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깡에 낙하산 인사까지···화상경마장 비자금 수사는 덤”
현명관 한국마사회장. 연합뉴스
최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한국마사회 박기성 본부장 등 5명을 업무상 배임죄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박 본부장 등은 용산 화상경마장 찬성 여론을 조성하고 반대집회에 맞서 찬성집회를 개최하는 방법으로 용산 화상경마장 개장을 강행하기 위해 TF팀을 구성하는 등 조직적으로 불법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법인카드로 ‘카드깡(카드로 돈을 결제한 후 현금으로 돌려받는 행위)’을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마사회 명의 법인카드로 카드깡을 해 현금으로 되돌려 받은 부분 △찬성집회 주도자 외상식비 대납 △찬성집회 동원인력 일당 10만 원 지급 △갑을 관계에 있는 용역업체에 주민들을 위장 취업시켜 찬성집회 참석 △주민명의로 찬성 현수막 게시 △현수막 비용 과다 청구해서 현금으로 되돌려 받는 행위 △물품구매과정에서 허위 견적서로 물품대금 부풀리기 및 쪼개기 △반대 측 주민 폭행 및 벌금 대납 등의 범죄 혐의가 드러났다.
물품대금 조작으로 이들이 2013년 8월부터 2014년 1월까지 A 대표(업무상 배임, 기소의견 송치)가 운영하는 업체에 지불한 금액은 7393만 원에 달한다. 또한 박 본부장 등이 카드깡이나 위장취업 등으로 찬성 시위꾼들에게 지급한 돈은 2014년 7월부터 12월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특정된 금액만 1573만 원이 넘는다.
경찰관계자는 “찬성 집회에 한번 동원될 때마다 일당 10만 원씩 지급했고, 이는 수년 동안 계속된 일이라 총 지급액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카드깡 수법은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불법행위다.
박 본부장은 지난 5월 임기가 만료됐지만, 임기가 연장된 상태다. 삼성 출신 마사회 상임이사로 같은 삼성 출신 현 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현 회장은 삼성물산 회장과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지낸 경력으로 마사회 회장으로 등극했다. 현 회장은 취임 후 마사회 기부금 및 임직원 성금으로 사회공헌 사업을 하기 위해 설립한 ‘렛츠런재단’의 이사 7명 중 2명을 삼성 출신으로 포진시키고 임기를 연장한 상태다.
전경련 전무 출신인 이규황, CJ제일제당 고문을 지낸 임무창 등 2명의 비상임이사 임기도 연장됐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제기했던 삼성과 전경련 편중 인사에 대해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되레 삼성과 전경련 출신 임원들의 임기를 연장한 셈이다. 반면 지난 5월 마사회 공채 출신인 임성한 전 경영관리본부장(상임이사)은 2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이에 마사회 이익을 위해 공기업을 사기업화시키는 것에 대한 논란도 끊이질 않고 있다.
마사회가 현 회장의 힘을 믿고 국무총리, 감사원, 권익위, 법제처, 농식품부 등 정부 부처의 지시나 주의 처분을 모두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반대 농성 1000일째를 앞둔 용산 화상경마장 이전 갈등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화상경마장 개장에 관한 주민들의 반대가 거셌던 2014년 6월 권익위는 농식품부 장관과 협의해 개장 철회 의견을 표명했다. 하지만 마사회는 권익위 의결 12일 만인 6월 28일 화상경마장을 임시 개장했다. 주민들의 반발이 더 거세지자 당시 정홍원 국무총리가 진화에 나서 마사회가 반대 주민들과 대화해 전향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마사회는 대책 강구조차 없이 2015년 5월 발권을 개시했다. 당시 총리 자리가 공석인 상태였던 점은 아이러니하다.
용산화상경마장추방대책위와 참여연대가 화상경마장 반대시위 900일을 맞아 지난 2015년 10월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원효로 화상경마장 건물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연합뉴스
이뿐만이 아니다. 장외발매소를 확대할 경우 농식품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마사회는 농식품부 장관 승인 없이 23개 장외발매소의 비관람 시설 바닥면적 4633㎡를 객장을 비롯한 관람 시설로 무단 변경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또한, 감사원은 지난 4월 “입장료 외에 시설 이용료를 받으면 안 된다”며 마사회에 주의 처분을 내렸다. 법제처 역시 이 사안에 대해 지난해 6월과 지난 8월 두 차례에 걸쳐 같은 유권해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마사회는 “검토하고 있다”는 답변만 내놓은 채 입장료의 최대 10배까지 시설 이용료를 받고 있는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당시 찬성 집회에는 마사회 탁구부와 유도부, 본사와 지사 직원들이 버스로 매일 동원되다시피 했다”며 “이는 본부장 차원에서 결정하기 어려운 일로 마사회 회장의 결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주장했다. 박 본부장이 현 회장의 최측근이란 점에서 현 회장의 지시 없이 독단적으로 추진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진 의원은 지난해 10월 마사회가 카드깡을 통해 조성한 돈으로 주민을 동원한 사례, 주민 명의로 찬성 현수막을 게시한 사례 등의 증거자료를 제보받아 서울청에 수사를 의뢰한 바 있다.
진 의원은 “용산 주민들의 반대 여론을 덮기 위해 불법적인 비자금으로 주민들을 이간질한 마사회가 진정 주민들께 사죄하는 방안은 지금의 용산 화상경마장을 폐쇄하는 길”이라며 “마사회 불법 비자금 조성을 누가 지시했는지 수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