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콜’이 쏟아질수록 깊어가는 ‘시름’
▲ 지난 9월12일 한국언론재단에서 열린 피플 퍼스트 아카데미 설립 심포지엄에 참석한 심대평 충남도지사.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가 공동 창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민중심당’은 정치권과 국민들로부터 예상밖의 기대와 관심을 끌고 있다. 심 지사와는 분명히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는 열린우리당조차 지속적으로 그에게 ‘눈웃음’을 치고 있을 정도. 그가 출사표를 던지며 주장해온 ‘반(反) 열린우리당, 비(非) 한나라당’ 전술도 이쯤 되면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최근 그에게 다가오는 정치권의 유혹에는 여야도 이념도 정체성도 없다.
그러나 아직 이렇다 할 정강 정책 하나 없는 그에게 쏟아지는 기대는 분명 ‘부담’이다. ‘시선끌기’에 성공했지만 아직은 성공적인 정치실험을 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 당 내에서조차 “지금의 인기는 거품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심 지사를 포함한 신당 참여 인사들이 당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보다 연대의 대상, 통합의 대상을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그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수정란에 불과한 국민중심당이 벌써부터 결혼상대를 찾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인 것. 온갖 억측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국민중심당(가칭). 이 당을 사실상 이끌고 있는 심 지사의 복잡해진 고민 속으로 들어가 봤다.
‘중부권 신당론’은 올 3월 느닷없이 터져나왔다. 자민련을 탈당한 심 지사가 “충청을 기반으로 한 국민정당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 논란의 시발점이 됐다. 그리고 7개월이 지난 10월19일, 심 지사는 드디어 자신이 약속한 신당의 첫 문을 열었다. 당명은 ‘국민중심당’이었다. 그는 창당취지문에서 신당이 ‘분권형 정당’과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할 것임을 밝히는 동시에 보수세력의 결집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제 막 창당 수순에 들어간 국민중심당은 자신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정치의 중심에 서는 행운이자 불행을 맞고 있다. 민주당을 비롯해 한나라당, 심지어 열린우리당으로부터 직·간접적인 연대의 손길을 받으면서 고민에 빠진 것이다. 겉보기에는 두 손에 꽃놀이패를 쥔 듯한 형국이지만 국민중심당의 ‘중심’을 잡아야 할 심 지사로서는 당과 자신의 미래를 위해 ‘묘수’를 찾아야 하는 기로에 놓인 셈이다.
심 지사가 처음 신당론을 들고 나왔을 때 많은 언론은 심 지사와 손학규 경기지사의 관계를 의심했다. 공교롭게도 당시는 심 지사와 손 지사가 지자체 차원의 상생협약을 맺으면서 지역간 끈끈한 유대를 과시하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나온 말이 ‘SS(심대평, 손학규의 이니셜) 연합설’이니 ‘SS 신당 창당설’이니 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두 사람 간의 밀약설은 올해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세간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창당작업이 진행되면서 기대만큼 흥행을 못했던 것도 이유가 됐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고건 변수의 등장이었다.
▲ 지난 10월28일 가칭 ‘국민중심당’ 창당준비위원회 현판식 모습. 여야의 구애가 심 지사에게 몰리면서 어떤 선택을 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
‘고건’발 신당 변수는 9월 들어 절정을 맞았다. 신당측이 주최한 한 행사장에 고 전 총리가 심 지사와 나란히 참석한 것이 화제가 됐던 것. 그날 이후 신당-고건 관계는 지금까지도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민주당과의 연대설은 지난달 불거졌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와 심대평 충남지사가 정치개혁에 대해 의기투합한 사실이 알려진 것. 제2의 ‘DJP 연합’이라고 불리는 ‘백제연합’의 가능성이 점쳐지던 순간이었다. 정진석 의원은 “민주당과 국민중심당 양측이 협력에 공감한 계기가 됐다”며 “정치·경제·외교 등 여러 분야에 대해 두 사람이 의견을 나눈 결과 서로의 생각에 별 차이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특히 이 만남 이후 한 대표가 “중도실용주의 정치세력의 결집을 위해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다”는 자신의 생각을 내보인 것을 두고 신당-민주당의 교감설은 지금도 대세로 굳어져 있다.
