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중앙일보 | ||
그의 주미 대사 내정을 두고 일부에서는 새로운 ‘권언 유착’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실용주의적 외교관과 인재를 골고루 중용하려는 ‘탕평책’이 돋보인다는 견해도 나온다. 그런데 또 한편에서는 드디어 홍 회장이 대권으로 가는 대장정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내리는 사람도 있다.
사실 홍 회장은 한국 사회의 주류 중에서도 주류에 속하는 ‘로열패밀리’ 출신이다. 부친 홍진기씨와 장인 신직수씨 모두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이어오며 법무부 장관을 지낸 바 있다. 그의 매형은 재계 1인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다. 그 또한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언론사의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사회의 보수 기득권층과 힘겨운 개혁 싸움을 해오며 결코 그들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왜 노 대통령이 주류 중의 주류로 통하는 홍 회장에게 주미대사라는 중책을 부여한 것일까. 홍석현 회장의 잠재력과 ‘과거’를 통해 노 대통령 깜짝 인사의 전말을 추적해보았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은 뉴스를 뒤쫓는 사람이지만 언제나 그 자신이 뉴스메이커이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크게 세 번 언론에 모습을 나타냈는데 그때마다 그 뉴스의 행간에는 ‘대권 도전’이라는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홍 회장의 첫 번째 ‘언론 데뷔’는 지난 97년이었다. 당시 중앙일보 사장이었던 홍 회장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중앙일보 지면이 당시 ‘다크호스’로 등장했던 이인제 후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이회창 대 김대중 후보의 양자 대결구도로 몰고 가 간접적으로 이회창 후보를 도왔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국민신당측은 홍 회장이 “정치부 기자들로 하여금 이회창 후보를 위한 전략보고서를 만들게 해 홍 회장이 이회창 후보측에 직접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흐지부지됐지만, 국민신당측은 ‘외부로 유출된 문건’을 내세우며 홍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당시 일부에서는 중앙일보가 소송까지 당하면서 이회창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했던 까닭이 홍 회장의 ‘큰 꿈’ 때문이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홍석현 회장이 총리로서 화려하게 정치권에 데뷔하는 그럴듯한 시나리오였다. 홍 회장과 경기고 동문으로서 그를 잘 알고 있는 A씨는 “홍 회장이 끊임없이 총리나 관계 진입을 시도했던 것으로 안다. 그리고 상당히 야망이 큰 사람이었다. 지난 97년 대선 때는 직접적으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정치적 꿈을 위해 그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때 중앙일보 관계자들은 홍 회장이 이 후보를 지지했다는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중앙일보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건 사실이 아니며 홍 회장이 경기고 출신이라 이회창 후보진영의 경기고 출신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개인적 차원에서 도와줬을 수는 있을 것”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사실 홍 회장은 지난 97년 대선 과정에서 경기고 출신 언론인 모임인 ‘화동클럽’에서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회창 후보가 대권도전에 실패하면서 홍 회장에게도 차가운 시련이 닥쳐왔다. 홍 회장은 대선이 끝나고 2년 뒤인 지난 99년 10월 보광그룹 탈세사건으로 구속되기에 이른 것이다. 당시 이회창 후보 캠프에서 일했던 B씨는 이에 대해 “홍 회장은 대선 당시 이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했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에게 미운 털이 박혀 보복을 당해 감옥을 갔다온 것이다. 그 뒤 홍 회장은 권력의 무서운 맛을 절감하고 굉장히 몸조심을 해왔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그 뒤부터 일체의 국내 정치활동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국제통’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그리고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2002년 5월 세계신문협회 회장에 뽑혔다.
홍 회장이 두 번째로 언론에 대서특필된 것은 올해 2월에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의 특별대담 때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1주년 연쇄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대담에서 청와대는 홍 회장을 국가 원수급으로 예우해 많은 뒷말을 낳았다. 청와대는 당시 홍 회장의 차량이 청와대 정문을 검문 절차 없이 자유롭게 통과하도록 조치한 데 이어 방문자의 신원을 표시할 수 있게 가슴에 부착하는 비표도 달지 않도록 배려했다. 또한 노 대통령과 홍 회장의 특별회담이 진행된 청와대 경내의 상춘재도 대통령이 외국 정상들과의 정상회담 때 이용하는 곳으로 알려진다.
이런 파격적인 예우와 3시간35분 동안 진행된 대담 내용 등을 근거로 세간에서는 홍 회장의 ‘대망론’이 다시 회자되기도 했다. 특히 일부에서는 “홍 회장이 노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 회담을 하는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그가 노 대통령과 같은 반열에 선 정치인이라는 부수적인 효과를 거두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달 뒤 홍 회장의 주미대사 내정 사실이 ‘터지자’ 세 번째로 ‘홍석현 대망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앙일보측에서는 대망설을 강력하게 부정하면서 ‘홍 회장이 주미대사 경력을 발판으로 유엔 사무총장을 꿈꾸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차기 사무총장 선거는 2년 후에나 있고 그 사이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총장 출마론을 내세우는 것은 그리 정밀하지 못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할 수 있다.
