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부른 ‘칼의 노래’ 지금도 생생”
▲ <불명의 이순신>역을 맡았던 김명민. 사진제공=KBS | ||
지난달 28일 종방한 KBS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의 타이틀롤을 맡았던 탤런트 김명민. 그는 이순신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발악’이라는 극단의 표현법을 썼다. 말 그대로 온갖 짓을 다하며 버둥거렸다는 뜻일 터. 그에게 이순신은 감히 다가설 수 없는 ‘그분’이지만 그와 동시에 몰입해야만 하는 ‘존재’ 자체였다.
사실 지난달 28일 임진왜란의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 장면을 끝으로 104부 대단원의 막을 내린 <불멸의 이순신>은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끝내느냐를 놓고 논란도 많았다. 이순신의 죽음을 둘러싸고 ‘자살설’과 선조의 시기로 초야에 묻혀 숨어 지냈다는 ‘은둔설’ 등 의견이 분분했던 것. 제작진은 결국 이순신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갑옷도 입지 않은 채 전투에 임하다 끝내 적의 총탄에 쓰러지는 ‘자살설’로 마무리 지었다.
1년 동안 꼬박 이순신으로 살아왔던 김명민은 그동안 ‘그분’을 그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는데 마지막 장면만 생각하면 눈물이 스멀스멀 올라온다며 고개를 흔든다.
“대본에는 평온한 표정을 보여야 한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감독님은 미소를 머금으라고 주문했구요. 그런데 그게 잘 안되더군요.”
‘과연 그렇게 쓰러져야 했을까, 쿠데타라도 일으킬 수는 없었을까’ 하는 제3자의 입장에서 사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는 설명. 너무 설움이 북받쳐서 편안한 표정을 연기하지 못했던 아쉬움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듯하단다.
지난해 9월4일 첫 방송된 이후 1년 동안 평균시청률 22%(AGB닐슨미디어리서치)를 기록하며 시청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던 <불멸의 이순신>은 마지막 회를 31%로 대미를 장식했다. 지금은 온 국민에게 이순신으로 통하는 김명민이지만 출발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캐스팅 당시엔 “이순신 역을 맡기에는 너무 연약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방영 초기에는 10%의 시청률에 머무르며 이순신 본래의 모습을 퇴색시킨다는 비평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하지만 김명민은 그 당시에도 오로지 이순신 하나만 생각했었다고 추억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촬영이 있었는데 입이 근질거려도 참고, 우스운 일에도 속으로 피식하고 말았습니다. 농담하는 자체가 ‘불경’하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구요.”
그뿐만이 아니다. “대본을 쥐고 분장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입을 다물고 마음을 다잡았죠.” 주말에도 다르지 않았다. “한 시간쯤 발성연습하고 나머지 시간엔 대본을 외웠어요. 제가 그분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당장 그만두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에게 인고의 세월은 워낙 길었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하고 1996년 SBS 공채탤런트 6기로 뽑힌 뒤 KBS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 출연하기 전까지 10년 가까운 무명시절을 견뎌야 했다. 코디네이터도 없이 대본 하나 들고 각 의상 협찬사 홍보실을 찾아다니며 간신히 협찬을 받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의상들을 싸들고 촬영 첫날 새벽같이 촬영장에 나갔더니 조감독으로부터 캐스팅이 바뀌었다는 뒤늦은 통보를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는 배우를 정말 관두고 싶었다”고 툭 내뱉듯 말하는 그는 그래서 웬만한 일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 ‘내공’이 생겼단다. 이순신에 캐스팅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당시에도 무덤덤했다고 전한다.
“언제든 캐스팅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있었나 봐요. <불멸의 이순신> 제의를 받았을 때 감독님 앞에서 선뜻 기쁨을 표현하지 못했던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의 피눈물 나는 노력과 일관된 연기는 예리한 시청자들의 눈에 박히기 시작했고, 절묘하게 일본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과 맞물려 시청률이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다케시마의 날 제정으로 시작된 일본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과 역사 왜곡 교과서의 출판강행, 일본 지도층의 계속된 망언은 국민들 사이에 반일감정을 고조시켰고, 그런 가운데 통쾌하게 왜군을 격파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이다.
▲ 갑옷을 벗고 전투를 독려하다 총에 맞아 쓰러진 이순신의 최후. | ||
1년 동안 드라마를 찍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드라마 시작과 동시에 태어난 아들 재하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것. “아들의 웃는 모습을 보면 감정 잡는 데 몰입하기 힘들 것 같아 집에 있을 때조차도 자주 놀아주지 않았다”고 말할 만큼 독하게 연기했던 그이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지난해 4월에 태어난 재하는 김명민에게는 둘도 없는 아들이자 자타가 공인한 ‘복덩이’다. 그는 사실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뉴질랜드로 이민가려고 했었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인 7~8개월 동안 말 못할 시련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가 임신 4~5개월 됐을 무렵인데, 의사가 뱃속의 아기가 자라지 못하고 3주 전과 크기가 똑같다며 무슨 일 있냐고 물을 땐 정말 나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아내와 아기에게 너무 미안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아내의 출산이 임박했을 즈음 <불멸의 이순신>의 연출자인 이성주 PD가 만나자고 연락을 해와 시큰둥한 마음으로 나갔다가 아들의 탄생과 더불어 <불멸의 이순신>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는 행운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어느새 뛰어다닐 정도로 훌쩍 자란 재하에게 김명민은 “아들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재하가 좀 더 큰 뒤 아빠가 연기한 <불멸의 이순신>을 볼 것을 생각하면 뿌듯하다.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된 것 같다”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김명민은 거대한 존재인 이순신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는 숙제가 남았다. 김명민은 아주 느긋하게 말한다. “갑자기 껄렁껄렁해지거나 사회적 통념에 위배되는 역할을 해서 억지로 이미지 변신을 하려고 들면 거부감만 줄 겁니다.” 그래서 후속작은 시간을 두고 결정할 생각이라고 한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던 만큼 후속작 선택에도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겁니다. 섣불리 결정했다가는 지금의 감동과 여운에 역행할 것만 같아요.”
김명민한테 이순신이 남긴 여파가 너무 커서 떠나보내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역할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랑스러운 아들, 부인과 함께 여행 등 당분간 휴식을 취할 작정이다. 이름처럼 ‘명민’하고 성실한 배우. 겉으로는 곱상한 외모의 귀공자 같지만 알고 보면 헝그리 정신으로 똘똘 뭉친 그가 긴 여행에서 돌아온 뒤 다음 작품에선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자못 기대가 된다.
유아정 스포츠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