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결별한 아버지 강단 아들도 보여줄까
전경련은 지난 61년 군사쿠데타 이후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중심이 돼서 세운 대기업 오너 경제인들의 모임이다. 재벌 오너의 모임이라는 점에서 국내 경제단체 중의 사실상 맏형이자 리더 노릇을 해왔다. 돈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인다는 점에서 전경련은 그럴만한 자격이 충분했다.
하지만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끝으로 사실상 오너 회장의 전경련 시대는 끝났다.
이후 전문경영인인 손길승 회장이 대기업 회장 자격으로 전경련 회장을 맡았지만 과거 이병철-정주영-구자경-최종현 시대와는 다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이번 전경련 회장 선출은 역대 회장 선출 중 가장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합의에 의해 뽑던 회장직 선출을 놓고 합의가 안돼 몇 개월씩 진통을 겪고 그 와중에 부회장이 공개적인 사표를 던지고, 후보 물망에 오르는 이에 대해 재벌 회장 간에 공개적인 비토가 나오는 등 전경련 사상 볼 수 없었던 일이 줄지어 벌어졌다.
때문에 난산 끝에 회장직에 오른 조석래 회장에 대해 더욱 이목이 쏠리고 있다. 조 회장은 재계 중위권 그룹인 효성그룹의 2세 경영인으로 칠순을 넘긴 원로급 회장이다. 효성그룹에서도 이미 3세 경영 승계를 염두에 둔 경영 수업과 지분 이동이 시작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전경련 회장에 오른 조석래 회장과효성에 대해 알아봤다.
조석래 회장은 경남 함안 출신이다. 조 회장은 경기고를 나와 일본 와세다대학 공학부를 졸업했다. 이어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는 등 대학교수가 되려고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친인 조홍제 회장이 66년 동양나이론을 세우고 울산공장을 건설하면서 그를 호출했다. 화공학을 전공한 아들이 조홍제 회장에겐 안성맞춤으로 필요했던 셈이다.
그 해 2월 석사학위를 받은 조석래 회장은 11월 귀국해 울산공장 건설에 투입됐다. 부친의 창업이 늦은 만큼 조석래 회장은 회사 창립 때부터 현장에 투입돼 회사 성장의 단맛 쓴맛을 다본 1.5세 경영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효성 쪽에서도 조 회장이 오너 경영인이라기보다는 ‘전문 경영인’에 가깝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그의 모교인 와세다대에서는 그가 한국 민간기업 최초로 효성에 ‘기술연구소’를 세워 섬유 화학 중전기 등 제조업을 이끈 점을 평가해 지난 3월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주기도 했다.
그가 합류한 이후 효성은 75년 한영공업을 인수해 효성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꾼 뒤 중전기와 산업기계 분야에 뛰어들어 ‘중공업 한국’ 시대의 한 축이 되었다.
조 회장이 그룹 회장에 취임한 것은 지난 81년. 78년 창업주 조홍제 회장이 지병으로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지 3년 만이었다. 조홍제 회장은 2세 체제로 넘기면서 조석래 회장에게 후견인을 세워줬다. 바로 그의 장인인 송인상 전 재무부 장관. 그때부터 재계의 원로로 불리던 송 전 장관은 동양나이론의 회장을 지내는 등 조석래 회장 체제가 자리잡는 동안 버팀목 노릇을 했다.
▲ 지난 1월 25일 전경련 회장단회의 당시.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조석래 회장이다. | ||
조 회장은 경기고 50회다. 전경련에는 경기고 출신 회장이 유독 많다. 이준용 명예회장(52회),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55회), 허영섭 녹십자 회장(56회),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57회), 김준기 회장(60회), 이구택 포스코 회장(60회), 현재현 동양 회장(63회), 최용권 삼환기업 회장(65회), 김승연 한화 회장(66회) 등이 모두 경기고 출신 후배다.
일본 와세다대 인맥도 화려하다. 조 회장이 와세다대에서 공부할 때 삼성 이병철 회장의 둘째 아들인 이창희 새한그룹 전 회장과 함께 공부했을뿐더러 조 회장이 와세다대 동문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신격호 롯데 회장,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김상홍 삼양사 명예회장,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 임창욱 대상 명예회장 등이 모두 와세다대 동문이다.
조 회장의 이런 배경은 한매재계회의 한국위원장, 한일경제협회 회장 등으로 확장되면서 민간외교 분야에서도 한몫 하고 있다.
조 회장은 전경련 회장직에 오른 뒤 전경련 주요 보직 인사를 단행하며 ‘조석래호’의 색깔을 가다듬고 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상당수 인사가 경기고 출신 인사라는 점이다. 먼저 조 회장이 낙점한 이승철 전무와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장이 경기고 출신 인사다. 조 회장이 전경련 업무를 자문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경훈 전 대우 회장과 김진현 효성 고문도 경기고 동창이다. 여기에 전경련 회장단의 경기고 출신까지 더하면 전경련(全經連)이 아닌 전경련(全京連)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회장단도 경기고 출신이 절반 이상이다. 공석인 전경련 상근 부회장 직을 제외하면 20명의 회장단 중 경기고 출신이 11명이다. 조 회장이 우여곡절 끝에 전경련 회장에 오른 데는 경기고 학맥이 음으로 양으로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조석래 회장은 전경련 회장 취임 이후 “할 말은 하는 전경련”, “개혁” 등을 내세웠다. 여기서 ‘개혁’은 사회단체에서 하는 개혁이라기보다는 ‘규제개혁’의 줄임말에 가깝다. 즉 재계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더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 조 회장의 포부인 셈이다.
90년대 중반 이전에 재계의 요구사항 1순위는 ‘고금리 완화’였다. 외국 업체는 저금리를 갖다 쓰는데 국내기업만 고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게 재계의 단골 노래였다.
외환 위기로 돈 많이 빌려다 쓴 기업들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목격한 재계의 요즘 단골 요구사항은 더 이상 금리 문제가 아니다. 출자총액제한 등의 ‘규제 완화’다. 금산분리 규정 철폐나 재력있는 재벌그룹들의 투자를 말리지 말아달라는 게 전경련 회원사들의 단골 요구사항이다. 물론 정부에서 이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 하나 관철하지 못하면 전경련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중견그룹들까지 ‘전경련 무용론’을 들고 나오는 게 요즘 전경련의 현실이다.
조 회장이 이런 재벌들의 이익과 목소리를 어떻게 조율해낼지, 그가 말한 대로 정부와 사회를 상대로 할 말을 ‘어떻게’ 해낼지 주목받고 있다.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