신당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추파’도 계속됐다. 특히 친노 직계인 염동연 의원이 최근 “민주당과의 통합 제안을 당 지도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중대결심을 할 것”이라며 “중부권 신당과도 결합해 ‘통합신당’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밝힌 것을 두고 갖가지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신당 창당 선언 이후 심 지사를 만난 열린우리당 충청지역 의원들이 신당측과 교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증폭됐다. 지난10월22일 심 지사와 회동을 가진 김원웅 의원도 최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심 지사가 ‘절대 지역주의 정당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이나 여권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에 대해 동의한다’고 했다”고 밝혀 열린우리당과 신당의 연대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다.
신당과 한나라당의 교감은 이미 여러 번 확인됐다. 특히 민주당과의 연대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박 대표의 의중이 작용했다는 후문. 차기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중요 전술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한나라당으로서는 반 열린우리당 정서를 가진 정치세력을 한나라당 중심으로 결집해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최근 신당의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인 신국환 의원은 “정책이 맞으면 한나라당과의 연대도 가능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신당의 향후 진로와 관련, 정리되지 않은 갖가지 가능성들이 점쳐지는 이유는 최근의 정치상황에 기인한 바가 크다. 대통령의 연정 발언과 여당의 지지율 하락의 여파로 정계개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 신당이 바로 이 정계개편의 뇌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이런저런 추파를 한몸에 받고 있는 심 지사의 의중은 정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갈 길을 정하지 못했다는 게 ‘정답’이다. 심 지사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심 지사측의 한 관계자조차 “심 지사가 이런저런 가능성을 놓고 찔러보는 식으로 검증을 하는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할 정도.
▲ 심대평 충남도지사와 연대설이 돌았던 인물들의 만남의 순간. 위부터 손학규 경기도지사, 고건 전 총리, 김원웅 열린우리당 의원. | ||
또 다른 핵심 관계자는 “국민중심당은 고건을 위한 당도 민주당과의 통합을 위한 징검다리도 아니다. 최근 소속 정치인들의 오해를 살 만한 언행이 이러한 억측을 부풀리고 있다. 누구와의 연대가 문제가 아니라 지방선거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방안을 우선 고민할 때”라고 지적했다. 심 지사에게 실질적인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신당의 인적 구성이 주로 자민련 출신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심 지사에게는 부담이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자민련과 통합을 합의한 이후 더욱 심해지고 있다. ‘도로 자민련’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익명을 요구한 당의 한 핵심 인사는 “자민련과의 통합은 내년 지방선거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절대로 당의 이념적 정체성이 자민련화돼서는 안된다는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다”고 전했다. 황장수 수석부대변인도 “제2의 자민련 소리를 듣는 순간 이 당은 끝이다. 심 지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인재를 다양하게 영입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비서관에 이어 네 차례에 걸쳐 도지사를 지내며 행정가로서 입지를 굳힌 심 지사가 정치지도자로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가도 신당의 성공가능성을 가르는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특히 ‘신중론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정치상황에 어떤 ‘순발력’을 보여줄지가 관건. 그의 대외적인 지명도와 인적 네트워크에 당이 실제로 의존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박정희 정권 이래 지금까지 보수정치에 익숙했던 심 지사가 개혁이란 시대적 화두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로 남아 있다.
현역의원 6명을 보유한 ‘제5당’ 국민중심당의 ‘이륙’ 조종간을 움켜잡고 있는 심대평 지사. ‘전국정당’을 꿈꾸는 그는 지금 당과 자신의 운명을 좌우할 시험대 위에 올라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