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점검은커녕 폐쇄회로 확보도 안해…“고소하거나 합의하세요”
지난 11일 오후 2시 30분쯤 서대문경찰서는 여성 몰카 촬영으로 의심되는 사건 하나를 접수 받았다. 서대문구의 한 헬스장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데 남성 트레이너가 휴대전화를 손에 든 채 탈의실에서 웅크리고 있다”는 A 씨(여·24)의 신고였다. 해당 헬스장 샤워실은 탈의실 안쪽에 위치하며 샤워실 유리는 허리 아래만 불투명하게 처리돼 탈의실에서 샤워 중인 여성 상체가 들여다 보이는 구조였다.
당시 A 씨는 경찰에 신고하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샤워를 하는데 프런트에서 나에게 수건을 건네줬던 남자 트레이너가 여성 탈의실로 들어와 웅크린 채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밖으로 나갔다. 샤워를 중단하고 서둘러 옷을 입은 뒤 프런트로 갔더니 트레이너는 ‘탈의실 키를 찾으러 들어갔었다. 죄송하다’고 하더라. 혹시 샤워하는 내 모습을 찍은 게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A 씨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탈의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경찰의 대응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경찰은 탈의실만 둘러본 채 A 씨에게 ”서대문경찰서에 가서 고소를 원하시면 경찰서에 모셔다 드립니다. 아니면 합의하면 될 듯하네요“라고 말했다. 한 시간 뒤 면접이 있었던 A 씨는 “경찰서에 당장은 갈 수 없다” 말하자 경찰은 현장을 떠나 버렸다. 트레이너의 휴대전화 점검은커녕 트레이너의 탈의실 진입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 화면조차 확보하지 않았다.
경찰이 이처럼 성범죄 현장을 처리하면 피해자가 해당 사실을 고소해 수사가 진행되더라도 사건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폐쇄회로 자료는 보통 일주일 정도만 보관되는 탓에 피의자가 고소인 조사에서 탈의실 침입 사실을 번복하면 침입 사실 증명이 어려워진다.
범죄 수사 지침에 따르면 경찰은 해당 사건의 경우 최소한 피의자의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샤워실에 들어온 자체로도 문제가 될 소지는 충분하다. 성폭력 특별법은 성적 욕망을 만족시킬 목적으로 공중화장실이나 목욕장, 목욕 시설이나 설비 등지에 이성 침입 행위를 금하고 있다. 성폭력 특별법으로 판단하기 여의치 않아도 무단 침입 경범죄로 임의동행한 뒤 여성청소년과에 통보해서 휴대전화 압수영장을 신청하면 휴대전화 검사와 더불어 경범죄 처벌도 동시에 내릴 수 있다.
경찰청 성폭력대책계 관계자 등은 “상황 자체는 현장 경찰관이 판단하지만 정황상 침입 의도가 충분했다고 판단된다. 피의자에게 휴대전화 임의 제출을 요구할 수도 있다. 피의자가 제출을 거부할 경우에는 정식 수사를 진행해서 영장 발부 뒤 조치해야 한다. 의지만 있었다면 피의자를 지구대까지 임의동행한 뒤 추가적인 수사를 의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당 헬스장 카운터와 여성 탈의실 사이에 설치된 폐쇄회로.
이와 관련 서대문경찰서 관계자는 “현장을 다녀온 경찰관에 따르면 현장에서 건질 수 있는 증거자료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탈의실 구조를 사진으로 담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최초 112 신고할 때 ‘몰카 범죄’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게다가 신고 여성이 4시에 면접이 있다고 해서 고소 절차를 설명했다“며 ”탈의실 근처에 폐쇄회로도 없어서 피의자로 지목된 사람이 탈의실에 들어갔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요신문>이 확인한 결과 해당 헬스장에는 카운터와 여성 탈의실 사이를 녹화 가능한 폐쇄회로가 설치돼 있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대구에서도 미온 대처…여성 대상 범죄 막을 생각 있기는 한가요? 지난 4월 대구 경찰도 여성 대상 범죄로 의심되는 사건을 미온적으로 대처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제대로 된 수사는커녕 추가 신고조차 받아주지 않은 탓이다. 지난 4월 30일 오후 11시쯤 대구 중구 삼덕동 자택으로 귀가하던 B 씨(여·25)는 근처 편의점부터 따라온 남자에게서 불안함을 느꼈다. 서둘러 자신이 사는 빌라 현관문 안쪽으로 들어왔지만 문제는 영역이 넓은 자동 현관문 센서였다. 계단뿐인 빌라여서 B 씨가 움직이는 순간 현관문은 다시 열렸다. B 씨가 돌아보자 한 남성의 손이 닫히려는 현관문 사이로 들어왔다. 곧 남자는 문을 힘껏 옆으로 밀어 제꼈다. 놀란 B 씨는 철제 난간을 시끄럽게 두들기며 집으로 와 경찰에 신고했다. 이내 출동한 경찰은 대충 주변만 둘러본 뒤 ”수상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며 폐쇄회로 화면조차 확보하지 않고 돌아갔다. 밤길이 무서운 나머지 B 씨는 폐쇄회로 장면을 직접 챙겨 경찰을 찾았지만 경찰은 ”범인이 그런 목적 아니었다고 하면 무고죄가 될 수 있으니 신고하지 않는 게 좋다“며 B 씨를 돌려 보냈다. 폐쇄회로에는 B 씨가 난간을 두드릴 때 멈칫하며 현관 밖으로 나가려다가 조용해지니 다시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모자 쓴 남자의 영상이 녹화돼 있었다. 결국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B 씨는 한동안 밤에 외출을 삼갔다. B 씨의 남편은 ”구청에도 이 근처에 폐쇄회로가 적으니 좀 더 설치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예산 없다’고 내년에나 가능하다더라. ‘국민, 국민’ 말로만 떠들지 경찰이나 지자체나 국민 안전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 |