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룹 부실이 표면화된 이후 수년째 ‘잠수’를 이 어가고 있는 장진호 전 진로회장에 대한 궁금증 이 새삼 높아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골드만삭 스에 의해 (주)진로는 남의 손에 넘어갈 운명 을 맞고 있다. | ||
그의 비극은 여기에 국한되지 않았다. (주)진로에 대한 법원의 법정관리 개시가 선언된 직후 그는 지난 7월 초 채권단으로부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엔 예금보험공사가 장 전 회장 등이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에 2천9백억원의 손실을 안겼다며 검찰에 수사의뢰를 하기도 했다.
지난 7월7일 조흥은행 등 5개 금융기관은 지난 95~96년 사이에 이뤄진 1조5천9백억원 규모의 (주)진로 분식회계 문제와 관련, 장진호 전 회장 등 당시 이사진 4명과 감사 2명을 상대로 59억5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제출했다.
채권단은 소장에서 “(주)진로가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빌려 계열사들에 지원한 뒤 이를 자사 채무가 아니라 계열사들이 (주)진로의 명의만 빌린 것처럼 분식회계를 하고 대출금 및 대지급금을 갚지 않아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장 전 회장을 덮치는 또 하나의 폭탄은 오는 8월27일 열릴 예정인 진로의 채권단 회의. 진로의 법정관리를 맡고 있는 담당 재판부에선 지난 6월 말까지 진로의 채권 신고를 받았다. 오는 8월27일 회의에선 그동안 숨겨져 있던 진로의 총체적인 부실 규모가 공개될 전망이다.
때문에 그 회의 이후 진로의 부실 규모에 따라 장부상 일치하지 않는 금액에 대해 오너였던 장 전 회장에 대한 추가 손해배상 소송이 뒤따를 소지가 많다.
게다가 4백50억원을 들여 진로의 채권 3천억원어치를 사들인 골드만삭스는 장 전 회장의 외자유치 시도에 번번이 태클을 걸더니 결국 지난 5월 법정관리신청을 해 그의 재기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골드만삭스는 진로의 자산가치가 2조원대라며 회사 매각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92년 진로의 주식 38%를 장 전 회장에게 3백억원을 받고 넘겼다는 임춘원 전 의원의 주식반환청구소송까지 겹쳤다. 임 전 의원은 채권단에 위임한 장 전 회장의 주식 8%가 자신의 것임을 증명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에 지난 87년 장 전 회장이 인수한 강남종합도매시장(현 아크리스백화점 건물 등)의 전 주인들이 “회사를 빼앗겼다”며 장 전 회장에게 소송을 걸 채비를 하고 있다.
결국 장 전 회장은 회사도 잃고, 명예도 잃고, 재산도 잃고, 사법처리까지 받아야 하는 총체적인 난국에 처한 셈이다. 그럼에도 장 전 회장은 몇년째 꼭꼭 숨어 있다. 회사가 풍비박산이 나고, 경영은 남의 손에 넘어가기 직전인데도 그는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주)진로의 대표이사권마저 벗어던진지 오래다. 지난 88년 그룹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잠깐 대표이사직을 맡다가 몇년 뒤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 경영을 넘겨준 뒤 그가 맡은 공식적인 직위는 (주)진로의 등기이사가 전부였다.
명색이 오너임에도 그는 회사 경영과 관련한 책임있는 결재라인에서 항상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회사의 경영에서 극도로 몸을 사린 반면, 정치 스캔들에서는 심심찮게 연결됐다.
오히려 최근 몇년 사이 그의 이름은 정치면에서 더 많이 보였다. 세풍사건에서도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고, 15대 대선 때 벌어진 이른바 총풍사건 때도 그의 개인 고문이라는 이색적인 명함을 가진 한 아무개씨가 그 사건의 주역 중 한 사람으로 등장하면서 그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DJ 비자금 사건이 터졌을 때도 그의 이름은 수사선상에 오르내렸다.
무엇보다도 장 전 회장의 정치스캔들을 오래도록 각인시켰던 것은 정학모씨와의 관계. 정씨는 지난 99년 LG그룹으로 옮기기 이전까지 오랫동안 진로에 몸담고 있으면서 진로건설 부사장, 진로 사장, 진로스포츠단 사장 등 회사내 핵심 요직을 거쳤다.
