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현·최경환 등 ‘친박 대망론’ 등장…반기문은 ‘제3 지대 우회’ 만지작
반 총장과 친하다고 자처하는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발 ‘개헌론’은 이러한 이슈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박근혜 대통령 심중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인 데다, 이 개헌론이 반 총장의 대권 행로를 터주는 정지작업이 될 수도 있다고 해석돼 반 총장과 친박계의 냉각기는 당분간 불가피해 보인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후 정 원내대표의 메시지가 각색됐다느니, 지어냈다느니 하는 논란이 일었다. 만약 정 원내대표 메시지가 사실이라면 충청권의 맹주인 JP가 자신이 이루지 못한 충청대망론을 반 총장을 통해 이룰 뜻을 피력한 것이 된다. 친박계와 소통이 잘 되지 않던 찰나 정 원내대표가 메신저가 됐고, 박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은 JP가 큰 조력자로서의 메시지를 던지니 양측 기류가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친박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친박계의 불쾌감은 정진석과 JP를 향한 것이다. 대표 주자가 없는 친박으로선 반 총장과의 끈을 놓을 순 없다”고 했다. 또 “현재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유지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도 반기문이라는 차기 주자 때문”이라며 “비박계 누구도 원치 않는 박 대통령과 친박계로선 반 총장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고 성완종 전 의원 등 유력 충청권 인사들이 대거 참여해 충청권에선 영향력이 큰 충청포럼의 현 회장은 박 대통령을 ‘누님’이라 부른다는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다. 그를 비롯한 일부 친박계 핵심들의 최근 행보를 두고 “반 총장이 아니라 자신들이 대선에 나서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등장하면서 친박대망론이 등장했다.
이달 초 대구에서는 윤 의원을 지지하는 대구경북 모임인 ‘TK 무궁화리더스 포럼’ 창립준비 모임이 있었다. 이 자리가 ‘윤상현 대통령 만들기’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TK의 정계, 재계, 법조계는 물론이고 낙선·낙천자나 캠프 출신 등 선거통이라는 인사들 수십 명이 자리하면서 힘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윤 의원이 전국의 원외 인사들을 만나며 조직을 짜고 있다는 말이 들렸지만 이렇게 구체적인 모임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처음이었다.
무궁화리더스포럼 본부는 인천 남구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 총장에 대한 윤 의원의 최근 발언은 “인기란 단지 피부 껍질 두께밖에 되지 않는 깊이란 외국 속담이 있다. 반 총장은 정책이나 적합성을 두고 혹독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그 뒤론 입장을 따로 밝힌 적이 없다.
지난 전당대회 당 대표 경선에 불출마 선언을 했던 최경환 의원은 주변부로부터 대선 출마 권유를 여전히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력자는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 시나리오를 최초 제기했던 홍문종 의원이다.
홍 의원은 최 의원의 전당대회 불출마 선언을 할 즈음, “최 의원은 정치적 행보를 본인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당에 후보들이 별로 없는데 당 대표보다는 대권으로 가는 게 어떻겠냐 얘기하는 분도 계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런 홍 의원이 최근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을 맡고 싶어 하며 공을 들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여연은 대선 국면에서 당내 경선 여론조사를 지휘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맡게 된다.
이런 친박 내부 움직임과 맞물려 최근 반 총장 쪽 기류도 급변하고 있다. 정가의 한 인사는 “반 총장의 고시동기들을 비롯해 오피니언리더그룹에서 국민이 외면하는 구정치의 장으로 직행하지 말고 제3지대로 우회하는 것이 어떠냐고 조언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시나리오가 거론되면서 최근 크게 돌고 있는 얘기가 바로 반 총장과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대표의 합체설이다. 반 총장이 현 정치권에서 쇄신을 외치고 있는 진영에 합류해 차기 주자로 선 뒤 추후를 도모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때 상황을 지켜보고 친박계와 손을 잡거나, 독자 출마를 하느냐를 선택하라는 것으로 웬만해선 내년 종반까지 어느 진영으로 갈지 선택하지 않아야만 반기문 주가를 지속할 수 있다는 논리다.
앞서의 정가 인사는 “해외언론을 통해 국내여론을 들여다봤을 반 총장으로선 친박계를 향한 국민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변수는 박 대통령의 30% 고정 지지층이 무너지느냐 아니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친박 진영 고도의 전략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내부 상황을 볼 때 친박계가 경선 없이 반 총장을 꽃마차에 태워주긴 힘들다. 비박계의 강한 반발을 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선 반 총장이 외부에서 생환해 돌아오면 친박계와의 후보단일화를 꾀할 수 있다는 노림수가 담겨있다는 얘기다.
이는 최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정계개편 발언과 맥락을 같이 한다는 풀이다. 이 대표는 10월 12일 제주대에서 강연을 통해 “한국 정치가 제대로 된 정책 대결로 가려면 중도우파와 중도좌파, 급진진보 간의 대대적인 정계개편이 있어야 한다”며 “확실한 이념 분화가 된 정당의 이합집산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역적으로 대립했던 호남과 영남에 충청이 섞여 함께 당을 만드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철저하게 청와대 편에 서 있는 이 대표의 이러한 발언은 지역주의 타파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활용해 보수적인 영남과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충청의 대연합을 꾀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일각에선 여론조사에서 1강 구도를 굳히고 있는 반 총장이 제2의 ‘새정치’ 바람을 불러 신당을 창당하는 것이 어떠냐는 조언도 비등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를 위해 충청권 인사들이 움직이며 인재 영입에 조금씩 나서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현재 정치권에서 반기문은 신기루다.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다가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다가온다. 이런 신비주의도 올 연말이면 임기 만료와 함께 종료된다.
수많은 설이 있지만 그래도 친박계와 반 총장 유대가 가장 설득적이다. 박 대통령이 순방 중 반 총장과 7차례나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의원이 다보스포럼에서 5시간씩 기다려 그와 20분 환담한 것을 비춰보면 그렇다. 당시 최 의원은 안보와 환경 분야를 논의했다고 하지만 그 논의를 위해 몇 시간씩 그를 기다렸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