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나라’ 평등을 이야기하다
한줄기 빛을 움켜쥐고
맨발로 가는 이사도라
누구를 찾아 걸어가나
‘맨발의 이사도라’. 통기타 시절 한 여가수가 부른 노래귀절입니다. 미국인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20세기 초, 한 여인의 춤이 유럽의 예술계를 뒤흔들었습니다. 찬란한 무대장치도 없고 몸에 달라붙는 무용복도, 토슈즈도 없는 춤. 맨발에 헐렁한 드레스를 걸친 무용수의 춤은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춤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느끼고 절절한 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현대무용이 등장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무용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미얀마 최대의 수도원 마하간다용 짜웅의 대중공양. 10시에 1500명이 넘는 스님들이 맨발로 걸어들어온다. 어린 사미승의 행렬도 장엄하다.
우선 맨발로 고행한 붓다처럼 사원을 참배하는 사람도 맨발이어야 한다는 계율을 지킵니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참배한다는, 역사적으로 오랜 관습입니다. 이것을 지키지 않은 영국인들을 잡아넣어 전쟁의 빌미를 주기도 했습니다. 가끔 외국 귀빈들이 구두와 양말을 벗지 않으려고 머뭇거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외는 없습니다. 맨발에는 또 평등하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사실 다같이 맨발이 되면 편합니다.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다 사라지고 그냥 치장 없는 ‘맨발의 인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맨발로 다니는 게 좋긴 합니다.
양곤 다운타운 주식거래소. 현지 방송국에서 취재를 하고 있다.
한편 미얀마 사람들에겐 낯선 게 많습니다. 한국사람들이 바둑을 두는 것도 처음 보는 것입니다. 주식이나 은행도 잘 이용하지 않는 편입니다. 약속을 잘 지키고 인사를 잘하는 데도 낯섭니다. 카지노 경마장 성인오락실 등 사행산업도 이 나라는 없으니 드라마를 봐도 무척 낯선 것들입니다. 저게 뭐하는 데냐고 물어봅니다. 다운타운 주식거래소는 최근 들어 하나가 추가되어 3개 기업이 상장을 했지만 서민들은 주식을 잘 모릅니다. 게다가 외국인은 아직 거래가 안됩니다. 은행은 요즘에야 월말에 북적이지만 아직 거래하지 않는 서민들이 많습니다. 은행에 가보면 직원 절반이 마스크를 쓰고 돈을 셉니다. 현금거래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축이자가 연 10%나 되는데 돈을 벌면 땅이나 금을 많이 삽니다.
시골이 고향인 직장인 청년들이 한 달에 한 번 휴가를 냅니다. 먼 고향에 버스를 타고 가 월급을 부모님께 맡기는 걸 보면 참 신기합니다. 때로는 엄마들이 도회지로 오기도 합니다. 그만큼 현금거래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전에 은행이 망해 돈을 돌려받지 못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아직은 낯선 것들입니다. 하지만 한국계 기업에 들어가면 인사도 잘하고 약속도 잘 지킵니다. 한국인들은 이게 안되면 정말 큰일이 나니까요. 이곳 미얀마에도 한국인들은 골프, 여행, 자전거트레킹, 바둑 등 취미를 즐깁니다. 최근엔 바둑동호회도 생겼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전체 회원들이 만나 바둑을 둡니다.
미얀마인들에게 낯선 바둑 게임. 필자가 가르친 대학생과 중학생이 맞붙었다.
양곤에 와서 제가 처음 학생들에게 취미로 가르친 것이 바둑입니다. 여긴 학생들의 취미생활이 별로 없습니다. 맨발로 공을 차거나 드라마를 보는 게 고작입니다. 재능이 뛰어난 학생도 있지만 독서, 그림, 악기, 스포츠에는 비용이 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바둑은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저는 아마 3단쯤 되는데 같이 둘 사람이 없어 상대를 키우기 위해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알까기만 해서 알이 다 깨지기만 합니다. 두 학생이 취미를 붙였지만 아직 9점을 놓고 200집 이상을 지니 까마득합니다. 바둑은 창의력과 수학적인 머리를 키우는 덴 그만인데 도통 배우질 않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익숙한 것들과 자꾸 이별을 합니다. 이 나라 사람들에게도 낯선 것들이 밀려듭니다. 하지만 폭우 속에서 여전히 맨발로 걷는 풍경을 바라봅니다. 우기가 끝나는 계절, 맨발로 춤을 추던 이사도라 던컨이 생각납니다. 그녀는 늘 긴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다녔습니다. 50회 생일을 앞둔 어느 날. 스포츠카에 올라 시동을 걸고 차가 움직이는 순간. 길게 늘어뜨린 스카프 끝자락이 자동차 뒷바퀴에 걸려 휘감기게 됩니다. 그녀의 목은 꺾이고 말았습니다. 지독히 불행한 일생, 자유롭던 영혼이었던 그녀가 평소에 남긴 말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고통받게 놔두는 한, 이 세상엔 참된 사랑이 없습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