▲ 지난 2월14일 노무현 대통령과 홍석현 회장이 주로 정상회담 때 이용되는 청와대 상춘재에서 3시간 35분간 특별대담을 가졌다. 청와대측의 파격적인 예우로 인해 세간에는 ‘홍 회장 대망론’이 회자됐다. | ||
그런데 어찌 보면 홍석현 회장이 차기 대권을 꿈꾸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그의 집안 배경이나 개인 경력은 화려하다. 여기서 잠시 홍 회장의 두꺼운 이력서를 펼쳐보자.
홍 회장은 유민 홍진기씨와 김윤남 여사 사이의 4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서울 출생으로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뒤 미국 명문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탠퍼드대는 김재익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서상목 전 의원 등 쟁쟁한 수재들이 졸업한 명문이다. 홍 회장은 스탠퍼드 졸업 뒤 세계은행에 영 프로페셔널(30세 이전에 세계은행에 입사하는 소장학자를 지칭하는 말) 자격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곳에서 7년 동안 일하면서 국제감각과 경제이론을 터득해 나갔다. 그리고 귀국해서 83년부터 85년까지 전두환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강경식씨 밑에서 보좌관 생활을 하기도 했다. 홍 회장은 이때 청와대의 권력 메커니즘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뒤 94년까지 삼성코닝 부사장으로 재직하다가 중앙일보 부사장에 전격 취임하게 되는 것이다.
홍 회장이 중앙일보에 입성한 배경에는 이건희 회장의 ‘배려’가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이 회장은 그 동안 침체를 면치 못하던 중앙일보를 1등 신문으로 만들기 위해 홍 회장에게 전권을 맡겼다는 것이다. 홍 회장은 중앙일보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물갈이 인사’를 단행해 자신의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삼성점령군이 중앙일보를 접수했다’는 말이 나오는 등 진통을 겪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홍 회장은 사회부 기자들과 웃통을 벗고 폭탄주를 마시는 등 화합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홍 회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중앙일보의 한 관계자는 홍 회장에 대해 “어떤 모임에서 가끔 자신의 지식을 남들과 비교해 ‘왜 그것밖에 알지 못하느냐’식의 이야기로 아랫사람들에게 핀잔을 주기도 해 무안해진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지금까지 국내 최초로 섹션신문, 가로쓰기 편집, 가판제 폐지 등 많은 선구자적인 시험들을 해오며 중앙일보를 1등 신문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그가 참여정부의 주미대사로 나서게 되면서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는 사람도 많다. 중앙일보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홍 회장이 주미대사로 내정되면서 신문 편집에서 어려운 점이 많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권력 비판에 대한 예봉이 무뎌질 가능성도 있고 객관성 시비에도 휘말리는 등 장기적으로 경쟁력 저하를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홍 회장이 이번 기회를 통해 여권의 차기 주자 반열에 단숨에 오르는 잠재력을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그것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상존한다. 홍 회장과 경기고 동문인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과거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실패에서 보듯이 그도 만약 대권에 도전한다면 똑 같은 우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삼성이라는 거대한 조직과 중앙일보의 직간접 지원, 그리고 국제적 경력 등을 믿고 큰 정치인으로 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것이 그 사람을 큰 실패로 몰아가는 단초가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그는 또한 “홍 회장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순탄한 길을 걸어왔고 이병철 홍진기씨와 매형(이건희 회장) 등의 후광에 힘입어 언론사의 사주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대권이라는 큰 일에 대해 위험부담을 안고 치고 나갈 수 있는 그런 자질은 없는 것 같다. 또한 정치권에 자신을 지지하는 세가 전혀 없다는 것도 대권도전의 험난함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한편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노무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왔던 신문들은 홍 회장의 주미대사 내정에 대해 경향신문 한겨레 등이 비판적 논조로 보도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비교적 객관적인 사실 위주로 보도해 눈길을 끈다. 조선일보는 12월18일자 사설에서 “세계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한국 대표기업과의 인연을 자산으로 삼고 있는 홍 내정자의 역할이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 사설에서 “언론사 실소유자의 권력 참여가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는 게 사실”이라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언론인 출신 김동률 박사는 이에 대해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같은 경우 (홍 회장 내정에 대해) 아주 객관적으로 썼지만 행간을 자세히 보면, 서운하다거나 허를 찔렸다는 느낌을 읽을 수 있다”고 밝히면서 “궤를 같이 하던 신문이 현재 상황으로 보면 상대 쪽으로 가서 그들을 지원하는 형식이 되기 때문에 아마 상당히 당혹감을 면치 못할 것이다”고 밝혔다.
홍석현 회장은 세 번의 큰 뉴스를 ‘만들어’ 단숨에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부상하게 되었다. 홍 회장이 다음에는 어떤 ‘빅 뉴스’로 정치권을 들었다 놓을지 관심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