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JP - 킹메이커로 남느냐, 나만의 길을 걷느냐
▲ 심대평 대표가 지난 26일 대전 서을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후 축하전화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 ||
실제로 범여권 통합 주도권 경쟁도 심 대표의 부활로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기사회생한 국민중심당은 충청 중심론을 기치로 대선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범여권 일각에서는 심 대표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연대를 매개로 한 ‘충청 대망론’도 불거지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호남과 충청을 묶는 ‘제2의 DJP연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4·25 재보선을 계기로 일약 충청권 맹주 자리를 굳히고 있는 심 대표가 본격화되고 있는 범여권 정치판 새판짜기 및 대선구도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또 그가 그리고 있는 정치 청사진과 대권 복심은 무엇인지 들여다봤다.
“이번 승리로 충청권이 다시 한 번 대선의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
보궐선거에 당선된 심 대표가 던진 일성이다. 국회의원직에 만족하지 않고 충청권 정치세력화와 대선에서의 역할론에 정치적 지향점을 두겠다는 심 대표의 의지가 반영된 발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재보선 당선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몸값을 높이고 있는 심 대표는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26일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심 대표는 “현재로선 범여권과의 관계를 고려치 않고 있으며 양극화된 정치판에서 균형추 역할을 하는 정치세력이 될 수 있다”며 충청권을 중심으로 한 독자세력화에 치중할 것임을 강조했다. 선거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은 후보를 내지 않고 심 대표를 연합후보로 포장하는 전략을 구사하며 일종의 구애 작전을 폈지만 심 대표는 ‘국민중심당 후보’임을 천명하며 떳떳하게 충청 민심의 심판을 받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국중당이 비록 소수 정당으로 전락했지만 충청권이 다시 똘똘 뭉치면 과거 JP시대에 버금가는 정치 중흥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란 평소 지론과 강한 자신감이 묻어 있는 행보로 관측된다. 중앙 정계 입성에 성공한 심 대표가 연일 충청 중심론과 대선 역할론을 강조하고 있는 배경에는 그가 구상하고 있는 이른바 ‘제2의 JP시대’ 청사진이 투영돼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심 대표의 부활은 개인적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에서 국중당이 패배한 이후 정치적 시련기를 맞았던 심 대표는 자칫하면 정계 은퇴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당시 텃밭이라고 믿던 충청권에서 광역단체장을 단 한명도 배출하지 못하고 충남에서만 기초단체장 7명을 당선시키는 데 그치자 당 안팎에서 존폐설까지 흘러나왔고 이인제 최고위원과 갈등을 빚으며 1선 후퇴를 강요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통해 충청권에서 심 대표만 한 인물이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둘이 합하면 지지율 70%가 넘는 ‘대권 빅2’인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선거 지원을 펼쳤지만 심 대표의 뿌리를 흔들기는 역부족이었음을 확인했다. 이는 JP가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누렸던 확고한 지지와도 비견된다.
결국 이런 충성심을 기반으로 부활한 심 대표의 꿈은 더 먼 곳으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심 대표도 당선 직후 “국민과 충청인이 원하는 그런 역할을 맡겨주신다면 (대통령 후보를) 자임할 생각도 있다”고 말하며 그런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이보다는 보다 가능성 있는 방안으로 범여권 내 유력한 제3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의 연대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급부상하고 있다. 충청권은 97년 대선 때 ‘DJP 연합’이라는 인물 연대로, 2002년 대선 때 민주당 노무현 후보 측과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정책 연대를 매개로 대선을 승리로 이끄는 캐스팅 보트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따라서 충남 공주에서 마을 하나를 사이에 둔 곳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 선후배 사이인 심 대표와 정 전 총장이 ‘충청 중심론’을 명분으로 충청권 정치세력화에 의기투합할 경우 그냥 넘길 수 없는 폭발력을 가질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이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심 대표가 당선된 다음날 두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듯 “못 만날 이유가 없다”며 상대방에 대한 호의적인 발언을 했던 것도 두 사람의 연대론을 부추기고 있다.
▲ 2005년 국민중심당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심대평 당시 충남지사. 연합뉴스 | ||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정치 환경이나 대선 입지가 그리 녹녹치 않다는 점에서 정치 현실을 감안해 상호 윈윈 차원의 복심을 드러낸 게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충청권 중심의 독자세력화를 구상하고 있는 심 대표나 마음 한 구석에 대망론을 품고 있으나 취약한 정치기반 때문에 결단을 못 내리고 있는 정 전 총장이 손을 잡으면 서로 상호 보완재 역할을 하면서 정계개편과 대선정국에서 영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이란 시각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손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보다는 자칫 충청권의 맹주 자리를 둘러싸고 두 사람이 라이벌 관계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심 대표는 범여권 통합은 관심 밖의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심 대표는 26일 아침 대전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선거 시작부터 끝까지 연대와 연합은 없다고 다짐해왔고 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며 범여권 통합에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그는 “구여권이 헤쳐 모여와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것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주 많다”고 말하고 같은 당 신국환 의원의 통합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당론이 아닌 개인의 소신으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평가 절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