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 최태민 꺼내드는 순간 공멸할 수도
▲ 대권을 꿈꾸는 자에게 병역의혹은 치명적이다. 올 1월 이명박 전 시장이 이회창 전 총재 자택을 방문했다. | ||
올 대선전의 승부를 가르는 마지막 결전일은 12월 19일 투표일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범여권 후보와 마지막 한판 승부를 벌이기 위해서는 8월 19일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 승리해야 한다. 경선 승자는 천하의 절반을 차지하고 중원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패자는 병력과 병참을 모두 뺏기는 무장해제를 당하게 된다. 경선전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군영의 고민이 바로 이 지점에서 형성되고 있다. 바로 상대방을 일발에 쓰러뜨릴 수 있는 ‘필살기’를 언제 어떻게 쓰느냐 하는 문제다.
어차피 경선은 천하의 절반을 차지하기 위한 예비전이다. 필살기로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본선인 중원대전에서 아군의 전력약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필살기를 맞고 쓰러진 상대방의 장수와 병력들이 순순히 항복하고 본진에 합류한다면 모르지만 최악의 경우 군영을 벗어나 최후의 항전을 시도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전쟁에서 적전분열은 곧 패배를 의미한다. 역발산 기개세로 승승장구하던 항우가 유방에 밀린 결정적 이유도 책사인 범증과 갈등 끝에 서로 등을 졌기 때문이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군영의 전략기획을 맡고 있는 대장군들을 만나 필살기인 ‘최후의 한방’에 대해 물었다.
먼저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의 대장군은 “우리가 굳이 준비하지 않아도 이미 국민들이 다 아는 것 아니냐”며 “앞으로 불거지는 하나하나가 이 전 시장에게는 치명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마도 이 전 시장은 재산, 병역, 사생활이라는 삼각파도를 넘기 어려울 것”이라며 “생각해 봐라. 이제 겨우 재산문제의 일부가 드러났는데 벌써 휘청거리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명박 전 시장 진영의 대장군은 “어느 쪽이나 ‘마지막 한방’은 다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러나 절대로 꺼내 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한방’은 서로에게 너무 민감한 문제들이다. 어느 한쪽이 꺼내는 순간에 맞대응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공멸이다. 본선이 있는데 그렇게까지 가겠느냐”고 대답했다.
양측 군영의 대장군들의 말을 종합해서 분석한 결과는 이렇다. 먼저 양 군영에서 확보하고 있는 필살기가 과연 무엇일까 하는 대목이다. 박 전 대표 군영의 대장군이 이 전 시장의 재산, 병역, 사생활을 언급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시장은 재산형성 과정과 관련된 각종 의혹으로 상처투성이 상태다. 이 전 시장 일가의 부동산투기 의혹은 ‘청부’(깨끗하게 일군 재산)는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치부’(불법적 수단으로 모은 재산)는 아닐 것이라는 세간의 인식을 흔들었다. 이 전 시장은 은평뉴타운 투기 의혹이 제기되면서 CBS와 리얼미터가 지난 2~4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36.8%를 기록해 전 주의 36%에 비해 0.8% 상승하는 데 그쳤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각종 의혹에 대해 고소 고발로 맞대응하면서 상승세로 돌아섰지만 새로운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주춤거리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이 추가로 밝힌 병역과 사생활 부분은 조금씩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으나 본격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은 상태다. 박 전 대표 군영의 대장군은 병역과 관련해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는 말도 했다. 그는 이 전 시장이 기관지 확장증으로 병역을 면제받을 당시에는 국내에 첨단 의료장비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검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뤄진 군 입대 신체검사의 상당부분은 진단의사의 판단에 의존했다는 얘기다. ‘사술’이 개입할 여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박 전 대표 측이 “증거가 있다”고 한 부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군부대의 진료자료일 수도 있고, 관련자의 증언을 확보했을 수도 있다는 두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 지난해 12월 군부대를 방문한 모습. | ||
박 전 대표 측이 거론한 이 전 시장의 사생활은 무엇일까.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얼기설기 모아보면 ‘이성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정치의 풍토에서 흔히 이런 문제는 ‘부메랑’이 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겁 없이 꺼내들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사생활 문제가 무엇이든 박 전 대표 측 군막에서 상대방을 베든 내가 베이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최후의 일격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판단을 내린다면 ‘필살기’로 사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박 전 대표 측 대장군에게 이 전 시장 측이 어떤 필살기를 감추고 있는 것 같으냐고 물었다. 박 전 대표 군영의 대장군은 “4가지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을 것”이라며 정수장학재단, 영남대, 육영재단, 최태민 목사 관련 건 등 4개를 꼽았다. 그러면서 이 대장군은 “아마도 새롭게 (이 전 시장 측이 무기로) 쓸 내용은 없을 것”이라며 여유를 보였다.
이 전 시장 측 대장군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박 전 대표 측이) 결단코 우리를 향해 칼을 뽑지는 못할 것”이라며 “그러면 박 전 대표도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전 시장을 향해 박 전 대표 측이 직접 독화살을 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다. 이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먼저 이 전 시장에게 필살기로 공격하면 박 전 대표에게 쏟아 부을 독화살을 충분히 비축하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또 하나는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군영이 공멸을 피하기 위해 일정한 공격의 마지노선을 정해 놓은 듯한 뉘앙스도 묻어 있다.
