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장 저서 구입엔 ‘펑펑’ 유가족 치유 지원엔 ‘찔끔’
천안함재단 사무실 입구.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재단이 구입한 이사장 저서의 제목은 ‘기적은 순간마다’다. 개인 자서전 성격의 책으로 내용은 천안함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책을 살펴보면 조 이사장이 말단 9급 공무원에서 지방국세청장까지 진급한 과정을 ‘공무원의 신화’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재단은 이 책을 2000만 원어치 구입해 해군에 기증했다. 재단은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도서 구입비를 모두 반환했다. 재단 측은 “해군 측에서 먼저 조 이사장 자서전을 기증해줄 수 없겠냐고 문의해와 내부 이사회에서 정식 절차를 밟아 구입한 것”이라며 “이사장께서 당시 저자 인센티브로 받은 돈도 곧바로 천안함재단에 기증하는 등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해군 측의 요청이 있었다고 해도 재단의 유가족 지원사업 예산이 연 3000만 원에도 못 미치는 것을 감안하면 천안함과 아무런 관련 없는 도서를 2000만 원어치 구입해 기증한 것은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라는 지적이다.
또 조 이사장은 세무사 출신으로 안보 전문가가 아님에도 군부대 등에서 안보특강을 하고 있어 이 또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조 이사장은 안보 특강을 위해 군부대를 방문할 때마다 평균 100만 원가량의 부대 격려금을 재단 예산으로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조 이사장은 과거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비례대표에 도전하는 등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개인 명예추구를 위해 재단 기금을 함부로 사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작 재단은 유가족을 위한 치유, 상담, 유자녀학비 지원 등에는 매우 인색한 모습을 보여왔다. 현재 재단이 시행하고 있는 핵심 4가지 사업 중 ‘유가족 지원사업’의 예산이 가장 소액이다.
박병규 유족회 회장은 “천안함재단에 강연 요청이 들어오면 차라리 생생한 경험을 가진 유족들에게 강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더 좋은 것 아니냐. 왜 세무사 출신인 이사장이 강연을 독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단 측은 “군부대에서 강연요청이 올 때 이사장님이 와서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요청을 한다. 그런데 우리 마음대로 유족이 대신 강연에 가겠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강연을 하러 가서 고생하는 군 장병을 격려하는 의미로 격려금을 지급하는 것이지 개인 명예추구를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외에도 방만운영으로 의심되는 사례는 또 있다. 재단은 지난 2012년 김인규 당시 KBS 사장이 퇴임할 때 297만 원짜리 황금열쇠를 퇴임선물로 제공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명목은 재단기반 환경구축을 위한 홍보비였다. 김 전 사장은 현재 천안함재단의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재단은 국가보훈처 지시사항을 어겨 기부금 단체 재신청을 거부당하는 등 독단적인 운영으로 재단 운영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기부금 단체에 지정되지 않으면 기부금 모집이 사실상 어려워져 재단 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유족회 측은 ”재단이 보훈처와 쓸데없이 갈등을 빚으면서 기부금 단체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재단이 빨리 기부금 단체로 지정돼야 기부금을 모아 생존 장병 등을 도울 수 있는 것 아닌가. 아직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장병이 있는데 유족들이 돈을 모아 해당 장병을 돕고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재단 측은 “대부분의 지시사항은 이행했고 몇 가지 사항은 법적으로 검토해본 결과 이행이 불가능해 이행하지 못했을 뿐 의도적으로 지시사항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보훈처에서 왜 기부금 단체 재신청을 거부하고 있는 것인지 우리도 모르겠다. 보훈처가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단은 최근 전체 자산의 절반가량을 보험 상품에 투자했는데, 당일 오전 이사회 의결 후 곧바로 오후에 계약을 마쳐 성급한 투자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재단 측은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를 해왔던 사안이고 이왕 결정을 했으면 당일 계약을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그 과정만 급하게 진행된 것일 뿐 무작정 투자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재단 이사진은 천안함 사고 해역이 바라다 보이는 해군2함대 골프장에서 골프를 쳐 물의를 빚기도 했다. 유족들은 재단 이사진이 천안함 사고 해역 바다를 바라보며 골프를 친 것은 유족들의 아픈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 처신이라는 입장이다. 재단 측은 도의적으로 사과는 하면서도 “개인 돈으로 골프를 친 것이 무슨 문제냐”며 “천안함 사고 해역 주변에서 골프를 치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해군2함대 골프장은 아예 폐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유족 측이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조 이사장은 “천안함 유족들이 재단의 돈을 유족의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등의 모욕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또 재단은 탄원서를 낸 유족회장을 이사직에서 쫓아내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재단 측은 박병규 유족회장이 사실과 다른 내용을 유족들에게 유포하는 등 재단과 임원들의 명예를 훼손했기 때문에 정당한 논의를 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유족회장 측은 탄원서에 제기된 문제는 모두 사실에 입각한 지적이며 재단 측에 수차례 개선 요구를 했으나 반영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탄원서를 낸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재단과 유가족 측의 불신은 점점 깊어지고만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천안함용사 추모음악회’ 행사를 하면서 정작 유가족들의 좌석은 구석에 배치해 유족들을 고의적으로 배제시킨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오죽하면 현장에 있던 보훈처 직원이 “재단은 유족에 대해 합당한 의전과 예우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재단을 질타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도 재단 측은 절대 유족들의 자리를 구석에 배치한 것이 아니며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천안함 용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재단이 정치권 낙하산 투척지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조 이사장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세무사 출신으로 과거 한나라당 비례대표에 도전한 적이 있다. KBS 사장 출신인 김인규 고문은 이명박 대선후보 방송전략실장 출신이고 김성찬 고문은 새누리당 현직 국회의원이다.
국정감사에서 천안함재단 문제를 지적한 바 있는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단은 자신들은 잘못이 없고 모두 오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왜 유족들이 재단 해체까지 요구하고 나섰겠냐”면서 “유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재단이 존재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