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급부상한 박주영은 아직 열아홉 살의 어린 나이지만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속이 꽉찬 느낌을 갖게 하는 ‘당찬’ 청년이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인터뷰를 너무 많이 한 취재원을 앞에 두고 또다시 반복되는 질문을 해야 하는 기자는 취재원만큼 괴로울 따름이다. 그러나 한 주 동안 인터뷰의 홍수에 살다가 막 빠져나가려는 박주영은 섭외 과정에서 다소 가시가 생긴 기자의 마음을 풀어주고도 남을 만큼 솔직했고 쿨했으며 겸손했다. 그러나 역시 85년생보다는 68년생 황선홍이나 홍명보를 인터뷰하는 게 훨씬 편하다는 걸 새삼 절감한 데이트였다.
먼저 아시아청소년대회 이후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애정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물었다. 박주영이 당찬 신세대라는 사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기대할 만한 대답들이 이어진다.
“선배들도 이런 과정을 거쳤잖아요. 그런 걸 많이 봐서 그런지 지금 이렇다고 해서 들뜨거나 막 행복하거나 그렇진 않아요. 분위기에 붕 떴다가 안 좋은 꼴을 겪으면 나만 손해잖아요.”
박주영은 청소년대회를 위해 출국할 때와 귀국할 당시의 상황이 하늘과 땅 차이였다며 목소리 톤을 한 단계 높인다.
“출국할 때 공항에 아무도 안 나왔어요. 전 거기서(말레이시아) 우리나라 기자를 본 적이 없어요. 역대 대회 중 이번 대회에 언론의 관심이 가장 저조했다고 그러더라구요. 우승컵을 안고 귀국하니 공항에 정말 많이 나오셨대요. 물론 기분은 좋고 감사하기도 하지만 관심은 똑같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들쭉날쭉하면 지금 한창 자라는 선수들, 막 헷갈려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산 일주일 동안 잠시 우쭐해지거나 자만에 빠진 적이 없었을까. 아무리 마인드 컨트롤이 훌륭한 선수라고 해도 열아홉 살의 나이는 너무 어려 보이기만 했다.
“‘내가 최고다’라고 생각하고 그런 오만에 빠지면 자만해질 것도 같더라구요.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봐요. 전 아직 멀었는걸요 뭐.”
박주영을 만나기 전 그동안 언론에 소개된 인터뷰 기사를 스크랩하며 공통된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말주변이 없다는 것. 그러나 직접 만나 본 박주영은 예상외로 말을 잘했다. 인터뷰를 자주하다보니 저절로 훈련이 된 모양이다.
“매번 비슷한 질문을 받다보니 말이 술술 나오더라구요. 근데 지금은 좀 달라요. 제가 말을 버벅댈 때는 처음 들어보는 질문일 때예요. 저 지금 막 버벅거리죠?”
농담을 던져놓고 활짝 웃는 모습이 순박하고 귀엽기만 하다. ‘순수 청년’이란 수식어가 가식은 아닌 것 같다. IQ 얘기를 꺼냈다. 145~150을 오락가락하는 IQ의 진실이 궁금했다.
“전 150이 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휴, IQ 높다고 공부 잘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상관이에요. 중학교 1학년 때 IQ테스트를 했는데 전교생 중 제가 1등이었대요. 그후론 그 사실을 잊어버렸어요. 축구와 IQ와는 별로 상관이 없잖아요. 아 참. 이런 건 있어요. 잔머리를 잘 굴리거든요. 경기를 하다가 예측 상황을 빨리빨리 캐치해요. 상대 수비의 움직임이라든가, 드리블할 때 벌어질 그림들이 상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런 걸 보면 머리가 좋은 것도 같고….”
‘범생이’의 전형적인 이미지라 노랗게 물들인 머리와 왼쪽 귀의 십자가 귀고리 등이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다. 말투와 얼굴 생김새는 보수적인 경상도 사나이의 전형인데 ‘액세서리’들은 압구정동에 간다해도 크게 어색하거나 쑥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아, 이 머리요? 조민국 감독님 사모님이 멋 좀 부리라고 하시며 유명하다는 강남쪽 미용실에 데려가시곤 했어요. 제가 무슨 재주로 그런 데 가서 머리를 하겠어요. 머리만 멋있으면 뭐해요. 주체할 수 없는 여드름 때문에 폼이 안 사는데. 그렇다고 크게 고민은 안 해요. 허락받지 않고 마음대로 나왔다면 지 맘대로 또 들어가겠죠. 치료는 안 받아봤어요. 치료 받을 시간 있음 공 한 번 더 찼을 거예요.”
박주영이란 이름 석자가 축구팬들에게 각인되게 한 아시아청소년대회 중국과의 결승전을 끄집어냈다. 중국 수비수들을 여러 명 제치고 드리블해나가는 장면이 압권이었다고 말하자 그런 점에서 중국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며 이렇게 소감을 말한다.
“운이 좋았죠. 중국 선수들이 몸을 막 날려주는 바람에 계속 드리블해 나갈 수 있었으니까요. 큰 동작으로 태클을 걸면 수습이 안되는데 잔동작은 금세 쫓아오거든요. 중국애들이 큰 동작으로 절 막아줘 그만큼 치고나갈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됐어요.”