이 전 시장 측이 이렇게 자신하는 배경에는 역시 박 전 대표와 관련된 의혹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노무현 대통령이 ‘독재자의 딸’이라고 공격할 정도로 박 전 대표는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또는 신군부 세력과 관계된 소문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항간에는 최태민 목사 문제가 구체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이것이 박 전 대표 측이 필살기를 쓰는 도발은 없을 것이라고 이 전 시장 측 대장군이 그토록 자신하는 배경으로 볼 수 있다. 이 대장군은 “저 쪽(박 전 대표 측)도 우리가 박 전 대표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고, 얼마나 알고 있는지 짐작하고 있을 것”이라며 “공격해오면 더 손해가 날 것이라는 것을 아는데 뭘 걱정하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전쟁은 무한경쟁이다. 승자는 오직 한 명뿐이다.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 게임이다. 유비가 사지로 내몰린 극한 상황에서 오와 손잡고 벌인 적벽대전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어느 한쪽이 이대로 있으면 패배한다는 판단을 내리는 순간이 적벽대전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필살기는 적을 죽일 수 있는 비장의 무기라는 점에서 꺼내 쓰고 싶은 유혹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군영이 상대방을 향해 필살기를 쓴다면 언제일까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 박근혜 전 대표의 아킬레스 건은 최태민 목사 문제를 포함, 박정희 전 대통령과 신군부와 관련된 의혹들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예측하기 쉽지는 않지만 여의도의 많은 관측통들은 8월 초순쯤이면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간 균형이 깨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 검증위원회가 오는 19일 TV로 생중계되는 검증 청문회를 열고, 22일부터 권역별 순회 합동연설회가 시작되면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간 지지도의 우열이 명확하게 갈라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선거는 팽팽하던 균형이 어느 순간 한 쪽으로 기울면 쏠림현상이 가속화되는 경향이 강하다. 조용히 물밑에서 움직이던 지지자들이 부상해 세력을 형성하면서 직접 충돌하는 시기도 이 때로 볼 수 있다. 이 충돌에서 기세가 오른 쪽으로 흐름이 형성되고, 흐름이 형성되면 쏠림으로 연결된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군영으로서는 중원으로 나가기 위한 건곤일척의 대회전을 벌이는 셈이다.
16대 대선 당시 민주당의 당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광주 경선에서 기선을 잡고 흐름을 장악했던 것처럼 한나라당 경선전에서도 8월 초순이면 흐름을 장악하는 쪽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때가 되면 대세를 뺏긴 쪽에서는 필살기를 묻어둔 병참기지의 문고리를 잡게 될 가능성이 높다. 박 전 대표 측에서 이 전 시장의 병역 관련 자료를 만지작거릴 수도 있고, 거꾸로 이 전 시장 측이 박 전 대표를 겨냥해 최태민 목사 관련 건을 꺼낼 수도 있다. 양측 군영에서는 상대진영을 향해 쏟아부을 독화살을 비축해둔 상황이다. 제대로 날아가서 상대방의 가슴에 정확히 꽂힌다면 열세를 일거에 뒤집는 대반전이 가능하다.
주군이 침몰하면 장수가 흔들리고 장수가 넋을 빼고 앉으면 그 전쟁은 싸워보나 마나라는 것은 고금에서 증명된 철칙이다. 하지만 상대방을 겨냥하기 위해 꺼낸 독화살에 자신이 베이는 위험과 함께 독이 오른 상대방의 필살기를 감내해야 한다. 실제로 독화살이 존재하는지는 일단 차치하고라도 필살기가 동원될지도 미지수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필살기 대신 전장을 이탈하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최근 한 현역 의원이 상대방이 경선에서 승리할 경우을 가정해서 분당론을 언급한 적이다.
경선에서 불복하는 것은 정치권에서 일종의 ‘금기’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진영 일각에서는 이 같은 금기까지도 언급되고 있을 정도로 상대방에 대한 적의가 노골화되고 있다. 필살기를 던져 필살기로 되받는 위험은 경선이 아니라 본선에서 맞서야 할 적군에게 자기 군영의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우를 범하게 된다. 따라서 필살기 대신 전장을 이탈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는 욕구도 그만큼 강해지기 마련이다.
범여권의 한 의원은 한나라당의 경선전을 이렇게 평했다. “아마도 한나라당의 두 후보가 경선에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피투성이가 될 것이다”며 “그들과 싸워 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들(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이 상대방을 향해 ‘한방’을 쓰든, 안 쓰든 우리에게도 (한나라당 후보를 향해 쓸) ‘한방’이 있다”고 말했다.
천하를 얻은 영웅들에게는 지치지 않는 기상이 있다. 항우에 밀려 굴욕적인 ‘홍문의 연회’를 가져야 했던 유방이나, 조조에게 대패해 오나라의 손권에게 의지해야 했던 유비가 황제에 등극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을 향해 무수히 날아드는 화살을 헤쳐 나온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제갈량이 살아있다면 한나라당의 두 영웅 가운데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을 뚫고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지혜를 빌리고 싶다.
정기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