정씨는 목포상고를 나왔고, 경희대 체육과를 나왔다. 때문에 세간엔 그가 목포상고 출신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교 후배, 경희대 출신인 김홍일 의원의 선배로 기억된다. 물론 이 경우 그의 학맥과 지연은 정치권과의 ‘연결통로’라는 의미와 상통했다. 게다가 그가 ‘주먹 출신’이었다는 것도 화제였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정학모씨를 장 전 회장의 정치권 연결통로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장 전 회장의 이름이 정치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오르내리는 점 때문에 항간에는 장 전 회장을 가리켜 ‘정치인 노리개’라고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다.
왜 정치 스캔들에 장 전 회장은 그렇게 자주 모습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런 의문의 키는 정학모씨가 쥐고 있다는 게 장 전 회장과 거래가 있던 사람들의 공통된 말이다.
▲ 95년 신년하례회 때 장 전 회장의 밝은 얼굴(위쪽)과 불과 1년 뒤인 96년 국정감사에 출석했을 때의 굳은 표정. | ||
목포상고를 나오고 정학모씨와 같은 학번으로 경희대를 다닌 재계의 또다른 A씨는 “가진 게 없었던 장 전 회장이 정학모의 도움으로 진로 경영권을 잡았기에 정씨와 장 전 회장은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장 전 회장의 진로 경영권 접수과정에서 정씨가 ‘일등공신’이었다는 것. 이 사건은 장 전 회장이 진로그룹의 경영권을 장악했던 지난 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장 전 회장의 부친인 장학엽 전 진로 회장이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 무렵 장 전 회장은 30대 초반의 나이에 불과한 데다, 이렇다 할 경력조차 없었다. 당시 진로의 경영은 장학엽 회장의 동생인 장학섭씨의 아들인 장익룡 현 서광 회장이 맡고 있었다.
장 전 회장은 진로 주력사인 (주)진로에는 들어오지 못한 채 진로 계열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익룡 회장은 진로의 지분 상당수를 확보, 장차 진로그룹의 대통을 이을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장진호 전 회장의 경영권 도전은 이 무렵부터 시작됐다. 지난 84년 11월 (주)진로 임시주총장에서 벌어진 각목사건은 장 전 회장이 경영권에 진입하는 신호탄이었다. 각목사건을 계기로 장 전 회장은 진로 부사장에 입성했다.
이후 지분정리를 통해 사촌형인 장익룡 회장으로부터 지분을 넘겨받은 장 전 회장은 88년 1월 정기주총에서 정식으로 그룹 총수에 취임하게 된다. 바로 그 ‘84년의 각목 주총’때 도움을 준 사람이 정학모씨라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장 전 회장의 등극을 도운 B씨도 “지분확보로 도움을 줬지만 폭력 행사에 개입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진로 주변 인사들에 따르면 정학모씨와 장 전 회장의 관계는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 전 회장이 대학을 다닐 때인 70년대 초반 정학모씨가 명동에 사무실을 내고 있었고 그때부터 두 사람간 교분이 있었다는 것.
이후 지난 76년 장 전 회장이 결혼을 할 무렵 우신주방이라는 주방가구 제조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회사의 사장은 바로 정학모씨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사업적인 관계로까지 발전했던 것.
이런 둘의 관계는 장진호 전 회장의 진로 경영권 확보 쿠데타로 더욱 공고하게 다져졌다. 당시 진로는 창업자인 장학엽 회장과 동생인 장학섭씨의 공동 경영체제에 더 가까웠다.
진로의 사장도 당시 장익룡 현 서광 회장이었다. 장진호 전 회장은 당시 나이가 20대 후반으로 어린데다 장 전 회장의 친형인 장봉용 부회장 등이 버티고 있어서 진로의 경영 후계라인에서 장진호 전 회장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84년 11월 임시주총 이후 장 전 회장은 단번에 후계자 자리를 꿰찼다. 그만큼 정학모씨의 역할이 컸다는 것. 주목할 만한 것은 장 전 회장의 쿠데타가 정치권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얘기가 당시 나돌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특정 대기업의 경영변화가 있을 때 정치권에서 문제를 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진로의 경우 주류회사인 까닭에 정치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당시 시중에는 ‘영부인이 장진호의 뒤를 봐준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는 것. 이와 관련해 A씨는 “이런 소문이 나고 시끄러워지자 국세청에서 2백명이 세무조사를 나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지난 84년 문제의 주주총회가 끝난지 두어달 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세무조사는 돌연 중단됐고 진로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장진호 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기정사실화됐다. 당시 장 전 회장의 정계 스폰서로 영남권이 맹주였던 K 전 의원과 5·6공 당시 금융계 실세로 불렸던 L씨가 꼽혔다.
