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반기문 ‘제3의 길’ 우회행보 주목…야권 통합경선 목소리 문·안 흔든다
여기에 깔린 코드명은 ‘생존 교집합’이다. 생존 교집합 투쟁기는 차기와 차차기 대선주자 간 물고 물리는 지략 대결의 장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올인 전략’이 유일한 생존 법칙이다. 이를 통한 ‘생존 합집합’ 만들기는 대선 승리를 위한 지상과제다. 고정변수보다는 유동성이 큰 차기 대선정국에서 생존 교집합 찾기에 실패하는 대권 잠룡들은 여의주를 거머쥘 수 없다.
권력 쟁취를 위해선 하이에나 같은 짐승의 비천함도 감수해내야 한다. 때때로 각 후보 전략의 앞과 뒤가 다른 이유다. ‘모종의 거래’와 ‘위험한 승부수’로 점철된 대권 정계개편 빅뱅의 시나리오. 이 지점이 연말정국의 정계개편 그림의 핵심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하지만 반 총장의 강점이자 약점이 친박이라는 점에서 당분간 전략적 갈등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을 필두로 한 ‘친박 꽃가마’가 반 총장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구·경북(TK)과 충청권, 호남을 묶는 이른바 ‘서진전략’이 반 총장을 지역주의 프레임에 가둘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스탠더드’ 이미지를 갖춘 반 총장이 세대·지역·계층과 관계없이 고른 지지를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야권의 차기 대선 후보가 정해지는 내년 6∼7월까지 일종의 ‘프리 롤’ 역할을 수행할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반 총장 측이 1차 정착지로 제3의 길(양 극단 세력 배제)을 택한 뒤 야권 후보가 정해지면 친박과의 결합을 통한 범보수대연합으로 ‘생존 합집합’을 꾀한다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반 총장의 과제인 친박계와 비박계 간 균형의 판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 있다.
1997년(15대)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민정계의 지지를 받고 본선 무대에 올랐으나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가신그룹인 민주계 포용에 실패, 결국 정권을 헌납한 원흉으로 전락했다.
반 총장과 친박계의 ‘전략적 갈등설’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반기문 띄우기’에 나섰던 친박계가 반 총장과의 거리 두기를 통해 대선 강점을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내년 1월 대권 행보를 본격화하는 반 총장이 강연정치 등을 앞세운 ‘전국적인 국민운동체’를 매개로 현실 정치에 혐오감을 가진 계층을 오롯이 흡수하려는 포석이 깔렸다. 앞서 더불어민주당도 4·13 총선 전후로 문재인 전 대표와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정치적 사안마다 충돌하자, 정치권 안팎에선 집토끼와 산토끼를 잡기 위해 전략적 갈등을 조성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 바 있다.
반 총장과 친박계의 전략적 갈등 정황은 곳곳에서 포착됐다. 친박계의 잇따른 ‘반기문 거리 두기’와 맞물려 정치권 안팎에선 김숙 전 유엔 대사를 필두로 한 외무고시 12기 멤버 등 반 총장 측 내부에서 ‘반 총장이 친박계로 곧바로 갈 경우 될 것도 안 된다’는 기류가 형성됐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친박계의 묻지마식 ‘반기문 옹립’이 꽃가마가 아닌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새누리당 내부 역학관계도 심상치 않다. 친박계에선 개헌론을 띄우며 대선 플랜 가동에 나섰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9월 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정토론회에서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일은 없다”며 “대한민국 정치가 대대적인 정계개편, 빅뱅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연대 가능성에 관한 답변이었다.
앞서 이 대표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국민 주도의 ‘조건부 개헌론’에도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이원집정부제(분권형 개헌)를 고리로 한 ‘반기문 대통령-실세 총리’를 골자로 하는 정권 재창출 플랜을 위한 시동으로 분석된다.
반면, 비박계 내부에선 ‘반기문 견제론’을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9월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에서 반 총장을 향해 “(유엔 사무총장 기간인) 10년 동안 대한민국의 구조적 변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각을 세웠다. 친이(친이명박)계 한 관계자도 “반 총장은 아직 ‘국민 검증’이란 절차가 남았다”며 “‘대망론’의 실체는 인정하지만, 본격적인 대권 행보 이후 검증 무대를 견딜 정치 근육과 강한 권력의지가 있는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눈여겨볼 대목이다. 반 총장이 일정 기간 제3의 길을 걷는다면, 야권 및 비박(비박근혜)계 인사들의 공간인 제3 지대의 판이 넓어진다. 이 경우 한동안 이 지대에 반 총장을 비롯해 정계 복귀한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이 교집합을 형성할 수도 있다. 정 전 의장은 9월 24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김택환 전 경기대 교수 주선으로 김종인 전 대표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만나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의 제3 지대론과는 결을 달리하는 ‘비패권지대론’을 꺼냈다.
매개체는 개헌이다. 정 전 의장은 중도연합정당, 김 전 대표는 ‘친박(친박근혜)·친문(친문재인)계를 제외한 제 세력 연합체인 비패권지대를 각각 염두에 두고 있다.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의 온라인평생교육 ‘지무크(G-MOOC)’ 추진단장인 윤 전 장관은 남경필 지사와 손을 맞잡고 사실상 킹메이커로 나선 상황이다.
반 총장을 제외한 나머지 인사들이 군소 후보거나, 차차기 및 킹메이커라는 점을 감안하면 메이저리그 선수인 반 총장과 마이너리그 주자들이 헤쳐 모여를 감행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명분은 제왕적 대통령제 타파를 통한 한국 정치의 새 체제 구현이지만, 속살은 ‘권력 이합집산‘에 가깝다.
