 “가능하면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 의문 나는 것을 서로 토의를 통해 국민에게 알릴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며 박 전 대표가 사실상 거부한 ‘맞장 토론’을 거듭 제의하면서 박 전 대표와의 ‘일전’을 통해 토론회 부진을 만회하려고 나섰다. 특히 이 전 시장측은 박 전 대표가 토론회에서 계속 “자료에 따르면...”이라는 말을 서두에 꺼내면서 자료에 의존하려는 경향도 부각시킬 예정이다. 진수희 대변인도 “남이 써준 원고로 하는 토론이 아니라면 ‘맞장 토론’을 회피할 이유가 없다. 대리인을 앞세워 정책검증을 한다며 일방적인 흠집내기에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공개토론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전 시장 측은 지금까지 운하 건설에 대해 국민들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박 전 대표 측의 이슈화 공세를 오히려 환영하고 있다. 캠프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다른 후보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될 수 없다. 일종의 환각 작용일 뿐이다. 결국은 후보 자신만의 경제 정책이나 공약 등의 콘텐츠에 의해 국민들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후보 비난이 능사가 아니다. 자신의 것을 얼마나 잘 다듬어 국민들에게 어필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정치 컨설팅을 하는 한 관계자는 “사실 한반도 대운하 건설 문제는 이 전 시장 캠프 내부에서도 완전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이 전 시장이 청계천 건설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운하 건설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향후 이 전 시장 측의 한반도 대운하 대응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라고 밝히면서 “이 전 시장 측으로서는 한반도 대운하 이슈로 일단 국민적인 관심을 끌어 자신들의 경제 공약을 차분하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운하 건설 문제에 대해 ‘꼭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경제적인 파급 효과에 대해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전 시장으로서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공약이 자칫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는 ‘재앙’을 막기 위해서라도 유연한 접근이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 홍준표 의원 | ||
홍 의원은 광주 토론회에서 한때 정치적 동반자였던 1위 주자 이 전 시장을 주 타깃으로 삼아 맹공을 펼쳐 그 배경을 두고 다양한 정치적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미 알려진 대로 홍 의원은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 전 시장이 자신을 지지해주지 않은 데 대해 깊은 배신감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여기에다 지난 5월의 경선 룰 공방에서 강재섭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교체를 주장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 ‘홍준표 의원이 당을 먹기 위한 사심 때문에 당이야 쪼개지든 말든 정치 공세만 펼치고 있다’는 비난에 대해 큰 상처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이 전 시장이 경선 룰 공방에서 양보하기로 최종 결정한 다음 날 조용히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것으로 확인된다. 그는 여행을 가기에 앞서 이 전 시장 최측근 의원의 전화를 받고 “형님, 경선 룰 공방에서 일부로부터 너무 모욕적인 말들을 들었습니다(여기에는 친 이명박 그룹의 집중적인 견제가 있었기 때문에 홍 의원이 이 전 시장에 대해 더 큰 실망감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제부터는 제가 직접 세를 모아서 홍준표 식 정치를 할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홍 의원의 그러한 ‘독기’는 결국 대선 후보 경선 참여라는 정치적 결단으로 이어졌다. 그는 광주 토론회에서 이 전 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구상에 대해 ‘식수원 오염’ 문제를 집중 제기해 이 전 시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이 전 시장도 홍 의원의 집중적인 공세에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홍 의원의 이 전 시장 공격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은 긍정적인 모습이다. 유승민 의원은 “홍 의원이 이 전 시장을 잘 알고 있고, 대통령으로서의 자질문제에 대해서도 잘 파악하고 있다”며 그의 파상 공세에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다.
정치권에서 홍준표 변수를 높게 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그가 광주 토론회를 통해 가장 점수를 많이 딴 후보로 부상하면서 앞으로 지지율 상승이 예상되고 있다는 점이다. 홍 의원 본인도 “6월 말까지 네 차례 정책토론회를 거치면 내가 5% 정도의 여론지지율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토론회에 그치지 않고 7월 검증과정에서 내 지지율이 10%를 돌파할 경우 경선 구도는 혼전 양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럴 경우 그 부담은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전 시장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이 전 시장 측이 더욱 긴장하는 이유는 홍 의원이 경선 중간에 중도 하차하고 박근혜 전 대표 지지를 전격 선언하는 경우다. 그동안 홍 의원이 보여준 이 전 시장에 대한 ‘적개심’을 생각한다면 그가 이 전 시장 지지를 선언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반면 그가 한때 박 전 대표 캠프 참여를 고려했을 정도로 ‘친박’ 성향을 보인 점을 감안하면 박 전 대표 지지로 돌아설 경우의 수가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홍 의원 측은 이에 대해 “경선 중도 하차는 없다. 양쪽 어디도 지지하지 않고 끝까지 경선 레이스를 펼쳐 홍준표만의 독자 세력을 구축할 것이 기본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한나라당 경선을 좌우할 돌발 변수는 이 전 시장 지지율의 변화 가능성이다. 사실 그의 지지율은 사상 유례 없이 장장 8개월 동안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경선 룰 공방과 광주 토론회 이후에도 지지율 변화 징후는 거의 없다. 여론 조사 전문가들도 “이 전 시장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인 후보 검증 문제도 변수가 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지지율은 단단한 편이다. 국민들은 능력 있는 경제 지도자라는 이 전 시장의 이미지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그 정도의 약점은 덮어둘 수 있다는 반응을 많이 나타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은 두 가지 점에서 취약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여권의 대선 후보가 정해지면 그를 지지하던 일부 세력들이 이탈하면서 지지율에 변화가 올 수 있다. 이 전 시장은 이런 ‘조정’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좀 더 심각한 것은 후보 검증보다 의외의 복병인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해 지지율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광주 토론회에서 운하 건설에 대해 이 전 시장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주춤한 모습을 보인 것이 향후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경우 그 문제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한 정치학자는 이에 대해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 이 전 시장이 적극 대응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이 전 시장=경제 대통령’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후보 검증은 사소하다고 치부할 수 있지만 운하 건설 같은 경제 공약은 그를 지지하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그 신뢰에 균열이 생긴다면 지지율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경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앞으로도 수많은 변수가 돌출할 것이다.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전 시장에게는 그 변수가 달가울 리 없다. 정치권에선 “이 전 시장이 부자 몸조심으로 가만히 앉아 변수에 대한 대응에만 치중하다간 자칫 큰코다칠 수 있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앞으로 박 전 대표를 비롯한 다른 후보들이 또 어떤 돌발 변수를 만들어낼지 알 수 없다. 어차피 지지율 1위인 이 전 시장으로서는 온 사방의 공격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이 1위의 숙명인 것이다. 이 전 시장의 머리에는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라는 말이 수시로 떠오를 수도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