장 전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뒤 진로 사장으로 취임했던 J씨도 K의원이 추천한 케이스라는 것. 이와 관련 주목할 만한 증언은 임춘원 전 의원이 최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 그는 장 전 회장이 진로 회장으로 있으면서 정치권으로 “7천억~8천억원대의 돈이 흘러 들어갔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장 전 회장에게 아크리스백화점을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A씨도 “그 부동산을 담보로 장 전 회장이 금융권에서 7천5백억원을 대출받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대출받은 돈의 3분의1 정도는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두 사람의 주장 중 공통점은 진로가 그룹 사세에 걸맞지 않게 수천억원대의 돈을 정치권에 흘릴 정도로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 진로 노조원들이 지난 4월 골드만삭스의 법정관 리 신청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
지분도, 정치적인 배경도, 별다른 유산도 없이 경영권을 찾으려다 보니 정치적인 배경을 원했고 그것을 돈으로 해결했다는 얘기.
장 전 회장은 그룹회장에 취임한 직후인 지난 88년 5개 계열사였던 그룹의 몸집을 지난 91년에는 18개사로 늘렸다. 하지만 진로가 이렇게 몸집을 키웠음에도 진로그룹은 모태인 (주)진로를 능가하는 계열사가 없었다. 이 부분이 바로 진로그룹의 부실화를 초래한 결정적인 화근이었다.
현재 진로가 지고 있는 2조원 가량의 빚 중 상당 부분이 바로 이 부실 계열사로 들어갔다는 게 재계 일부의 시각이다. 이 과정에서도 특혜설이 나돌았다. 아크리스백화점과 화물터미널 부지를 담보로 은행권에서 빌린 7천5백억원에 대해서도 뒷말이 무성했다.
장 전 회장은 5백40억원에 인수한 아크리스백화점(강남종합도매시장) 등 건물 3채를 담보로 은행에서 1천억원을 빌렸다. 그리고 그 돈으로 화물트럭터미널과 남부터미널 부지 등을 사들였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진로종합유통을 만든 뒤 그 부동산을 담보로 다시 서울은행에서 6천5백억원을 빌렸다. 그 돈으로 진로건설 등 신규사업 확장에 나선 것.
진로가 아크리스백화점 등을 인수하자 재계에선 깜짝 놀랐다. 이 백화점의 위치가 남부터미널 등 강남권의 최고 요지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진로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소주공장 부지를 빼놓고는 이렇다할 부동산이 없던 상황이었다.
진로가 대형 부동산을 인수하면서 대출받은 돈의 규모는 재계 관계자들을 경악시켰다. 진로그룹의 여신액이 무려 7천억원대에 이르른 것. 이는 당시(87년 말) 재계 1위였던 삼성그룹의 총여신이 1조2천여억원이었고, 현대그룹도 8천7백억원이었던 점에 비춰보면 납득이 안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당시 재계 30위권에도 들지 못했던 진로의 대출규모가 상식 밖의 거액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한 대출이라는 얘기가 나돌 법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그 돈을 가져다가 투자한 진로 계열사가 지금 남아있는 게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대출받은 돈으로 공장을 지은 것도 아니고, 부동산을 구입해 자산으로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많은 대출금이 흔적없이 어디론가 몽땅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로와 장진호 전 회장의 미스터리다. 갖다 쓴 돈은 있지만 어디에 썼는지 흔적이 없는 것. 때문에 진로의 막대한 돈이 정치권에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에 대한 기업주 조사에서 장 전 회장은 항상 예외로 남아 있었던 부분. 금융기관 부실화를 초래한 기업주에 대한 조사에서 어떤 연유에서인지 진로는 제외됐던 게 사실이다.
지난 84년 진로의 경영권 접수에 나설 때 그의 나이는 서른둘이었다. 때문에 당시 그는 그룹을 이끌기에는 너무 나이가 어린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장 전 회장은 지난 88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사람이라 신중하지 못하지 않느냐는 평을 받을 때는 마음이 아프다. 젊다는 이유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 이런 점이 일을 해나가는 데 애로사항이 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올해 그의 나이는 쉰하나. 아무도 그를 젊다고 하지 않을 나이다. 하지만 이제 무주공산이 돼버린 진로를 노리는 세력이 너무 많고 그는 간직해야 할 비밀이 너무 많아 보인다. 그러나 그가 간직한 비밀들은 오래지 않아 세상에 모두 공개될 가능성이 높다. 실패한 경영인에 대한 사회의 끝없는 추궁이 점점 그의 심장부로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