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서의 여운…무조건 하고 싶었다”
▲ 하일성 신임 KBO 사무총장은 기자가 익명으로 질문하면 알아서 실명으로 답변했다. 그만큼 소문에 대해 명확한 사실을 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8일 이사회를 통해 사무총장에 선출된 하일성 씨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사무총장을 너무나 해보고 싶었다”며 특유의 솔직함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그러나 사무총장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만만치 않은 뒷얘기들을 만들어 낸 탓에 그를 만나면 물어볼 ‘꺼리’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정식 출근하는 직장 생활이 이틀째라는 지난 10일, 여의도 KBS 별관에서 다소 ‘까칠한’ 내용들로 하일성 사무총장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딱 떨어지는 정장에다 핑크색 줄무늬 넥타이를 한 하일성 사무총장의 모습이, 글쎄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먼저 ‘직장인’으로 사는 데 대한 소감을 물어봤다.
“나보다 아내가 더 어색해 하죠. 환일고에서 교사 생활을 접은 게 85년인데 21년 만에 시간 맞춰 출근하니까 좀 이상한가 봐요. 곧 익숙해 지겠죠 하하.”
―해설위원하면서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것과 사무총장이 된 이후의 인터뷰는 좀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차이 많죠. 해설할 때는 솔직하게 말했어요. 뭐든지. 그런데 사무총장이 되고 나니까 말하는 데 좀 망설이게 되더라구. 내 해설의 장점이 명확한 거였거든요. 지금은 그게 잘 안돼. 잘못 말하면 공약이 되니까 말하기가 조심스럽더라구. 환경이 변했으니까 생활이 달라진 건 당연하겠죠. 그래도 초반이라 조금 힘들기는 해요. 해설은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즐기면서 했기 때문에 힘든 줄을 몰랐어요. 행정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관리도 해야 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보완해야 하는 등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천천히 해결해 가야겠죠.
―천직인 해설을 버리고 사무총장이 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가 뭔가요.
▲사무총장은 자리는 힘들지만 그 자리가 갖는 매력이 크잖아요. 기자들이 그런 걸 많이 물어봐요. 어렵게 쌓은 해설가로서의 좋은 이미지를 굳이 힘들게 할 필요가 있냐구요. 난 그냥 하고 싶었어요. 무조건 하고 싶었어요. 다른 이유 없어요. 26년 동안 해설을 하면서 뭔가 변화의 시기가 필요했고 정상의 위치에 있을 때 물러나야 좋은 여운을 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죠.
▲이 자리가 그렇게 큰 자리인 줄은 모르겠지만 알려진 부분에서 사실인 것도 있고 오해가 있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래도 난 항의를 안했어요. 그만큼 나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고 괜한 행동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냥 가만있었어요. 내가 사무총장이 된다면 그 이후에 어떻게 할 거냐가 중요하니까 별로 신경 안 썼어요.
―하 사무총장을 지지한 사람도 있고 반대한 사람들도 있어요. 알고 계시죠?
▲물론 알고 있죠. 다행인 건 날 반대했던 분들이 나중엔 다 축하 전화를 해주셨어요. 협력할 것은 분명 돕겠다고 약속했고, 화환을 보내주신 분도 있구요. 이렇게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가족이라고 해서 형제들이 모두 친한 건 아니잖아요. 하물며 세상살이는 더하지 않겠어요?
―해설가로 경쟁 관계에 있었던 아무개 해설위원이 특히 반대했다고 들었는데.
▲전화가 왔었어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죠. 서로 얼굴 마주 보고 나누지 않은 대화는 가급적 잊어 먹자구요. 그랬더니 축하한다고 말하더라구요. 자기가 도와줄 거 있으면 연락달라고 하데요. 그 사람도 경기인 출신이잖아요. 나도 마찬가지구요. 경기인 출신이 성공하지 못하면 그 이후 더 큰 비난을 받을 수 있어요.
―마이크 잡던 시절에 그 해설위원에 대해 라이벌 의식을 느꼈었나요?
▲라이벌이 있다는 건 행복한 거예요. 연세대가 있기에 고려대가 빛나는 것처럼 라이벌이란 항상 긴장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잖아요. 내가 방송을 떠난 뒤론 허구연 씨가 굉장히 허전해 할 거예요. 반대로 그 분이 잠시 감독을 맡아 해설을 하지 않았을 때 내가 큰 외로움을 느꼈었거든요. ‘하구라 허구라’가 왜 인기였겠어요? 하하.
―신상우 총재가 KBO 총재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어요. 그중에는 너무 정치색이 짙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절대 그렇진 않아요. 오랫동안 정치하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대화나 행동들이 야구판에서 보는 시각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나도 느끼지만 대화법과 스타일이 야구인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 사무총장이 내정된 이후 신 총재와의 사전 접촉설이 나돌았어요. 진실이 뭔가요.
