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국 탕웨이싱과 장군멍군…최근 혹사 컨디션 회복이 관건
우승컵의 향방이 가려질 제8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5번기 3∼5국이 10월 22일부터 26일까지 중국 상하이 잉창치(應昌期) 바둑기금회 빌딩에서 열린다. 앞서 치러졌던 결승 1∼2국은 박정환과 중국 탕웨이싱이 1승씩을 나눠가지며 1승 1패를 기록해 결승5번기는 3번기로 압축된 상태다.
그동안 한국 기사들은 이번 대회까지 여덟 차례 모두 결승에 올라 응씨배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었다. 그중 초대 챔피언에 오른 조훈현 9단을 시작으로 서봉수 9단(2회), 유창혁 9단(3회), 이창호 9단(4회), 최철한 9단(6회)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5회 대회에선 최철한 9단, 7회 때는 박정환 9단이 준우승을 차지했었다. 과연 박정환 9단도 최 9단을 따라 기분 좋은 전통을 이어갈지 기대되고 있다.
박정환(오른쪽)과 탕웨이싱이 결승 1~2국에서 1승씩을 나눠가졌다. 박정환이 이긴 1국 종국 후 복기 모습.
우승상금 40만 달러(한화 약 4억 5600만 원)가 걸린 응씨배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기전이다. 다른 대회는 3억 원 안팎이 보통이기 때문에 프로기사라면 누구나 탐내는 대회다. 4년마다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치러진다고 해서 ‘바둑올림픽’이라 불리는 응씨배는 그 상금도 매력적이지만, 지난 30년 동안 6명의 우승자만 배출하는 희소성 때문에 초일류급 기사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인 기전이다. 이세돌 9단도 이번 대회 준결승전에서 박정환 9단에게 1-2로 패한 후 “이번이 응씨배를 손에 넣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봤는데 참 아쉽다”고 토로했을 정도.
지난 8월 열린 결승1~2국은 1승 1패 한 판씩 나눠가졌다. 당시 박정환은 세계랭킹 1위라던 커제에게 3연승을 거두는 등 절정의 컨디션으로 결승에 들어갔지만 연승에는 실패했다. 1국에서 어려운 바둑을 역전시킨 박정환은 2국에서도 초반 넘어간 바둑을 믿을 수 없는 추격전을 펼치며 다시 대역전극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역전시키는 과정에서 시간을 오버하는 바람에 승부에서는 1집을 이기고도 4집의 벌점을 받아 도합 3집 차이로 패해 아쉬움을 남겼다. 초읽기 대신 벌점제로 진행되는 응씨배는 제한시간을 모두 사용하면 이후 20분당 2집씩을 공제(총 2회 가능)하며 2회가 지나면 시간패가 선언된다.
박정환(오른쪽)과 탕웨이싱.
걱정되는 것은 최근 박정환의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다는 점. 10월 들어 가진 다섯 번의 대국 중 한국바둑리그에서 김정현에게만 승리를 거뒀을 뿐, 삼성화재배에서 중국 신예 판윈러에게 패했고 중국리그에서도 장웨이제, 스웨에게 거푸 패점을 안았다. 판윈러에게 당한 충격의 여파였다.
하지만 탕웨이싱 역시 1년 전 잘나갈 때의 그가 아니다. 작년 이맘때 탕웨이싱은 커제와 중국랭킹 1, 2위를 다퉜지만 꼭 1년 만에 16위까지 내려앉았다. “비참할 정도로 많이 졌다”는 게 본인의 표현.
탕웨이싱은 최근 자국 내 인터뷰에서 “그는 타고난 재능에 대단한 노력파다. 이동 중 버스는 물론이고 기차 안에서도 묘수풀이 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나는 그렇게까지 하진 않는다. 천부적인 재능에 후천적인 노력이 뒷받침되고 있으니 정말 상대하기 벅찬 기사다”라고 박정환을 평했다. 그는 또 “2014년과 2015년 삼성화재배 본선에서 내가 그를 꺾은 것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박정환은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졌으며 당시에도 실력은 그가 더 강했었다. 응씨배 결승전 예상을 박정환에게 묻는다면 아마 그는 5할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내게 물으면 난 5할이 안될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겸손하게 결승에 임하는 소감을 말했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우승컵은 누가 들어 올릴 확률이 높을까. 송태곤 9단은 다음과 같이 예상한다. “팽팽할 것으로 본다. 결승전을 앞두고 물었다면 당연히 박정환 9단의 손을 들어주겠지만 최근 박 9단의 흐름이 너무 좋지 않다. 10월 4일과 6일 삼성화재배 본선을 소화했는데 판윈러에게 패한 6일 오후에는 유성에서 서울로 이동, 한국바둑리그 티브로드 팀 소속으로 대국을 벌였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선수기용이요 혹사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루 쉬고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8일과 10일 장웨이제와 스웨를 연속으로 상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 기량을 펼친다는 것이 오히려 더 말이 안 된다. 박정환 9단은 평소에도 날씬한 편이었지만 최근 보니 뼈만 남아있더라. 뭔가 과밀한 일정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남은 기간 체력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릴 것이다”라고 결승전을 전망했다.
88년 창설된 응씨배는 대회 창시자인 고 잉창치 선생이 고안한 응씨룰을 사용한다. ‘전만법’이라고도 불리는 응씨룰은 집이 아닌 점(點)으로 승부를 가리며 덤은 8점이다. 응씨배의 우승상금은 단일 대회로는 최고 액수인 40만 달러, 준우승상금은 10만 달러다.
제7회 응씨배 결승5번기에서는 판팅위 9단이 박정환 9단에게 종합전적 3-1로 승리해 세계대회 챔피언 반열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