“한 50 대 50 정도? 더 쓰라구요? 하하. 그래도 50 대 50이에요.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것은 솔직히 말해서 운이 많이 따른 거라 아무리 더 쓰라고 해도 이렇게밖에 말할 수가 없어요.”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냉정했다. 주위에서 자신을 띄우기에 여념이 없는 데도 박주영은 그 분위기에 절대 ‘무임승차’하지 않으려 했다.
“너무 심하게 ‘오버’하시는 거 아니예요? 어떻게 제가 차범근 선배님(고려대 선후배 사이)과 비교될 수가 있겠어요. 그리고 ‘아시아의 마라도나’는 또 뭐예요? 처음 그 기사를 보고 어찌나 황당하던지. 마라도나가 웃겠어요. 자꾸 기사감을 위해 그런 식으로 절 연결시키면 곤란해요. 제가 왜 자꾸 운이 좋았다고 얘기하느냐 하면 이번 대회에서 골 넣은 숫자보다 날린 횟수가 두 배 이상은 더 될 걸요? 즉 골이 들어가서 조용한 거지 만약 골을 성공시키지 못했더라면 또 골 결정력 부족 운운하며 다들 뭐라 하셨을 거예요.”
지난 13일 레바논과의 월드컵 예선전을 주의 깊게 시청했다는 박주영은 숱한 골 찬스를 살리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대표팀 선배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며 이런 이야기를 곁들였다.
“저도 뛰어봐서 아는데 한두 번 결정적인 슛 찬스를 날리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그게 계속 반복되면 공이 무서워져요. 또 날릴까봐 두려운 거죠. 뛰어보지 않고는 그 심정 모를 거예요. 한마디로 돌기 직전이라니까요.”
얼마전 유럽 코치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황선홍이 “요즘 후배들은 태극마크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고 전하자 ‘요즘 선수’ 박주영은 ‘그렇긴 하다’며 의외로 순순히 시인을 했다.
“이전 선배님들보다 요즘 선수들이 갖는 태극마크에 대한 사명감이 떨어진 건 사실이에요. 예전엔 프로팀도 많지 않았고 축구 외적인 데 눈 돌릴 환경이 지금처럼 다양하지가 않았잖아요. 외국에 진출하는 선수들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고. 굳이 대표팀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성공할 수 있는 기회는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저야 언제든지 불러만 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죠.”
박주영은 고3 때 청소년대표팀에 처음으로 발탁된 뒤 2003년 10월 제주도에서 치러진 ‘민족평화통일축전’ 행사에 참가, 북한과 첫 경기를 치렀다. 당시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애국가에 감동받고 다리가 후둘 거릴 정도로 떨렸던 기억이 새롭단다. 지금도 경기장에서 듣는 애국가는 박주영에게 묘한 긴장감을 안겨준다고.
숱한 프로팀의 ‘러브콜’을 무시하고 고려대 진학을 택한 박주영. 어차피 축구선수로 성공하려면 대학보단 하루 빨리 프로팀 진출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는지를 떠봤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확고하다.
“부모님께서 돈에 구애받지 않으셨어요. 고졸 출신으로선 사회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하셨고 저 또한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죠. 수업엔 거의 들어가지 못하지만 사회에서 ‘간판’은 무시할 수 없잖아요. 대학 축구의 최고 명문팀이라고 하는 고려대 진학만큼은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박주영의 아버지는 택시 기사였다. 지금은 모든 일을 놓고 축구장을 쫓아다니며 아들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지만 넉넉지 않았던 경제 사정으로 봤을 땐 박주영 가족의 선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주영에겐 앞으로 할 일이 수두룩하다. 내년 6월 세계청소년대회, 2006카타르아시안게임과 베이징올림픽, 독일월드컵까지 청소년, 올림픽, 성인 대표팀을 넘나들며 정신없이 보따리를 쌌다 풀었다를 반복해야 할 형편이다. 벌써부터 축구계 안팎에선 박주영을 너무 혹사시키지 말고 선수의 장래를 위해 보호해 줘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불러주느냐, 마느냐는 제가 걱정할 게 아니죠. 어느 대표팀에서든 불러주시면 가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죠. 콜을 했는데 몸 아낀다고 거절하고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그래서도 안되고. 전 스타가 아직 스타가 아녜요. 재고 따지고 할 위치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해외진출과 관련된 속마음을 알고 싶었다. 최종 목표가 빅리그 진출이라고 하길래 ‘직항로’를 택할 것이냐, 아님 ‘중간 기착지’를 마련할 것인지 재차 물었다.
“‘방법은 여러 가지이고 아직 구체적인 건 결정된 게 없다’가 정답입니다. 신중하게 생각할 거예요. 어른들이 알아서 잘 해결하시겠죠. 전 축구만 할 거예요. 열심히 뛰다보면 좋은 결과도 얻는 게 아닐까요?”
처음엔 다소 어눌한 이미지였지만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만만한 친구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도 소신이 뚜렷하고 목표의식이 분명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슬쩍 찔러봤다.
“여자친구 있어요?” “어휴, 소개나 해주시고 그런 질문 하세요.” 그래서 “좋은 여자 있음 소개시켜 줄까요?” 했더니 “아뇨. 여자친구 사귈 시간이 없어요”라고 답한다.
또 한방 먹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