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아리송…불안한 기록자들 ‘기록자카페’ 만들어 정보 공유
영화 <소셜포비아> 스틸컷.
얼마 전 경찰수험생 온라인 커뮤니티 ‘경시모(경찰시험 준비생들의 모임)’에는 “기록자들 많이 합격했다”며 “죄명 관계없이 수사기록은 안 본다”는 내용의 축하글이 올라왔다. 이에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썩은 사과가 대량 유입됐다” “법 집행 기관에 기록자는 안된다”는 부정적 의견과 “사시나 행시 등은 순경보다 높은 직위임에도 불구하고 불이익이 없지 않느냐” “사춘기 때 비행은 상습이 아닌 이상 평생 낙인찍을 필요는 없다”는 옹호의견으로 나뉜 것이다.
수험생 박 아무개 씨(23)는 “지인 중 모욕죄로 벌금형을 받았던 사람도 최종합격했다. 과거에는 조금만 흠이 있어도 채용하지 않았으나, 요즘은 지원자도 많고 채용인원도 많아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다만 여경의 경우에는 워낙 경쟁률이 높기 때문에 기록자 수험생도, 기록자 합격자도 거의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경찰 수험생들 사이에서 통칭하는 ‘기록자’란 수험생 가운데 과거 범죄기록이 있거나 수사기록이 있는 이들을 뜻하는 말이다. 경찰공무원법 제7조에 따르면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과 ‘자격정지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고 그 유예 기간에 있는 사람’은 경찰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 기록자의 경우는 경찰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있으나 경찰공무원법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수사받은 전력이 남아있는 이들이다.
문제는 기록자의 ‘기록’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없는 탓에 수험생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수험생은 “기록자라는 것이 말 그대로 어떠한 기록도 없어야 하는 건지 궁금하다. 내가 피해자이거나 누굴 신고하는 것도 안 되는 것이냐. 경찰합격 전까지는 불의를 보고도 신고나 제재를 못 하겠다”는 우려의 글을 남겼다. 또 다른 수험생은 “피해자만 되면 상관없으나 괜히 엮이다 보면 상대방에서 거짓말을 하고 갑자기 쌍방 폭행으로 이어지고 그러면 골치 아파진다. 그런 상황 자체를 아예 피하는 게 좋다”는 답변을 했다.
경찰 수험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커뮤니티에서는 ‘기록자’에 대한 찬반 논의가 뜨겁다.
경찰시험 기록자 논란은 지난 2011년부터 시작됐다. 2011년 필기, 체력시험에서 상위권 점수를 받았으나 면접에서 불합격한 한 수험생이 “과거 도로교통법 위반 전력으로 인한 불이익”이라며 행정심판을 청구한 것이다. 이에 국가인권위는 경찰 채용 면접시험 시 신원조사 결과 활용 관련 제도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인권위 심의 결과 수사 전력 등과 면접시험 탈락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는 어려웠으나, 경찰청장이 경찰공무원 채용 면접시험 시 심사위원들에게 응시자의 범죄 경력과 수사 전력 등이 포함된 신원조사 결과를 제공한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권고문을 통해 “현행 경찰공무원법상 임용결격사유보다 낮은 범죄 경력이나 수사받은 전력이 있는 응시자들에게 면접시험에서 불리한 환경을 조성한 것은 부당하므로 시정을 위해 경찰채용 면접심사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권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찰 면접시험에서는 응시자의 신원조사 결과를 심사·평가하고 있다. 경찰공무원임용령 시행규칙에는 ‘채용 담당 경찰공무원 1명을 채용심사관으로 두고 채용심사관은 응시자의 제출서류, 신원조사 결과 등 시험 관련 모든 자료를 심사·평가해 종합의견서를 작성해 면접위원에게 제공한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이에 경찰 관계자는 “현재 면접을 앞둔 수험생에 한해 신원조회를 시행하는데, 당사자의 국가관이나 개인 신원에 대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본다. 수사기록과 범죄기록은 확인하지 않는다. 범죄 경력의 경우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분들은 서류전형에 이미 확인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신원조회를 통해 평가하는 부분은 수험생의 대학생활, 사회생활 등의 활동내용이다. 이를 전반적으로 확인해 인성이나 사회성 등을 평가한다. 다만, 면접은 주관적인 평가이므로 구체적으로 정해진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기록자 수험생들은 ‘기록자카페’에서 정보를 공유하며 수험생활을 한다.
경찰수험생 대부분은 막연히 ‘기록자’의 기록이 면접 점수와 최종 합불 여부에 영향을 준다고 알고 있으나, 그 반영 과정이나 정도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기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기록자 수험생들은 ‘기록자카페’에 모여들기도 한다. 기록자 수험생들은 다른 수험생들에 비해 합격률이 저조할 것이라는 추측 때문에 차별대우를 받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한 기록자 수험생은 “경찰 시험 준비생 스터디에 들어갔더니,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아도 경쟁자 한 명 제쳤다는 분위기더라. 앞에서는 ‘형님’ 해도 뒤에서는 ‘기록자님’으로 불릴 것이란 것을 나도 안다”고 말했다. 기록자 수험생들은 기록자카페에서 사연을 공유하고 위로의 말을 주고받으며 수험생활을 한다. 합격한 기록자들은 합격수기를, 불합격한 기록자들은 불합격수기를 올리는 게시판도 있다.
본인을 기록자카페 회원이라고 밝힌 한 수험생은 “기록자카페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가입한 적 있다. 사연을 적는 게시판에는 대부분 본인의 간단한 신상과 기록자가 된 과정을 적어 놨더라. 무면허, 음주운전, 사이버모욕, 폭행, 상해 등이 있었다. 음주운전 사실을 이실직고한 글이 가장 많더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