야권의 쌍두마차인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문 전 대표는 고인이 된 백남기 농민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제(특검) 도입을 요구하며 박근혜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지만, 대선 싱크탱크 조기 가동 및 민생 행보 이외 뚜렷한 반전 모멘텀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평가다. 안 전 대표도 민생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으나, 국민의당 지지도 하락 등 당 안팎의 악재에 악전고투 중이다.
특히 더민주 비문(비문재인)계 일부와 국민의당 호남파 의원들의 연결고리인 ‘통합 경선’ 논의는 야권의 두 쌍두마차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더민주 원혜영·강창일·백재현 의원과 국민의당 주승용·박주선·김동철 의원 등은 서울 여의도에서 가진 오찬회동에서 의원내각제 등 대통령 권력구조 개편이 주요 화두로 논의했지만, 일부 국민의당 의원들은 원샷 경선 등 대선 룰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교동계 막내로 분류되는 이훈 더민주 의원도 공동정부 구성을 고리로 통합 경선론을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선 통합 경선이 표면적으로는 공동정부 구성 등 DJP(김대중 전 대통령·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 연합적 성격을 띠지만, 사실상 흩어진 비노계의 결속을 노리는 전략적 카드일 수 있다고 해석한다. 이에 발맞춰 4·13 총선 뒤 ‘발전적 해체’를 한 더민주 내 ‘민주당의집권을위한모임’(민집모)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김한길 전 의원의 역할론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면서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안 전 대표 측은 싸늘한 분위기다. 안 전 대표는 “국민의당이 집권하는 게 목표”라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내부에선 ‘안철수 흔들기’의 신호탄으로 본다. 한 관계자는 “이제 시작된 게 아니겠냐”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더민주 한 관계자도 “당시 오찬회동에서 통합 경선이 폭넓게 논의된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호남파가 안 전 대표의 힘 빼기를 통해 정계개편을 통한 지각변동을 염두에 뒀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윤지상 언론인
대권 잠룡 싱크탱크 움직임 분주…여권 주자 “반기문 대항마는 바로 나” 차기 대선정국의 막이 오르면서 여야 대권잠룡들의 싱크탱크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대선 싱크탱크는 각 후보의 정책 구상을 넘어 대선 정국의 ‘전략 및 인물 구심점, 조직력’ 등을 극대화하는 선거의 요체다. 대선의 중요 변수인 ‘인물·조직·이슈’ 등을 가늠하는 잣대인 셈이다. 여권에선 2017년 대선 상수인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에 맞서 각 후보들이 저마다 자문그룹 결정 등 싱크탱크 조직 구성을 위한 잰걸음에 나섰다. 반 총장의 임기가 올해 말인 만큼, 싱크탱크 띄우기를 통해 여론몰이를 하겠다는 전략이다. 가장 광폭 행보에 나선 주자는 비박(비박근혜)계인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다. 그는 20대 국회 개원에 맞춰 ‘격차해소와 국민통합의 경제교실’을 열고 사회 양극화 및 신 성장동력 찾기에 나섰다. 정치권 안팎에선 민생 경제 등을 논의하는 모임을 넘어 차기 대선의 정책인 성장과 복지, 증세 등의 큰 줄기를 만드는 대선 캠프 기능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4·13 국회의원 총선 당시 당 대표였던 김 의원의 발 빠른 행보는 ‘선거 참패→대표직 사퇴’ 등의 데미지를 만회하기 위한 행보로 분석된다. 또 다른 비박계인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싱크탱크를 만들지 않았지만 김세연 의원이 발족한 미래입법 연구모임인 ‘어젠다 2050’에 참여,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등과 함께 정책 만들에 나섰다. 유 의원의 조력자로는 새누리당 이혜훈 의원을 비롯해 조해진·이종훈·민현주 의원 등이 꼽힌다. 친박(친박근혜)계인 정우택 의원은 ‘신 애국주의’를 핵심 가치로 하는 ‘더좋은나라전략연구소’를 서울 여의도 한 빌딩에 냈다. 신박(신박근혜)인 원유철 의원은 10월 중 ‘더강한대한민국연구원’을 출범할 계획이다. 이 밖에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이명박(MB) 정부 때 비서관이었던 이성권 전 의원 등과 공조행보에 나섰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종로구에 ‘공생 연구소’를 개설했다. 시대정신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야권 대권주자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최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싱크탱크를 조기에 가동키로 했다. 연말 내지 내년 초 출범이 유력했지만, 추석 연휴 이후 대권 시계가 빨라진 만큼 이르면 10월 중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담쟁이 포럼’ 시즌 2의 핵심은 싱크탱크와 외곽조직의 기능의 이원화다. 일원화했던 시즌1을 탈피, 정책 개발과 선거 전략의 분리를 통해 최상의 조직을 운영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는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에서 과학기술·교육·창업혁명에서 점차 이슈를 넓혀 격차해소 및 평화통일 구상 등에 매진할 방침이다. 최상용 이사장과 박원암 소장은 9월 28일 싱크탱크 2기 출범식에서 공식 취임했다. 박인복·박왕규·김태일 부소장 등도 핵심 멤버다. 사실상 정계복귀를 선언한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은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을 가동, 오는 11월께 10주년 행사를 열고 본격적인 대권행보에 나설 예정이다. 김부겸 더민주 의원은 30∼40명가량의 자문교수단이 함께하는 모임을 구축했다. 야권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9월 10일 창립한 ‘희망새물결’의 전국조직화,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등의 조직 재정비에 각각 나섰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정기국회는 차기 대선의 전초전”이라며 “여야 대권 잠룡들도 저마다 존재감 부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