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청탁인 줄 몰랐다” vs “내 조카 직접 만났다”
최대 관변 보수단체 수장인 김경재 자유총연맹 회장이 취업알선 사기 혐의로 피소됐다. 고성준 기자
이번 사건은 정치권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만약 최대 관변 보수단체 수장인 김 회장이 이번 일로 낙마할 경우 내년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까닭에서다. 자총 회장 선거 당시 청와대가 친박계와 가까운 김 회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단 김 회장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김 회장은 지난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를 돕다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 당시 새누리당에서 변호사(새누리당 모 지역구위원장)를 지원해줬지만 1심에서 벌금 100만 원 형을 선고받았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한동안 공직에 진출할 수 없게 된다.
다급해진 김 회장은 당시 황우여 대표를 찾아가 새누리당에서 지원해준 변호사는 믿을 수 없다며 자신이 따로 변호사를 구하겠다고 했다. 김 회장에 따르면 황 대표는 당에서 변호사비를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황 대표 말을 믿고 지인인 유 아무개 전 청와대 행정관으로부터 3000만 원을 빌렸다. 차용증도 작성했고 돈도 수표로 받았다. 김 회장은 그 돈으로 변호사를 구했고, 2심에서 벌금 80만 원을 선고받아 공직취업제한을 벗어났다.
그런데 대선이 끝난 후 황 대표가 말을 바꿨다는 게 김 회장 주장이다. 대선회계처리가 완료돼 소송비를 지원하기 어렵게 됐다는 말을 황 대표로부터 들었다는 얘기다. 황 대표는 얼마 후 대표직을 사퇴했고 소송비용은 고스란히 김 회장이 갚아야 할 상황이 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유 전 행정관이 사업가 엄 씨로부터 돈을 빌려 김 회장에게 준 것이었다. 소송이 끝난 후 엄 씨는 김 회장을 찾아와 그 돈은 조카의 취업을 약속받고 제공한 돈이라고 했다. 김 회장 측은 전혀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조카의 취업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유 전 행정관이 자신과 상의도 없이 돈을 급하게 빌리기 위해 인사치레 식으로 건넨 말이라는 주장이었다.
김 회장 측은 문제가 생길까봐 바로 돈을 갚으려 했지만 당장 돈을 구할 곳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엄 씨 측에 분할 상환을 제안했으나 엄 씨 측이 거절했다는 입장이다. 김 회장 측 관계자는 “우리는 그 분이 뭐하는 분인지도 몰랐다. 나중에 유 전 행정관이 엄 씨를 데려와 이 분이 돈을 빌려주신 분이라고 소개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 회장 측에 따르면 엄 씨는 지난 2014년부터 빚 독촉을 해왔다. 김 회장은 올해 초 자총 회장에 당선된 후 빌린 돈을 모두 갚으려 했지만 엄 씨가 계좌번호를 알려주지 않고 끝까지 조카를 취업시켜 달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김 회장은 원금을 엄 씨가 아닌 유 전 행정관 통장에 입금하고 엄 씨에게 돈을 찾아가라고 통보했다. 김 회장 측은 “우리는 유 전 행정관에게 돈을 빌렸고 차용증도 유 전 행정관과 썼기 때문에 유 전 행정관에게 돈을 모두 갚은 시점에 이미 우리와는 관련이 없는 일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 측은 “우리가 취업 청탁은 절대 안 된다고 하자 엄 씨 측이 이자를 1200만 원이나 요구해왔다. 너무 과한 이자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주 아쉬울 때 쓴 돈이니까 이자까지 지급할 용의가 있었다”며 “엄 씨와 이자 금액을 조정하던 도중에 갑자기 고소장을 제출했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내가 하려고만 했다면 신입사원 하나쯤 취업 못시켰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김 회장 측 관계자도 “김 회장님은 취업 청탁 그런 거 절대 안 하신다. 친인척 중에도 서른 살이 넘도록 취업 못한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까지 전혀 그런 것(취업청탁) 안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엄 씨 측 입장은 180도 다르다. 엄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가 미쳤나.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아무 대가도 없이 3000만 원을 왜 빌려주겠나”라고 반문했다. 엄 씨 측에 따르면 김 회장과 유 전 행정관, 엄 씨는 지난 2013년 한 모임에서 우연히 처음 만난 사이다.
엄 씨는 “유 전 행정관이 ‘우리 조카들이 취업이 안 돼 걱정’이라는 내 이야기를 들었는지 얼마 후 접근해 왔다. 유 전 행정관은 김 회장이 소송비를 구하지 못해 힘들어 하고 있는데 소송비를 지원해주면 조카들을 취업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면서 “동생에게 이 같은 사실을 말하고 동생 돈 3000만 원을 유 전 행정관에게 전달한 것이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 조카들 취업이 되지 않아 결국 내 돈으로 동생에게 원금을 돌려줬다”고 말했다.
특히 엄 씨는 유 전 행정관에게 돈을 줄 때 따로 차용증도 쓰지 않았다고 했다. 돈을 빌려준 것이 아니라 취업 청탁의 대가로 지급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엄 씨는 “김 회장이 취업 청탁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고 하는데 취업 문제를 논의해보자고 내 조카를 불러 김 회장이 직접 만나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엄 씨는 김 회장 측이 빌린 돈을 분할 상환하려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김 회장 측은 그동안 빌린 돈을 갚으려는 움직임이 전혀 없었는데 자신이 참다못해 고소하겠다고 하자 그제서야 돈을 갚겠다고 부랴부랴 나섰다는 것이다.
엄 씨는 “그동안 내 전화도 잘 받지 않았던 사람들이 내가 고소하겠다고 하니까 돈을 갚겠다고 수십 통씩 전화를 해왔다. 이자 지급 문제도 유 전 행정관이 먼저 제안한 것이다. 자꾸 그런 식으로 나를 매도하면 안 된다. 지금까지 원금도 안 갚다가 고소한다고 하니까 이제야 이자를 주니 안 주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