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배려로 또 살아난 돌격대장
▲ ‘왕특보’가 돌아왔다. 사진은 지난해 1월 시민사회수석 임명장을 받은 후 노무현 대통령과 담소하는 이강철 특보. | ||
노 대통령은 그를 정무특보에 임명하면서 “당·청 간의 가교 역할”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노 대통령의 영남에 대한 고민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향후 정계개편과 차기 대권 구도에서 영남을 공략하지 못하면 정권 재창출도 불가능하다는 게 여권의 결론이다. 그 고민을 해결해줄 영남의 대표주자가 이 특보밖에 없다는 결론. 여기에 여권이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체제로 급격히 ‘이양’되는 것을 이 특보가 견제해줄 것이라는 뜻도 담겨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무대에 오르기도 전에 삐걱거리고 있다. ‘횟집정치’ 논란에 “골프 금지령은 한건주의”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기 때문이다. 과연 이 특보는 노 대통령의 ‘정치교사’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을까.
이강철은 5전 5패의 사나이다. 그는 1988년 ‘한겨레민주당’ 깃발을 들고 대구에서 처음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급진적’인 재야 세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4등의 성적으로 첫 눈물을 삼켰다. 그 뒤 1992년, 1996년 민주당 공천으로 대구에 또 다시 ‘이강철’ 이름 석자를 올렸지만 3등으로 내리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네 번째 도전인 지난 2004년 총선에서는 집권 여당의 프리미엄에 탄핵 열풍을 업고 선거에 임했지만 강고한 ‘지역’의 벽을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뒤 2005년 10월 26일 그는 어쩌면 정치 역정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다섯 번째 도전장을 던졌다. 또 다시 졌다. 하지만 그때 선거에서 ‘고집 센’ 대구사람들 가운데 44%의 마음을 사로잡아 정치적 평가를 받았다. 그는 부산 3전 3패를 기록했던 노무현 대통령보다도 더 ‘미련한’ 정치인이었지만 결국 꿈을 이루진 못했다. 모두들 ‘깡철’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의 정치적 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5전 5패의 처절한 승률보다는 강건한 지역주의를 뚫을 희망을 찾을 수 없는, 대한민국 정치 풍토를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성(眞正性)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정치인들이 흔히 쓰는 말 가운데 하나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버리고 손해를 보더라도 대의명분을 위해 순수한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정도의 뜻일 것이다.
이강철 대통령 정무특보. 그는 ‘허점’이 많은 정치인이다. 최근 ‘횟집정치’에 골프 발언 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대통령의 측근이긴 하지만 잇단 선거 패배로 당에서는 전혀 ‘대접’을 받지 못하는 ‘종이 호랑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그럼에도 그의 ‘진정성’은 여전히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유효하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30년이 훌쩍 넘도록 다른 정당의 깃발을 허용하지 않는 지역주의에 대해 끊임없이 ‘바위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다는 의미다.
그런 그가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백수 생활’ 6개월 만에 노무현 대통령의 품으로 되돌아온 그의 손에는 대통령 정무특보라는 직함이 들려져 있다. 무보수 명예직의 ‘민간인’ 신분에 여전히 ‘백수’이지만 노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그가 펼칠 ‘굿판’에 기대를 거는 사람도 많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지방선거 및 향후 대권 구도와 관련된 정계개편 과정에서 ‘왕수석’이 노 대통령의 ‘특명’을 어떻게 수행할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수석 본인은 자신의 정무특보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이 특보와 어렵게 전화통화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는 최근 ‘횟집정치’ 논란과 ‘골프 금지령은 한건주의’ 구설수에 휘말렸던 터라 기자와 ‘엮이는’ 것을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이 특보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질문에 대해 “내가 노 대통령의 의중을 비교적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당·청 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많았기 때문에 내가 그에 대해 거중 역할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당·청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국회의원들은 기반이 지역구지만 대통령은 나라 전체를 바라보고 정치를 해야 한다. 그 부분에서 서로 상충되는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서로 설득하고 이해해야 한다. 특히 우리당에는 초선이 많은데 처음에는 그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2년여 동안 그들 나름대로 정치훈련도 됐기 때문에 (청와대의 입장을 고려한) 설득에 대한 부담은 덜하다. 앞으로 당·청 관계가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지난 2003년 자리를 함께했던 이강철 특보와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 ||
그런데 이 특보는 최근 자신에 관한 여러 가지 구설수가 몹시 부담스러운 듯했다. 그는 “나는 원래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에 언론에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 3월 27일 대구지역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대부분 후배들이라 오랜만에 맘 편하게 소주 한잔 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한 기자가 거두절미해서 골프에 대한 이야기 등을 써버리는 바람에 지금 아주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횟집 개업 등에 관한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피해갔다. 속시원한 대답을 기대할 수 없었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향후 정계개편 과정에서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복안은 있는가.”