▲다시 한 번 밝히지만 총장으로 내정되기 전까진 신 총재님과 전화 통화도 커피 한 잔도 마신 적이 없어요. 만약 그 부분이 사실이 아니라면 내 이름을 걸고 모든 일에서 물러날 자신도 있어요. 그분이 날 선택하기까지엔 마지막까지 고심의 고심을 거듭했어요. 몇 달 전부터 날 찍어놓고 발표 시기를 기다렸던 게 아니라 통보하기 전까지 갈등을 거듭하다가 전화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 허구연, 김응용, 김태촌 (왼쪽부터) | ||
▲(하일성 사무총장은 기자가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질문을 하면 알아서 실명을 댔다. 그만큼 소문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김응용 사장과는 해태 감독 시절부터 형님, 동생하면서 지냈어요. 그렇게 따지면 한화의 김인식 감독은 더 친하게요? 날 밀어주고 안 밀어주고가 아니라 내가 하겠다고 나선다면 반대할 분들은 아니잖아요. 아니 사무총장이란 자리가 한두 사람이 밀어준다고 되는 자립니까? 신상우 총재의 인격을 그렇게 보시면 안됩니다. 7선 국회의원에다 국회 부의장을 지내셨고 장관까지 거친 분이에요. 그분의 인품이 단순했다면 그렇게 오랜 세월 공직에 있지 못하셨을 겁니다.
―KBO 사무총장의 권한이 너무 집중돼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총장론’도 나오고 있는데요.
▲권한이란 건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 아닌가요? 하일성이가 사무총장에 임명된 지 이제 이틀 됐습니다. 내 색깔이 나오려면 최소한 6개월은 걸린다고 봐요. 그 이후에 얘기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난 지금 백지 상태로 와 있어요. 아침마다 두 시간씩 이상일 차장한테 업무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입니다. 조금 더 지켜보신 다음에 권한의 크고 작음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경기인 출신이라고 하지만 하 사무총장이 야구하는 걸 직접 본 사람이 별로 없다는 얘기도 있어요.
▲내가 야구한 걸 본 감독이 있어요. 바로 한화의 김인식 감독인데 성동고 1학년 때 배문고 3학년이던 (김)인식이 형하고 붙은 적이 있었거든요. 경희대는 야구 특기생으로 입학했구요.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을 뿐 야구한 건 정말 사실입니다.
―사무총장 취임 일성으로 프로팀을 두 팀 정도 더 창단시킨다든가, 신 총재가 공약으로 내세운 돔구장 건설을 적극 돕겠다는 등의 내용이 발표됐어요. 일부 야구인들 중에는 너무 말만 앞세운 거창한 공약이라는 시각도 있는데요.
▲공약이란 게 뭔가요. 공식적인 자리에서 약속을 한 다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거잖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사무총장이 된 지 이틀밖에 안 된 상황에서 말만 앞세운다니, 공약이 너무 거창하다는 등의 지적은 옳지 않다고 봐요. 지켜보셔야죠. 지켜본 다음에도 실천이 안 되면 그때 호되게 나무라셔야죠. 돔구장 건설도 그래요. 신 총재가 취임하신지 얼마 안돼 벌써 대구에 천 억 원 짜리 야구장을 짓게 됐잖아요. 말만 앞선다고 하시면 무척 서운해질 것 같네요.
―주먹계의 전설이자 ‘서방파’의 두목이었던 사람과 절친한 친구 사이잖아요.
▲난 어느 자리에서도 (김)태촌이와의 우정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어요. 이 우정은 목숨과도 같은 겁니다. 내가 사무총장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위치에 올랐다고 해도 태촌이와의 관계를 부정하지 않고 떳떳하게 드러낼 거예요.
―김태촌 씨의 상징적인 이미지 때문에 그와의 우정을 이상한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누가 뭐라고 해도 나와 태촌이는 죽을 때까지 한배를 탈 겁니다. 그가 서방파 보스였던 아니든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난 인간 김태촌을 좋아하는 거니까요. 어떻게 보면 드러내놓고 나쁜 짓했던 태촌이보다 보이지 않는 데서 나쁜 짓 하는 하일성이가 더 못난 사람일 수도 있어요. 58년의 인생 동안 33년을 옥살이했어요. 이젠 이 사회가 태촌이를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줘야 하지 않을까요?
하일성 사무총장은 2002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일 때 김태촌 씨가 감옥에서 편지를 보내 용기를 줬던 스토리를 꺼내면서 지금은 병 들고 나이 먹어서 이전의 ‘힘’은 찾아볼 수 없는 친구의 존재를 한없이 안타깝게 생각했다.
방송 아닌 곳에서는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라는 의외의 성격을 고백하는 하 사무총장에게 마지막으로 ‘까칠한’ 질문 하나를 더 덧붙였다. 헤어 스타일의 변화가 주는 장점은?^^.
“뭐, 맵시가 나지. 무슨 옷을 입어도 폼이 나구. 그러면 좋은 거 아닌가요?”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