“허허허, 나중에….”
웃음으로 피해 가는 그의 ‘기술’이 왠지 어색했다. ‘갱상도’ 사나이답게 기자들에게 시원시원한 대답을 해주던 그였지만 정무특보 임명 며칠 만에 ‘쌍포화’를 맞은 것이 부담스러웠던지 평소 그답지 않게 말을 아낀다. 그럼에도 그 웃음의 ‘행간’에서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배경으로 그의 마지막 정치무대가 될지도 모를 지방선거와 그 뒤의 정계개편에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 ‘암시’를 읽을 수 있었다. 전화연결을 접고 이 특보의 사람들을 찾아 그 ‘웃음’의 이면을 계속 따라가 봤다.
먼저 이 특보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김태일 열린우리당 사무부총장은 그의 향후 역할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김두관 최고위원이 그동안 정무특보 일을 맡아왔지만 당의 경험이 많지 않아 당·청 간 다리 역할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이 특보는 그전 어떤 사람보다 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을 가진 메신저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분 성품이 그냥 가만히 있는 양반도 아니고 스스럼없이 행동하시니까 앞으로 긍정적 역할을 많이 할 것으로 본다.”
김 부총장은 또한 이 특보의 ‘실질적 역할’에 대해 “지방선거에서 좋은 후보를 찾는 것도 그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다. 최근 경북도지사 후보로 박명재 중앙공무원연수원장을 영입한 것도 이 특보가 열심히 권유해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한나라당은 현재 이 특보가 대통령 정무특보 신분임에도 지방선거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며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 또한 이 부총장은 “대통령과 만나고 싶을 때 다른 비서진의 블로킹 없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형식적 접근권이 이 특보에게 허용된 것이 그에게는 큰 의미라고 본다. 앞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특보가 지방선거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은 향후 정계개편에서의 역할론으로까지 이어진다. 그의 또 다른 측근은 이에 대해 “이 특보는 이번 지방선거에서의 선전 정도에 따라 향후 정치적 위상도 달라질 것이다. 대구·경북을 배경으로 선거 승리에 기여한다면 정계개편 과정에서도 일정한 지분과 역할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한 “이 특보의 임명은 노 대통령의 영남에 대한 고민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호남·충청지역을 발판으로 하고 있지만 영남권의 공략 없이는 차기 정권 재창출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영남 출신인 노 대통령은 끊임없이 영남에 구애해 세력을 확보해야만 당내에서 그의 영향력이 유지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특보와 노 대통령은 한몸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를 ‘돌격대장’으로 기용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이 특보의 이번 ‘컴백’은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 그를 잘 아는 또 다른 관계자는 “사실 이 특보는 예전에 비해 당내 위상이 떨어져 있다. 선거 패배 뒤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이 특보와 오랜 친분이 있는 노 대통령이 이번에 마지막 기회를 준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이 특보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더욱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열린우리당의 또 다른 인사는 그의 컴백 시기와 이해찬 전 총리의 낙마 시점을 결부시켜 해석하기도 한다. 이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이 전 총리 낙마 바로 뒤에 이 특보를 임명한 원려를 깊이 새겨 보아야 한다. 이 전 총리의 갑작스런 공백으로 열린우리당의 역학 구도가 생각보다 빠르고 급격하게 정동영 의장에게 쏠리고 있다. 그 힘 쏠림을 견제하기 위해서 긴급 투입된 구원투수 성격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왕수석’이 당내 ‘세력 균형자’ 역할도 아울러 하라는 대통령의 메시지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5전 5패의 사나이 이강철. 그가 노 대통령의 ‘사인’을 훌륭하게 수행해 ‘5전 6기’의 마지막 신화를 창조할 수 있을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